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95회 - "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기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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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2
3.2일엔 지방 강의를 내려갔다가 오후엔 서울에서 강의를 해야 합니다. 해서 조금 미리 아침 메시지를 보냅니다.
붕어빵이라고도 하고 잉어빵이라고도 하는 빵이 있습니다. 똑같은 빵들이 기계 속에서 익어나옵니다. 그러면 모두 같은 이름으로, 같은 가격으로 팔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공산품들이 같은 틀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왜 갑자기 상품 타령이냐고요? 요즘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겁니다. 아이들을 모두 같은 모양 같은 꼴로 키우고 있습니다. 마치 같은 틀에서 만들어지는 공산품처럼, 우리 아이들은 똑같이 피아노학원에 가고, 미술학원에 가고 체육관에 갑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를테면 붕어빵들이 모두 같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 역시 같은 틀에서 찍어내듯 그런 교육과정을 거친다는 겁니다.
이런 교육이나 삶이 아이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원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초조해 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초조해합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비교하며 서로 경쟁하기보다 부모들이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하여 서로 경쟁합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부모가 정해준 삶을 살려 애를 씁니다. 부모의 희망을, 부모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삽니다. 그렇게 어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줘야 착한 아이, 모범생 소리를 듣습니다. 부모가 가라는 곳에 가고, 부모가 하라는 일을 합니다. 언제까지나 부모의 슬하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아이들의 인형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결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바쁘니까 아이들도 덩달아 바쁩니다. 그저 혼자 서서 걸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이 학원 저학원으로 다니느라 바쁩니다. 이 공부 저 공부 하느라 무척 바쁩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의 삶은 그대로 바쁘게 바쁘게 어른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애써 배우고 익힌 것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모두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남들이 배우는 것이라면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들이 안달나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랬던 것이 아이들에게 전염이 되어 중.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초조함부터 배워 왠지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합니다.
어른들을 바쁘게 바쁘게 만들었던 시간관리하는 회색신사들이 이제는 어린 아이들 마저 바쁘게 만들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시간을 잘 관리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을 부추깁니다. 해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간표까지 짜 놓고 그 시간표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시간에 쫓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고삐 매여진 송아지처럼 제 자신의 생각은 무시 당하고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이리 저리 끌려다닙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나보다 잘난 이웃 친구와 비교 당하며 치욕을 겪어야 합니다.
게다가 어른들이 어떤 모범생이란 모델을 정해 놓으면 그 모범생과 똑같이 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붕어빵 기계에서 빠져나오는 붕어빵들처럼 되려고, 공장의 어떤 틀에서 구워져 나온 공산품들처럼 되려고 그렇게 남을 닮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그렇게 닮은 꼴이 되면 훌륭하다, 모범생이다, 성공했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로, 불량학생으로, 실패자도 낙인을 받습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어른들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살아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율 없는 삶을 사는 겁니다.
어려서는 바쁘지 않아도 될 텐데도 어른들의 극성으로 아이들도 바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진정한 삶을 배우는 게 아니라 바쁘게 사는 법만 배웁니다. 개성을 배우는 게 아니라 몰개성을 배웁니다. 자율을 배우는 게 아니라 타율을 배웁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하는 데도 매우 어려워 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라 세상에 맞춰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똑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되려 합니다. 그리고 그걸 성공이라 여깁니다. 그러니까 아이 적부터 붕어빵 연습, 공산품 연습만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삽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자율을 가르쳐야 합니다.
붕어빵이라고도 하고 잉어빵이라고도 하는 빵이 있습니다. 똑같은 빵들이 기계 속에서 익어나옵니다. 그러면 모두 같은 이름으로, 같은 가격으로 팔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공산품들이 같은 틀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왜 갑자기 상품 타령이냐고요? 요즘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겁니다. 아이들을 모두 같은 모양 같은 꼴로 키우고 있습니다. 마치 같은 틀에서 만들어지는 공산품처럼, 우리 아이들은 똑같이 피아노학원에 가고, 미술학원에 가고 체육관에 갑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를테면 붕어빵들이 모두 같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 역시 같은 틀에서 찍어내듯 그런 교육과정을 거친다는 겁니다.
이런 교육이나 삶이 아이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원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초조해 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초조해합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비교하며 서로 경쟁하기보다 부모들이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하여 서로 경쟁합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부모가 정해준 삶을 살려 애를 씁니다. 부모의 희망을, 부모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삽니다. 그렇게 어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줘야 착한 아이, 모범생 소리를 듣습니다. 부모가 가라는 곳에 가고, 부모가 하라는 일을 합니다. 언제까지나 부모의 슬하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아이들의 인형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결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바쁘니까 아이들도 덩달아 바쁩니다. 그저 혼자 서서 걸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이 학원 저학원으로 다니느라 바쁩니다. 이 공부 저 공부 하느라 무척 바쁩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의 삶은 그대로 바쁘게 바쁘게 어른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애써 배우고 익힌 것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모두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남들이 배우는 것이라면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들이 안달나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랬던 것이 아이들에게 전염이 되어 중.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초조함부터 배워 왠지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합니다.
어른들을 바쁘게 바쁘게 만들었던 시간관리하는 회색신사들이 이제는 어린 아이들 마저 바쁘게 만들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시간을 잘 관리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을 부추깁니다. 해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간표까지 짜 놓고 그 시간표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시간에 쫓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고삐 매여진 송아지처럼 제 자신의 생각은 무시 당하고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이리 저리 끌려다닙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나보다 잘난 이웃 친구와 비교 당하며 치욕을 겪어야 합니다.
게다가 어른들이 어떤 모범생이란 모델을 정해 놓으면 그 모범생과 똑같이 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붕어빵 기계에서 빠져나오는 붕어빵들처럼 되려고, 공장의 어떤 틀에서 구워져 나온 공산품들처럼 되려고 그렇게 남을 닮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그렇게 닮은 꼴이 되면 훌륭하다, 모범생이다, 성공했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로, 불량학생으로, 실패자도 낙인을 받습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어른들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살아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율 없는 삶을 사는 겁니다.
어려서는 바쁘지 않아도 될 텐데도 어른들의 극성으로 아이들도 바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진정한 삶을 배우는 게 아니라 바쁘게 사는 법만 배웁니다. 개성을 배우는 게 아니라 몰개성을 배웁니다. 자율을 배우는 게 아니라 타율을 배웁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하는 데도 매우 어려워 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라 세상에 맞춰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똑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되려 합니다. 그리고 그걸 성공이라 여깁니다. 그러니까 아이 적부터 붕어빵 연습, 공산품 연습만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도 모르고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삽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자율을 가르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