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62회 - "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행복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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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지금 내가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시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시간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시간들, 가치를 부여한 시간들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시간을 죽이고 살리는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간을 살리고 죽이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간을 죽이며 산다는 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헛되지 않게 받아들이자고요. 지금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자는 겁니다.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무엇이든 누구든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모아 한 사람에게 건네줄 수도 없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들, 그 시간의 주인인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그 시간을 관리하며 삽니다. 그 시간 안에서 뭣이든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의 주인으로 살지만, 어떤 이는 그 시간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시간의 노예로 삽니다. 시간의 노예로 사는 이들은 자기 철학이 없습니다. 때문에 남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데, 이들은 그저 시간에만 매달려 허둥댑니다. 자신 나름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서 정신 없이 바삐 삽니다. 그럼에도 남들처럼 살지 못하면 불안해 합니다. 초조해 합니다. 조바심합니다.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을 경계하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시간은 바쁜 사람에게도, 한가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속도로 일정한 양을 거두어 갑니다. 그렇게 거두어 가는 양만큼 주어진 시간의 양이 줄어듭니다. 그 줄어든 만큼 세포는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가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에 따라 몸은 팽창할 대로 팽창하여 탄력을 자랑하다가 점차 그 탄력을 잃어 시들 마른 풀처럼 주름져 갑니다. 그것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시간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대를 들이대고, 동일한 저울로 삶의 무게를 달며, 동일한 칼로 삶을 재단합니다.
그 시간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시간은 냉혹하고 무척 차갑습니다. 소름이 돋을 만큼 두렵고 원망스럽습니다. 만일 흐르는 시간을 그렇게 생각하며, 못다한 일들에 아쉬움을 한없이 되새김하며 산다면 그건 시간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시간은 차갑습니다. 반면 누군가에겐 시간은 참 따뜻합니다. 그 시간이 고맙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호흡한다는 걸 즐기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사랑하며, 자기 성숙을 사랑하며, 자기 노년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시간은 따뜻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이에게 세상은 살만합니다. 과연 그는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아 고맙다! 따뜻한 시간이며, 다정한 시간이여 고맙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숙한 삶에서 성숙한 삶으로 옮겨준 시간에게, 철 없이 타자를 불편하게 하던, 피해를 주던 삶에서 타인에게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고, 도움을 줄줄 아는 삶의 연륜을 갖도록 변화의 기회를 준 시간에게, 그저 반항하고 싶은 삶에서 순리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시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처럼 사는 이가 시간의 주인입니다. 자신의 시간, 현재를 사랑할 줄 알고, 그 현재 속의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은 시간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행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할 의무를 소명으로 타고 난 신의 자녀입니다.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무엇이든 누구든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모아 한 사람에게 건네줄 수도 없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들, 그 시간의 주인인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그 시간을 관리하며 삽니다. 그 시간 안에서 뭣이든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의 주인으로 살지만, 어떤 이는 그 시간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시간의 노예로 삽니다. 시간의 노예로 사는 이들은 자기 철학이 없습니다. 때문에 남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데, 이들은 그저 시간에만 매달려 허둥댑니다. 자신 나름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서 정신 없이 바삐 삽니다. 그럼에도 남들처럼 살지 못하면 불안해 합니다. 초조해 합니다. 조바심합니다.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을 경계하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시간은 바쁜 사람에게도, 한가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속도로 일정한 양을 거두어 갑니다. 그렇게 거두어 가는 양만큼 주어진 시간의 양이 줄어듭니다. 그 줄어든 만큼 세포는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가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에 따라 몸은 팽창할 대로 팽창하여 탄력을 자랑하다가 점차 그 탄력을 잃어 시들 마른 풀처럼 주름져 갑니다. 그것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시간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대를 들이대고, 동일한 저울로 삶의 무게를 달며, 동일한 칼로 삶을 재단합니다.
그 시간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시간은 냉혹하고 무척 차갑습니다. 소름이 돋을 만큼 두렵고 원망스럽습니다. 만일 흐르는 시간을 그렇게 생각하며, 못다한 일들에 아쉬움을 한없이 되새김하며 산다면 그건 시간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시간은 차갑습니다. 반면 누군가에겐 시간은 참 따뜻합니다. 그 시간이 고맙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호흡한다는 걸 즐기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사랑하며, 자기 성숙을 사랑하며, 자기 노년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시간은 따뜻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이에게 세상은 살만합니다. 과연 그는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아 고맙다! 따뜻한 시간이며, 다정한 시간이여 고맙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숙한 삶에서 성숙한 삶으로 옮겨준 시간에게, 철 없이 타자를 불편하게 하던, 피해를 주던 삶에서 타인에게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고, 도움을 줄줄 아는 삶의 연륜을 갖도록 변화의 기회를 준 시간에게, 그저 반항하고 싶은 삶에서 순리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시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처럼 사는 이가 시간의 주인입니다. 자신의 시간, 현재를 사랑할 줄 알고, 그 현재 속의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은 시간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행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할 의무를 소명으로 타고 난 신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