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82회 - " 터널은 길이니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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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여행을 떠납니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경쟁하듯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길게 잘도 뻗은,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듯 쭉쭉 뻗은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미끌어지져 갑니다. 곧게 뻗은 도로일수록 군데 군데 터널이 자동차를 빨아들이려 기다립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차들이 컴컴한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굽은 길을 곧게 펴기 위해 뚫은 터널, 그 터널을 드나드는 자동차,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그 누구도 터널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터널은 한쪽이 막혀 있는 굴이 아님을, 저쪽으로 열려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굽이 굽이 돌아 돌아 천천히 가던 길을 빨리 가려 곧게 뚫은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잠시 터널 안에 들면 어둡습니다. 공간이 확 좁아집니다.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틈이라곤 없는, 단단해 보이는 콘크리트로 좌우가 막힌 터널을 자동차들은, 아니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그저 길은 길이니 별 생각 없이 통과합니다. 굴처럼 막혀 있지 않아서 이쪽과 저쪽이 통하는 고마움을 생각할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터널은 길입니다. 길게 이어지는 도로 중 한 부분일 뿐 특별한 도로가 아닙니다. 그렇게 수많은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자동차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어떤 길을 지나왔든, 어떤 터널을 통과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는지, 늦었는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많은 터널을 통과하고도 터널의 의미를 앚고 사는 건, 그 어느 곳에 가려면 당연히 그 터널들을 통과해야 할 뿐이라는 것, 그 도로를 지나간다는 것, 그게 길이고, 그게 수단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그냥 길을 가듯 그저 우리는 그 길을 지나갑니다. 다시 그 길 따라 돌아옵니다. 전혀 부담 없는 터널 통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터널은 막힌 길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그냥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나가면 되는 통행로란 걸, 굽은 길을 곧게 펴서 통행을 용이하게 한 길이라는 걸, 그래서 거리를 확 단축시켜주는 길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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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최복현
터널은 들어가는 게 아니야.
통과하는 거고
지나가는 거지
아무리 긴 터널에 들어서도
난 두렵지 않아
난 햇살을
잠깐 피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좋은걸
아무리 깊어도
햇살 한 줌 안 들어와도
양쪽으로 뚫려 있어 터널이니까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련 없이 지나가는 길이니까
터널은 길이니까
길 길 길, 터널은 길이니까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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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줄에 서 있습니다. 모두가 가는 인생이란 줄, 이 행로를 따라가는 큰 흐름은 모두 같지만, 인생 줄에 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행로를 따라가는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각자 고유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겉보기엔 모두 그러하듯 태연하고 대동소이하게 그 줄을 따라 삽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각자 나름의 사건을 만납니다. 이러 저러한 사건들, 그 사건들 앞에서면 반응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이러 저러한 문제들을 만나면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 각자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같은 인생이란 길을 걸어도 누구나 인생을 다르게 느낍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당황하며 우왕좌왕합니다.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 모든 게 인생의 통행로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터널을 지납니다. 그저 터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터널이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저 터널일 뿐인데 그 터널을 터널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앞이 막힌 굴로, 컴컴한 굴로 인식합니다. 터널은 터널일 뿐인데 말입니다.
우리 삶에 어려운 난관, 그 모든 건 터널입니다. 통과하면 그뿐입니다. 단지 마음이, 지레 겁을 먹음이 터널을 앞이 막힌 굴로,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굴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어떤 벽 앞에서도, 그저 한번은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로, 통행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터널 앞에서도 막힌 굴로 여기면 그건 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굴인 것 같아도, 그걸 터널로 여기면 터널입니다. 두려워하면 터널이 굴이 되고, 작은 언덕이 큰 담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하루 막혀 있던 담을 허무는, 막힌 굴을 뚫는 삶이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 굴은 없습니다. 터널만 있습니다.
잠시 터널 안에 들면 어둡습니다. 공간이 확 좁아집니다.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틈이라곤 없는, 단단해 보이는 콘크리트로 좌우가 막힌 터널을 자동차들은, 아니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그저 길은 길이니 별 생각 없이 통과합니다. 굴처럼 막혀 있지 않아서 이쪽과 저쪽이 통하는 고마움을 생각할 이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터널은 길입니다. 길게 이어지는 도로 중 한 부분일 뿐 특별한 도로가 아닙니다. 그렇게 수많은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자동차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어떤 길을 지나왔든, 어떤 터널을 통과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는지, 늦었는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많은 터널을 통과하고도 터널의 의미를 앚고 사는 건, 그 어느 곳에 가려면 당연히 그 터널들을 통과해야 할 뿐이라는 것, 그 도로를 지나간다는 것, 그게 길이고, 그게 수단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그냥 길을 가듯 그저 우리는 그 길을 지나갑니다. 다시 그 길 따라 돌아옵니다. 전혀 부담 없는 터널 통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터널은 막힌 길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그냥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나가면 되는 통행로란 걸, 굽은 길을 곧게 펴서 통행을 용이하게 한 길이라는 걸, 그래서 거리를 확 단축시켜주는 길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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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최복현
터널은 들어가는 게 아니야.
통과하는 거고
지나가는 거지
아무리 긴 터널에 들어서도
난 두렵지 않아
난 햇살을
잠깐 피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좋은걸
아무리 깊어도
햇살 한 줌 안 들어와도
양쪽으로 뚫려 있어 터널이니까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련 없이 지나가는 길이니까
터널은 길이니까
길 길 길, 터널은 길이니까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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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줄에 서 있습니다. 모두가 가는 인생이란 줄, 이 행로를 따라가는 큰 흐름은 모두 같지만, 인생 줄에 선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행로를 따라가는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각자 고유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겉보기엔 모두 그러하듯 태연하고 대동소이하게 그 줄을 따라 삽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각자 나름의 사건을 만납니다. 이러 저러한 사건들, 그 사건들 앞에서면 반응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이러 저러한 문제들을 만나면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 각자 다릅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같은 인생이란 길을 걸어도 누구나 인생을 다르게 느낍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당황하며 우왕좌왕합니다.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 모든 게 인생의 통행로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터널을 지납니다. 그저 터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터널이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저 터널일 뿐인데 그 터널을 터널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앞이 막힌 굴로, 컴컴한 굴로 인식합니다. 터널은 터널일 뿐인데 말입니다.
우리 삶에 어려운 난관, 그 모든 건 터널입니다. 통과하면 그뿐입니다. 단지 마음이, 지레 겁을 먹음이 터널을 앞이 막힌 굴로,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굴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어떤 벽 앞에서도, 그저 한번은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로, 통행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터널 앞에서도 막힌 굴로 여기면 그건 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굴인 것 같아도, 그걸 터널로 여기면 터널입니다. 두려워하면 터널이 굴이 되고, 작은 언덕이 큰 담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하루 막혀 있던 담을 허무는, 막힌 굴을 뚫는 삶이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 굴은 없습니다. 터널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