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85회 - " 솔바람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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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작년 여름이었어요. 한점 바람 없는 무더운 날, 전주에 강의를 갔다가 모악산에 올랐어요. 중인리에서 매봉으로 오르는 능선을 따라 올랐습니다. 그 길에서 바람이 사는 집을 발견했습니다.
산에도 바람의 길이 따로 있습니다. 바람 드센 날에도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 있고, 바람 없는 날에도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모여 사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에도 바람이 모여 사는 바람의 집, 그 집을 지나노라면 바람은 이제 시원함을 넘습니다. 상쾌함을 넘습니다. 바람은 이제 촉각을 넘어 미각으로 다가옵니다. 시원하다는 말로 부족하여 바람은 감미롭습니다. 미각으로 다가옵니다. 맛이 있습니다.
바람의 맛을 느끼려면 무더운 날, 이마에 땀을 연실 훔치며 애써 산을 올라야 합니다. 그렇게 참으면서 오르고 오르다 어디서 생겼는지, 어떻게 살아났는지 소리조차 얻지 못한 바람이 살며시 일어나 불어오는 바람을 만날 겁니다. 다른 곳에는 불지 않는 바람이 여기는 있습니다. 소나무 숲입니다. 한여름에도, 바람 없는 고요한 날에도 솔숲에는 소리를 얻지 못한 바람, 수줍음을 타는 바람이 솔숲에서 가끔 산책을 합니다.
다른 곳에는 잠든 바람이 여기는 깨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선 살지 못한 바람이 여기는 살아 있습니다. 소나무들이 모여 사는 솔숲에선 소나무들 모두 마음을 비우고 삽니다. 아래로는 가지를 떨구고 떨구어 속이 훤합니다. 위로는 약간의 가지만 두어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하여 그늘이 적당히 드리우고, 수많은 기둥들이 모여 선 신전 같은 솔숲에는 바람들이 모여들어 한여름을 즐기는 겁니다. 지나치던 바람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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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최복현
산 아랫말에서 매봉으로 오르는 능선의 솔숲
그 안으로 숨어드는 한여름 바람의 맛이 그윽하다
위로만 가지들을 남겨 지붕으로 삼고
아래로는 가지를 떨구고 떨구어
바람이 맘껏 드나들 수 있는 바람의 집을 지은
솔숲에는 초록 바람이 산들산들 모여 산다
숲에 사는 작은 생명들이 낮잠이라도 깰라
살풋살풋 숨을 죽이며 지나는 솔바람이 감미롭다
오솔길 따라 살금살금 지나노라면 딱 한발 앞선 바람은
엄마가 손수 접어 부쳐주던 종이부채 바람처럼 정답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생글생글 웃다가 울었을
어른의 서글픔을 전혀 몰랐을
엄마가 만들어준 바람으로 시원했을 유년시절이 그립다
내 유년의 엄마의 손부채질 바람을 닮은
초록바람을 모아 바람의 집을 이룬 솔숲 끝에 서면
이마를 서늘하게 하며 문득 몽실몽실 살아오는 유년의 그리움
웃으면서 속으로 울어야 하는 어른이란 이름이 버겁다
바람 없는 길을 가다가 만나는 바람은 참 반갑습니다. 아주 정겹습니다. 한줄기 쉼을 얻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다 그 숨을 잠잠하게 진정시키고 나면 숨어 있던 사람들의 기억이 몽실몽실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다 보면 사람과의 인연을 맺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맺은 인연들, 내 인생을 스쳐간 사람들, 내 인생을 건드리고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들이 스쳐갑니다. 고마운 사람들, 정다운 사람들, 그런 이미지로 살아오는 사람들을 그리움이라 부릅니다.
솦숲에 부는 바람엔 미묘한 색깔이 감도는 듯합니다. 강하지도 아주 여리지도 않을 만큼 잔잔한 바람이지만 제법 이마를 시원하게 합니다. 그럴 때면 지난날 중에서도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 시절을 상상합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저 엄마의 젖만으로 살았을 유년, 아마도 어느 상점에서 구입한 부채는 있을리 없는 엄마는손수 손으로 접은 손부채로 아가의 땀을 식혀주느라 부채질을 하셨을 테지요. 그 바람은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았겠지요. 지금 부는 이 여린 바람이 그 바람을 닮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잔잔하면서 여린 바람이 일렁이는, 없는 듯 있는 듯, 솔숲가에 자란 작은 활엽수의 잎의 흔들림을 보아 느낄 수 있는 솔바람, 그 바람을 만날 즈음에는 처음엔 가벼웠던 등짐이 무게를 더 느끼게 합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같은 짐이라도 무거워지는데, 우리 사람의 삶은 살아가는 만큼, 살아온 만큼 짐이 더해지고 더 무거워집니다. 때로 그 짐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저 유년을 지나면 누구에게나 짐은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지요. 그 짐의 무게를 느낄 때, 하여 삶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 그 땀을 훔쳐줄 그런 사람 없나요? 이 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닮은 사람 말이지요.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이마를 시원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그리움이지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의 이마를 보듬어주고, 그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주고, 조금은 시원하게 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그리움을 넘어 사랑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지요. 사람은 그리움의 바람으로, 사랑의 바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산에도 바람의 길이 따로 있습니다. 바람 드센 날에도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 있고, 바람 없는 날에도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모여 사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에도 바람이 모여 사는 바람의 집, 그 집을 지나노라면 바람은 이제 시원함을 넘습니다. 상쾌함을 넘습니다. 바람은 이제 촉각을 넘어 미각으로 다가옵니다. 시원하다는 말로 부족하여 바람은 감미롭습니다. 미각으로 다가옵니다. 맛이 있습니다.
