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81회 - " 컵라면을 먹으며 "

영광도서 0 1,055
산에 올라 컵라면을 먹습니다. 훤히 내려다보는 세상이 제법 평온해 보입니다. 저 아래 사는 사람들 모두 서로서로 정답게 사는 듯 합니다. 정다운 인사를 나누며, 사이좋게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물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살 듯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서로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모습들이 마냥 평화롭습니다. 어디서 불어왔을까, 사람들의 마을에 부는 바람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바람, 참 신선하고, 신선하다 못해 참 맛이 있습니다. 산에선 무엇이든 맛이 있습니다. 컵라면의 맛이 제맛이요. 커피 맛도 제맛이요. 막걸리 맛도 꿀맛입니다. 그뿐인가요. 온몸으로 느껴지는 산바람의 맛은 어떻고요. 여기 저기 시선을 돌려보면 눈맛이 제격입니다.

눈맛으로 치면 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들, 아니 정경들이 기막히게 맛이 있습니다. 그럭저럭 눈을 호강시켜주는 산의 정경들을 실컷 맛 보노라면 이번엔 입이 쩝쩝 입맛을 다십니다. 어느새 제대로 살짝 불궈진 컵라면을 가만 들여다보면 벌써 군침이 돕니다. 컵라면 라면발을 보면 벌써 눈으로도 맛이 있습니다. 눈이 분위기를 잡아 입맛을 돋구니 실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입속으로 들어가면 그 맛이 가히 천하일미입니다. 맛으로 맛을 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자아내는 맛이야 산에 올라, 제대로 힘들게 올라서 먹는 맛이 최고입니다.

컵라면을 먹습니다. 꿀맛 말고 다른 맛으로, 맛이 아주 좋다는 의미의 형용사를 찾을 수 없으니 그저 꿀맛이라고 해두자고요. 꿀맛처럼 좋은 라면을 먹다가 참 이상합니다. 꼬불꼬불한 라면발의 시작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 그게 참 궁금합니다. 후루룩 삼키다 말고 그게 궁금합니다. 저 꼬불꼬불하니까 더 맛이 있는 라면발, 저게 국수처럼 이 끋 저 끝이 쉽다면, 라면 맛이 있을까 하고요. 꼬불꼬불하지 않은 라면이 있다면 이 맛이 날까요. 아무리 같은 맛이라도 꼬불꼬불한 맛이 더 좋을 까닭은 없는데, 라면발이 국수발처럼 단순하다면 지금의 라면 맛이 날까, 그것도 궁금합니다. 하여 저 놈의 시작과 끝이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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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을 먹으며/ 최복현


때로 사람들의 마을을 떠나 산에 오른다
애써 오른 산에서는 컵라면이 꿀맛 이상이다
곧지 않고 꼬불꼬불한 면발
이미 눈으로 맛이 있으니 입밧이 제격이다


젓가락에 둘둘 감아 후룩후룩 몇 가닥 먹다가
파마머리보다 더 곱게 얽히고 설킨
라면발의 어느 끝이 시작인지
어느 끝이 끝인지 그게 왜 궁금하다


후루룩 삼키면 내 안에서 뭉개지든 뭉쳐지든
그저 한 덩어리 똥이 되고 말
라면발의 시작 머리와 끝트머리가 꽤 궁금하다


얽히고 설킨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걸로 치면
꼬불꼬불한 라면발이나 우리 삶의 미로나 거기서 거기라 치자
라면발이야 후루룩 삼키면 그만이다만


라면발처럼 단순한 듯 복잡한
삼킬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삶의 미로가 펼쳐진
사람들의 마을을 향해 여기 시원한 바람을 두고 하산을 시작한다



컵라면, 용기 하나에 담긴 꼬불꼬불한 라면발이나 우리 삶의 미로나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으로 보면 라면발이 복잡하지만, 눈으로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의 길들이 라면발보다 단순하지만, 실제로 그 길을 따라 살려 하면 라면발 못지 않게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게 우리 사는 세상입니다. 라면발이야 불궈지면 불궈질 뿐 변하지 않습니다. 변한들 뭉개질 테니 변할수록 더 단순합니다. 여차하면 먹어버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하나로 뭉쳐져 배설용 덩어리로 끝입니다.

우리 삶의 미로는 변해서 미로입니다. 어제의 마음의 행로가 오늘의 행로가 아닙니다. 어제의 곧은 길이 오늘은 굽이굽이 길이기도 하고, 어제의 굽이 길이 오늘은 곧은 길이기도 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미로들, 사람들 속으로 난 미로들이 이리 저리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내 안에 라면발 같은 마음의 행로가 있듯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행로들 내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안에 미로로 얽힌 미궁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난잡한 마음의 사람들이 모여 사니 우리 사는 세상만큼 복잡한 미궁은 다시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미로 같은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라면발처럼, 아니 라면발보다 더 얽히고 설킨 세상살이, 그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행복하려면 단순하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한 삶을 어떻게 단순하게 사냐고요. 우리 삶의 미로는 복잡하다만 마음먹기에 따라 보다 단순하게 삶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복잡한 미로를 정리하면서 단순하게 살려 노력하자고요. 좋아도 한 세상, 미워도 한 세상이란 노래 가사처럼, 어차피 한 세상 살면서 가능한 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자고요. 먹는 맛이야 꼬불꼬불한 라면 맛이 제격이라지만, 우리 삶은 국수발처럼 단순하게 펴면서 살자고요. 오늘은 우리 삶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숙제를 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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