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36회 - " 좌우를 살피는 시간 "

영광도서 0 1,100
시계가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해가 뜨면 아침을 먹고 일하다 배고프면 점심을 먹고, 해 저물면 저녁을 먹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셈하고,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한 바퀴 돌면 해가 바뀐 것으로 계산하고, 달이 차면 기울기를 한 차례씩 하면 한 달이 가는 걸로 계산했습니다. 그때에도 지금과 똑같이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랬는데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살기 시작하더니 도시가 생겼고 시계란 괴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놈의 재깍 거리는 소리는 시간을 더 빨리 가게 했습니다. 더 바쁘게 했습니다. 계산이 정확할수록 점점 바빠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변함이 없는데 시계가 생긴 이후로 시간은 미친 것처럼 빨리 갑니다. 이를테면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점차 빨리 달려갑니다. 시간이 빨리 달려갈수록 사람들은 그 시간을 따라 빨리 달려갑니다. 그러면 시간은 더 빨리 도망갑니다. 그러니 바삐 살수록 점점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순간 멈추지 않으면 시간을 쫓다가 그렇게 끝내고 맙니다. 그러니까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시간은 가든 말든 가게 내버려두고 쉼을 얻어야 합니다. 시계를 보지 않고 살아도 봐야 합니다. 시간이란 보면 볼수록 마음을 바쁘게 만드는 괴물입니다. 그 괴물을 보면 볼수록 나의 시간과 남의 시간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우리를 미치도록 바쁘게 합니다.

남이야 어찌 살든 나는 여유 있게 살면 될 것을 남을 따라 살려니까 마음이 바빠지고, 마음대로 안되니까 짜증만 납니다. 그러니 시계가 없는 삶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모모의 시간은 시계를 보지 않는 시간입니다. 시계라곤 구경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저 해가 뜨면 아침이구나, 해가 지면 저녁이구나, 별이 뜨면 아름다운 밤이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은 분위기의 동물인지라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에 따라 시간의 개념은 아주 다릅니다. 그러니까 모모처럼 살아보란 말이지요. 시계가 없는 곳에 퍼질러 보내기도 하란 말이지요.

이를테면 사우나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걸치지 말고, 아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일랑 보지 말고 마음 푹놓고 쉬어보란 말이지요. 물론 다른 생각도 아예 하지 말란 말이지요. 그저 읽고 싶은 책 한 권에 빠져보란 말이지요. 그렇게 하루라도 못 보내보고 산다는 건 얼마나 각박한 삶이냐고요. 어쩌다 그런 삶을 누려보란 말이지요. 할 수 있을 때 해보라고요, 아니 작심하고 가끔 해보란 말이지요. 그 정도 용기를 낼 수 없다면 평생 시간의 노예로 살다 만다니까요.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마음 넉넉한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부자보다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군요. 그래서 모모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부자나 권세 있는 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삶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어린애들이랍니다. 그저 뭔가를 얻으려 시간을 재는 사람들은, 남과 비교나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도, 그걸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달려갈 줄만 알지 삶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삶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진정한 인생의 과정을 안다면 그렇게 달려만 가다 말 삶을 왜 추구하겠어요. 오늘이 언제까지 이어질 줄만 아는 게지요.

시간, 바쁘다 바빠, 그렇게 살아야만 잘 사는 건지 생각하는 아침이었으면 해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 고은 선생의 시에서 깨우쳐 주는 것처럼, 올라갈 때 꽃을 못 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올라가면서 꽃을 못 보는 사람은 끝까지 그 꽃 못 보고 말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올라가면서도 이것 저것 보면서 살아야 해요. 앞만 보면서 사는 사람은 끝까지 즐겁지 못해요. 올라가면서도, 힘들어도, 바빠도, 괴로워도 볼 것은 보면서, 만날 사람 만나면서, 즐길 것은 즐기면서 살아야 해요. 그러면 한결 여유가 생겨요. 멈추지 않으면 안 보여요. 그냥 바빠요. 멈추면 보여요. 아니 멈추지는 않더라도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보여요.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오늘부터 좀 앞뒤좌우도 돌아보면서 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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