바람의 맛을 느끼려면 무더운 날, 이마에 땀을 연실 훔치며 애써 산을 올라야 합니다. 그렇게 참으면서 오르고 오르다 어디서 생겼는지, 어떻게 살아났는지 소리조차 얻지 못한 바람이 살며시 일어나 불어오는 바람을 만날 겁니다. 다른 곳에는 불지 않는 바람이 여기는 있습니다. 소나무 숲입니다. 한여름에도, 바람 없는 고요한 날에도 솔숲에는 소리를 얻지 못한 바람, 수줍음을 타는 바람이 솔숲에서 가끔 산책을 합니다.
다른 곳에는 잠든 바람이 여기는 깨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선 살지 못한 바람이 여기는 살아 있습니다. 소나무들이 모여 사는 솔숲에선 소나무들 모두 마음을 비우고 삽니다. 아래로는 가지를 떨구고 떨구어 속이 훤합니다. 위로는 약간의 가지만 두어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하여 그늘이 적당히 드리우고, 수많은 기둥들이 모여 선 신전 같은 솔숲에는 바람들이 모여들어 한여름을 즐기는 겁니다. 지나치던 바람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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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최복현
산 아랫말에서 매봉으로 오르는 능선의 솔숲
그 안으로 숨어드는 한여름 바람의 맛이 그윽하다
위로만 가지들을 남겨 지붕으로 삼고
아래로는 가지를 떨구고 떨구어
바람이 맘껏 드나들 수 있는 바람의 집을 지은
솔숲에는 초록 바람이 산들산들 모여 산다
숲에 사는 작은 생명들이 낮잠이라도 깰라
살풋살풋 숨을 죽이며 지나는 솔바람이 감미롭다
오솔길 따라 살금살금 지나노라면 딱 한발 앞선 바람은
엄마가 손수 접어 부쳐주던 종이부채 바람처럼 정답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생글생글 웃다가 울었을
어른의 서글픔을 전혀 몰랐을
엄마가 만들어준 바람으로 시원했을 유년시절이 그립다
내 유년의 엄마의 손부채질 바람을 닮은
초록바람을 모아 바람의 집을 이룬 솔숲 끝에 서면
이마를 서늘하게 하며 문득 몽실몽실 살아오는 유년의 그리움
웃으면서 속으로 울어야 하는 어른이란 이름이 버겁다
바람 없는 길을 가다가 만나는 바람은 참 반갑습니다. 아주 정겹습니다. 한줄기 쉼을 얻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다 그 숨을 잠잠하게 진정시키고 나면 숨어 있던 사람들의 기억이 몽실몽실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다 보면 사람과의 인연을 맺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맺은 인연들, 내 인생을 스쳐간 사람들, 내 인생을 건드리고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들이 스쳐갑니다. 고마운 사람들, 정다운 사람들, 그런 이미지로 살아오는 사람들을 그리움이라 부릅니다.
솦숲에 부는 바람엔 미묘한 색깔이 감도는 듯합니다. 강하지도 아주 여리지도 않을 만큼 잔잔한 바람이지만 제법 이마를 시원하게 합니다. 그럴 때면 지난날 중에서도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 시절을 상상합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저 엄마의 젖만으로 살았을 유년, 아마도 어느 상점에서 구입한 부채는 있을리 없는 엄마는손수 손으로 접은 손부채로 아가의 땀을 식혀주느라 부채질을 하셨을 테지요. 그 바람은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았겠지요. 지금 부는 이 여린 바람이 그 바람을 닮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잔잔하면서 여린 바람이 일렁이는, 없는 듯 있는 듯, 솔숲가에 자란 작은 활엽수의 잎의 흔들림을 보아 느낄 수 있는 솔바람, 그 바람을 만날 즈음에는 처음엔 가벼웠던 등짐이 무게를 더 느끼게 합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같은 짐이라도 무거워지는데, 우리 사람의 삶은 살아가는 만큼, 살아온 만큼 짐이 더해지고 더 무거워집니다. 때로 그 짐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저 유년을 지나면 누구에게나 짐은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지요. 그 짐의 무게를 느낄 때, 하여 삶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 그 땀을 훔쳐줄 그런 사람 없나요? 이 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닮은 사람 말이지요.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이마를 시원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그리움이지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의 이마를 보듬어주고, 그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주고, 조금은 시원하게 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그리움을 넘어 사랑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지요. 사람은 그리움의 바람으로, 사랑의 바람으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