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94회 - " 삶의 근육을 키워야 할 시간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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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2
세찬 바람에 나무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도 굳건히 선 나무가 있습니다. 같은 세기의 바람을 맞았어도 든든히 서 있습니다. 그 나무는 뿌리를 깊이 그리고 넓게 내린 덕분입니다. 이 나무는 한편으로는 뿌리를 깊이 내려 곧게 서면서 깊은 곳에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뿌리를 여기 저기 넓게 뻗쳐서 다양한 양분과 물을 충분히 흡수합니다. 그렇게 깊게 뿌리를 박아 단단히 서고, 그렇게 뿌리를 넓게 뻗어 많은 땅을 움켜잡으니 웬만큼 강한 바람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무르지 않게 제 몸을 단단한 근육을 늘렸기에 웬만한 바람에도, 웬만한 가뭄에도 든든히 서서 자태를 뽐냅니다.
나무, 우리의 삶을 닮았습니다. 지식으로, 경험으로, 지식과 경험의 조화를 이룬 지혜로 삶의 근육을 키운 사람은 웬만한 고난이나 역경을 당해도 능히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걸 기회로 삼아 오히려 더 강한 삶의 근육을 만들어 갑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 가뭄이나 바람을 이기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고, 폭넓은 경험을 하므로써 삶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 줄 압니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다른 이들의 질투에도, 흔들어댐에도, 시기와 질투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여유 있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성공에도 우쭐하여 안하무인이 됩니다. 저 잘난 맛에 남들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그 상황이 오래 갈 줄로 압니다. 그러다 남들이 조금만 비난을 해도,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크게 낙심하고 맙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런 상황이 두렵고 불안하여 계속 무리하게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입니다. 처음엔 남을 속이다가 점차 그것이 습관화되면 마치 그것을 진실인양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면서도 자기 최면에 빠져 자신이 억지로 만든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신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그러다 시련의 날,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오면 그래도 쓰려져 재기하지 못하고 맙니다.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단계에 이르면 끝장난 인생입니다. 그전에 제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자네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자넬 만든 거야. 자네는 고무인형에 불과해. 우리가 자낼 빵빵하게 불어준 거지. 하지만 우리 비위를 건드리면 다시 공기를 빼낼 거야. 자네는 정말 자네 힘과 보잘 것 없는 재능으로 지금의 자내가 되었다고 믿나?................불쌍한 애송이 기기. 자네는 몽상가고, 영원히 그럴 거야. 예전에 자네는 가난뱅이 기기의 탈을 쓴 기롤라모 왕자였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기롤라모 왕자의 탈을 쓴 기기인 거야. 그래도 우리에게 감사해야 해. 우리 덕분에 자네의 꿈이 실현되었으니까."
처세를 따라, 남들 따라 살다 보니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쯤 되면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돌아가려면 지금까지 애써 이룬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리를, 지금의 지위를, 지금의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이전의 가난했던 날들, 별볼일 없던 날들로 돌아가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기란 어렵습니다. 비록 지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때, 모모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 편히 살았던 때를 기기는 그리워합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자신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의 화려한 삶,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 박수를 받는 삶, 그 모두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게 아주 어렵습니다.
화려한 삶, 주목 받는 삶, 그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어느 순간 그게 제 삶이 아니라는 걸 느끼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컨데 자신은 청중의 어릿광대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우요, 그들의 꼭둑각시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 아름다운 것 같고, 멋진 것 같은 삶 속에 다른 사람들만 있고 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싫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언젠가는 그 모두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얻는 만큼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름 아닌 늘 겸허하게 공부하며, 자신의 삶의 근육을 탄탄하게 키워야 합니다.
나무, 우리의 삶을 닮았습니다. 지식으로, 경험으로, 지식과 경험의 조화를 이룬 지혜로 삶의 근육을 키운 사람은 웬만한 고난이나 역경을 당해도 능히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걸 기회로 삼아 오히려 더 강한 삶의 근육을 만들어 갑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 가뭄이나 바람을 이기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고, 폭넓은 경험을 하므로써 삶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 줄 압니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다른 이들의 질투에도, 흔들어댐에도, 시기와 질투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여유 있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성공에도 우쭐하여 안하무인이 됩니다. 저 잘난 맛에 남들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그 상황이 오래 갈 줄로 압니다. 그러다 남들이 조금만 비난을 해도,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크게 낙심하고 맙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런 상황이 두렵고 불안하여 계속 무리하게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입니다. 처음엔 남을 속이다가 점차 그것이 습관화되면 마치 그것을 진실인양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면서도 자기 최면에 빠져 자신이 억지로 만든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신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그러다 시련의 날,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오면 그래도 쓰려져 재기하지 못하고 맙니다.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단계에 이르면 끝장난 인생입니다. 그전에 제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자네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자넬 만든 거야. 자네는 고무인형에 불과해. 우리가 자낼 빵빵하게 불어준 거지. 하지만 우리 비위를 건드리면 다시 공기를 빼낼 거야. 자네는 정말 자네 힘과 보잘 것 없는 재능으로 지금의 자내가 되었다고 믿나?................불쌍한 애송이 기기. 자네는 몽상가고, 영원히 그럴 거야. 예전에 자네는 가난뱅이 기기의 탈을 쓴 기롤라모 왕자였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기롤라모 왕자의 탈을 쓴 기기인 거야. 그래도 우리에게 감사해야 해. 우리 덕분에 자네의 꿈이 실현되었으니까."
처세를 따라, 남들 따라 살다 보니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쯤 되면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돌아가려면 지금까지 애써 이룬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리를, 지금의 지위를, 지금의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이전의 가난했던 날들, 별볼일 없던 날들로 돌아가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기란 어렵습니다. 비록 지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때, 모모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 편히 살았던 때를 기기는 그리워합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자신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의 화려한 삶,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 박수를 받는 삶, 그 모두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게 아주 어렵습니다.
화려한 삶, 주목 받는 삶, 그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어느 순간 그게 제 삶이 아니라는 걸 느끼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컨데 자신은 청중의 어릿광대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우요, 그들의 꼭둑각시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 아름다운 것 같고, 멋진 것 같은 삶 속에 다른 사람들만 있고 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싫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언젠가는 그 모두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얻는 만큼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름 아닌 늘 겸허하게 공부하며, 자신의 삶의 근육을 탄탄하게 키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