▣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28회 - " 고독이 배푸는 삶의 가치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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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깊은 가을입니다. 나무들이 옷을 벗고 있습니다. 겨울이란 휴식시간을 위해 나무들이 이제껏 걸치고 있던 모두를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봄내, 여름내내 키워냈던 이파리들을 떨궈내고 있습니다. 미련이 남을 테지만 어차피 떠나보내야 할 것을 아는 나무들은 그 미련을 슬쩍 내려놓고 있습니다. 한껏 아름다운 색조를 보여주더니 어느덧 그 고운 이파리들을 떠나보내는 겁니다. 그렇게 애써 키운 것들을 내려놓습니다. 아니 잃고 맙니다.
살다 보면 운 나쁘게 우리는, 애써 샇아온 것들, 이를테면 오랜 기간 하고 싶은 일 못하면서 쌓은 명예, 즐기고 싶은 것 못 즐기고 모은 돈, 오랜 인고 끝에 얻은 행복, 그런 것들을 한 순간에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서기란 어렵습니다. 주저앉아 자포자기하기 십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좌절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순간에 모두를 잃었으므로 더는 남은 게 없는 빈터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어서는 이들은 오히려 홀가분하게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바닥에서 시작하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덤으로 인생을 살듯이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독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으므로, 모두가 결을 떠났으므로 고독합니다. 그 고독으로 그들은 말을 잃고 혼자가 되어, 철저히 혼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누구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한 눈빛들 덕에 자기 소신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참으로 자기 삶을 아주 생산적으로 살아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름답습니다.
여기 55세에 아들과 야내를,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말을 잃고 대신에 행동을 얻습니다. 나무를 심는 행동 말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삶이 다할 때까지 나무를 심습니다. 그는 남은 삶을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에 기준을 두고 그 일을 선택한 겁니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갸냘픈 희망 하나 얹을 자리가 없었으나 그저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할 일을 정한 겁니다. 적어도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저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로 한 것이지요. 죽은 땅은 나무가 없기 때문임을 안 그는 그곳에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때로는 고독이 이렇게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인가를 생산하게 합니다. 그때에 기준을 제대로만 잡는다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독도 즐길 이유가 있습니다. 고독은 마음을 비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비움이 때로 남을 돌아보는, 새상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줍니다. 그때에 조금만 생산적인 생각을 한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부여를 한다면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혹여 고독한 순간을 만나면 그 고독의 사막에 당신의 삶의 나무를 심으세요. 어떤 인생을 살든 인생은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긍정을 심으라는 겁니다. 의미 없는 인생, 가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섬세한 고독, 소박한 고독으로 당신의 고독을 바꾸면, 긍정의 나무로 당신의 고독을 바꾸면 생산적인 삶, 보람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싹 틔울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고독을 섬세한 영혼 덕분에 고매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독하되 자신의 행복의 추구만을 두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과만 관련지어서 미래를 상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외엔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나이에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사적인 대신에 이타적인 생각을 가졌던 덕분입니다. 그런 이타심, 사를 생각하기 전에 공을 생각하는 공익정신, 그것이 그를 인생의 패자에서 성공자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만 가지면, 그리고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면, 그는 고독의 사막에 자신의 삶의 나무를 심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나무를 심으세요.
살다 보면 운 나쁘게 우리는, 애써 샇아온 것들, 이를테면 오랜 기간 하고 싶은 일 못하면서 쌓은 명예, 즐기고 싶은 것 못 즐기고 모은 돈, 오랜 인고 끝에 얻은 행복, 그런 것들을 한 순간에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서기란 어렵습니다. 주저앉아 자포자기하기 십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좌절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순간에 모두를 잃었으므로 더는 남은 게 없는 빈터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어서는 이들은 오히려 홀가분하게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바닥에서 시작하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덤으로 인생을 살듯이 새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독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으므로, 모두가 결을 떠났으므로 고독합니다. 그 고독으로 그들은 말을 잃고 혼자가 되어, 철저히 혼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누구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한 눈빛들 덕에 자기 소신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참으로 자기 삶을 아주 생산적으로 살아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름답습니다.
여기 55세에 아들과 야내를,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말을 잃고 대신에 행동을 얻습니다. 나무를 심는 행동 말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삶이 다할 때까지 나무를 심습니다. 그는 남은 삶을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에 기준을 두고 그 일을 선택한 겁니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갸냘픈 희망 하나 얹을 자리가 없었으나 그저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할 일을 정한 겁니다. 적어도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저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로 한 것이지요. 죽은 땅은 나무가 없기 때문임을 안 그는 그곳에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때로는 고독이 이렇게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인가를 생산하게 합니다. 그때에 기준을 제대로만 잡는다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독도 즐길 이유가 있습니다. 고독은 마음을 비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비움이 때로 남을 돌아보는, 새상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줍니다. 그때에 조금만 생산적인 생각을 한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부여를 한다면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혹여 고독한 순간을 만나면 그 고독의 사막에 당신의 삶의 나무를 심으세요. 어떤 인생을 살든 인생은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긍정을 심으라는 겁니다. 의미 없는 인생, 가치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섬세한 고독, 소박한 고독으로 당신의 고독을 바꾸면, 긍정의 나무로 당신의 고독을 바꾸면 생산적인 삶, 보람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싹 틔울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고독을 섬세한 영혼 덕분에 고매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독하되 자신의 행복의 추구만을 두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과만 관련지어서 미래를 상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외엔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나이에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사적인 대신에 이타적인 생각을 가졌던 덕분입니다. 그런 이타심, 사를 생각하기 전에 공을 생각하는 공익정신, 그것이 그를 인생의 패자에서 성공자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만 가지면, 그리고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면, 그는 고독의 사막에 자신의 삶의 나무를 심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나무를 심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