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909회 - " 일상에서 떨어져 생각하기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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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2
이상하게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은 결말이 나지 않고 아쉽게 끝납니다. 채 꿈이 끝나기 전에 잠이 깨기 때문입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같은 꿈을 꾸는 산티아고, 그는 양치기입니다. 오랫동안 양치기로 살아 온 그는 양에 관한한 아주 해박합니다. 이 친구의 특징이라면 다른 양치기들과 달리 책을 잘 읽는다는 점입니다. 양치기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데 산티아고는 글을 읽을 줄 앍고, 덕분에 항상 책을 읽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그가 꿈을 꿉니다. 그것도 같은 내용의 꿈을 바복해서 꿉니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코엘료는 여기서 소명이라는, 운명지어진이라는 도식을 끌어냅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 같은 맥락입니다. 꿈은 현실의 반병이라는 도식입니다. 따라서 산티아고는 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꿈에서 계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알려준 신호를 따라 전진할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를 갖고 나아가다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 아니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티아고는 그런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다른 양치기와는 다른 그만의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일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우선 꿈을 잘 꾸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처럼 말입니다. 요셉이 꿈을 이루려고 자의든 타의든 에집트로 떠났듯이, 에집트에서 온갖 수난과 고통을 겪은 후에 자신의 형제들과 아버지를 기근에서 구했듯이, 산티아고 역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산티아고는 다른 목동들과 달리 글을 읽을 줄 안다, 책을 잘 읽는다, 고로 생각할 줄 안다는 면이 특별합니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양치기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게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티아고는 가만 생각합니다. 왜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꿀까, 그리고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봅니다. 자신은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는 양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봅니다. "저 양들은 이젠 나에게 아주 익숙해져서 내 일과 시간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는 거야."라고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반대로 생각해 봅니다. 양들이 그에게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양들과 그 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 거기에서 진정한 깨달음이 옵니다. 익숙함, 일상, 거기에선 새로운 뭔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이 깨어질 때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산티아고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주면서 일으켜세우고 그들에게 책의 구절들을 들려줍니다. 양들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산티아고와 양은 교감을 잘합니다. 그런데 같은 꿈을 꾸면서 그가 양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과는 다릅니다.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만을 반복한답니다. 그 소녀는 나흘 후면 그가 사는 곳으로 올 거랍니다. 어쩌면 그와 소녀와의 만남은 새로운 일을 가져다줄지 모르지요. 양과 자신의 관계에서, 그와 소녀와의 관계로 삶의 중요한 이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양을 치는 일로, 소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로 귀결이 될지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고 나면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삶이 이어지겠지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양치기들이 살아가는 일들과 대동소이한 일들일 거예요. 특별할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양치기로 살겠네요. 그런데 그는 다른 양치기들과 달라야 하잖아요.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고, 그래도 글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사람에겐 전조가 있습니다. 자신을 알려주는 전조, 신호나 기호 같은 것 말입니다. 애초의 기억에, 우리가 꾸는 꿈에 그 전조가 숨어 있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 그것의 기호에 숨어 있는 것이 무의식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산티아고는 제 길을 제대로 찾을 겁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그것은 산티아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발견이 인도해 줄 겁니다. 자신을 돌아보자고요. 뭔가 나만의 것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겁니다. 일상에 묻혀서 내가 잊고 있는 것이 있을 거예요. 일상은 더 이상 다른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 주지 않으니까요. 자동화된 나의 일상, 그 일상에서 한 번쯤 벗어나봐야 나 자신 속에 꿈틀대는 끔이든 욕망이든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발견해야 합니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 욕망이 언제 나를 괴롭힐지 모르니까요. 후회하게 할지 모르니까요. 그러니 지금 역지사지로, 일상에서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고요.
그런 그가 꿈을 꿉니다. 그것도 같은 내용의 꿈을 바복해서 꿉니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코엘료는 여기서 소명이라는, 운명지어진이라는 도식을 끌어냅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 같은 맥락입니다. 꿈은 현실의 반병이라는 도식입니다. 따라서 산티아고는 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꿈에서 계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알려준 신호를 따라 전진할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를 갖고 나아가다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 아니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티아고는 그런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다른 양치기와는 다른 그만의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일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우선 꿈을 잘 꾸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처럼 말입니다. 요셉이 꿈을 이루려고 자의든 타의든 에집트로 떠났듯이, 에집트에서 온갖 수난과 고통을 겪은 후에 자신의 형제들과 아버지를 기근에서 구했듯이, 산티아고 역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산티아고는 다른 목동들과 달리 글을 읽을 줄 안다, 책을 잘 읽는다, 고로 생각할 줄 안다는 면이 특별합니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양치기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게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티아고는 가만 생각합니다. 왜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꿀까, 그리고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봅니다. 자신은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는 양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봅니다. "저 양들은 이젠 나에게 아주 익숙해져서 내 일과 시간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는 거야."라고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반대로 생각해 봅니다. 양들이 그에게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양들과 그 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 거기에서 진정한 깨달음이 옵니다. 익숙함, 일상, 거기에선 새로운 뭔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이 깨어질 때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산티아고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주면서 일으켜세우고 그들에게 책의 구절들을 들려줍니다. 양들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산티아고와 양은 교감을 잘합니다. 그런데 같은 꿈을 꾸면서 그가 양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과는 다릅니다.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만을 반복한답니다. 그 소녀는 나흘 후면 그가 사는 곳으로 올 거랍니다. 어쩌면 그와 소녀와의 만남은 새로운 일을 가져다줄지 모르지요. 양과 자신의 관계에서, 그와 소녀와의 관계로 삶의 중요한 이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양을 치는 일로, 소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로 귀결이 될지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고 나면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삶이 이어지겠지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양치기들이 살아가는 일들과 대동소이한 일들일 거예요. 특별할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양치기로 살겠네요. 그런데 그는 다른 양치기들과 달라야 하잖아요.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고, 그래도 글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사람에겐 전조가 있습니다. 자신을 알려주는 전조, 신호나 기호 같은 것 말입니다. 애초의 기억에, 우리가 꾸는 꿈에 그 전조가 숨어 있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 그것의 기호에 숨어 있는 것이 무의식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산티아고는 제 길을 제대로 찾을 겁니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그것은 산티아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발견이 인도해 줄 겁니다. 자신을 돌아보자고요. 뭔가 나만의 것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겁니다. 일상에 묻혀서 내가 잊고 있는 것이 있을 거예요. 일상은 더 이상 다른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 주지 않으니까요. 자동화된 나의 일상, 그 일상에서 한 번쯤 벗어나봐야 나 자신 속에 꿈틀대는 끔이든 욕망이든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발견해야 합니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그 욕망이 언제 나를 괴롭힐지 모르니까요. 후회하게 할지 모르니까요. 그러니 지금 역지사지로, 일상에서 떨어져서 생각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