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74회 - " 아무 데도 없는 집의 시간 "

영광도서 0 1,720
시간이 있기는 한가요? 시간을 본 적이 있냐고요.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을 믿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은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셈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사람은 인구의 절반이라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믿는 사람은 인구의 전부니까요. 신이나 시간이나 보이지 않기는 매 한 가지이지만, 사람들은 신은 믿지 않아도 시간은 있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믿느냐고요? 나름의 상징을 만들어 그것을 믿습니다.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그게 상징입니다. 일단 상징이 만들어지면 실체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믿는 사람에겐 존재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겐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종교에 따라 각 종교에 맞는 상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 안에 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어떤 신을 믿느냐에 따라 신의 모습은 다른 모양, 다른 인격을 만나는 겁니다. 이렇게 종교에 따라 신은 다른 모습이지만, 시간이란 것은 모두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을 사람들은 모두 일정한 흐름으로 흐르는 도구를 만들고, 그 약속을 함께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의 모습은 상상하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있다 없다도 따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어떤 신보다도 확고한 위치를 잡고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주 다양하지만 같은 속도를 재는 시계, 그 시계를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살고 있습니다.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은 시간을 있다 없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 존재들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냥 살아갑니다. 그야말로 순리대로 삽니다. 바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습니다. 시간을 잴 일도 없습니다. 살면서 체득한 대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종족보존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존재도 얼마든 있습니다. 인간이 시간을 잴 수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위대하달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뿐 어어떤 존재든 생장소멸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떠나는 신화 여행, 그리스 신화 기본 개념서>

인간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시간이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겁니다. 인간이 시간을 모셔놓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존재합니다. 여타의 동물들은 그저 생존의 문제, 종족보존의 문제로 서로를 비교할 뿐입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만 생각하고 다른 존재보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더디게 살아갈 뿐입니다. 인간만이 시간을 모셔놓고 그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마치 신을 믿으며, 신에게 복종하듯이 말입니다. 시간은 없고 생장소멸만 있을 뿐인데, 우리 인간이 시간이란 신을 만들어 모시고 있을 뿐입니다.

이 시간, 시간은 공간과 존재와 함께 더불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공간이 없다면, 존재가 없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없는 거리'의 '아무 데도 없는 집'에선 시간의 흐름은 달리 해석됩니다. "시간의 소용돌이 때문이지. 그 거리에서는 모든 것을 거꾸로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아무 데도 없는 집 주변에선 시간이 거꾸로 흐른단다. 다른 데서는 시가이 네 안으로 들어오지. 그래서 네 안에 점차 많은 시간이 쌓이면서 나이를 먹게 되는 거야. 허나 '언제나 없는 거리'에서는 시간이 빠져나간단다. 그 거리를 지나는 동안 네 나이가 어려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 많이는 아니고, 네가 그 거리를 지날 때에 걸린 시간만큼만."

시간이 우리를 나이 먹게 하고, 시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늙게 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은 무에서 와서 무로 흐릅니다. 존재도 무에서 와서 무로 사라집니다. 그러니 시간을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시간을 재면서 산다고 더디 늙고 더디 소멸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우리의 생장소멸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그저 살아 있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에 강박관념을 갖지 말자고요. 아! 그렇군요. 사람이라면 모두가 시간을 재기 때문에 우리 또한 시간의 구속을 받을 수밖에 없군요.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언제나 없는 거리의 아무 데도 없는 집에서 여유를 즐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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