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912회 - " 꿈과 현실 사이 "

영광도서 0 1,490
미래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그런 꿈이 아니라 밤마다 꾸는 꿈, 그 꿈은 개꿈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의 발현으로 봤습니다. 잠을 잘 때는 의식이 느슨해져 있기 때문에 그 틈을 타 무의식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무의식이란 억압되어 쌓여 있던 욕망들이라는 것이고요. 이 무의식이 의식의 표면 위로 나오려고 틈을 노리다가 의식이 느슨해지거나 잠든 사이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데, 그대로의 모습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꿈은 그렇게 나오는 무의식의 모습이랍니다. 욕망의 원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꿈은 해몽이 필요한 것이고요.

프로이트가 생각한 무의식은 과거에 형성된 것이라면, 아들러는 그다지 오랜 과거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경우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싼다면, 아이는 받고 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겼기 때문에 밤에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겁니다. 물론 아이는 일부러 오줌을 싸는 것이 아니니 그 또한 무의식이긴 합니다. 이불에 오줌을 싼다와 관심을 가져달라는 사이엔 곧바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꿈은 어떻게 해걱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꿈은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성경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꿈은 현실과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잘 해석하지 못할 뿐입니다. 때문에 꿈은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해석하지 못하는 꿈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산티아고도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집트의 피라미드로 가서 부자로 만들어줄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꿈)을 해몽하려고 합니다. 노파는 그에게 "지극히 단순한 것이 실은 가장 비범한 것이야. 현자들만이 그런 것을 알 수 있지."라고 말합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노파의 입을 빌려 "꿈이란 곧 신의 말씀이지. 신이 이 세상의 언어로 말했다면 나는 자네의 꿈을 풀어줄 수 있어. 그러나 만약 신이 자네의 영혼의 언어로 말했다면 그건 오직 자네 자시만이 이해할 수 있다네."라고 말합니다. 꿈을 두 가지로 분류한 것이지요. 하나는 신의 언어이니, 그것은 현자만이 풀어줄 수 있는 계시요,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언어이니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계시를 받았다 한들 그것을 해석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산티아고는 연달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습니다. 그 꿈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가면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거라는 꿈입니다. 잘 해석된 꿈일까요? 그건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를 놓고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옳다 아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꿈이란 시인이 사물을 빗대어 삶을 노래한 시와 같습니다. 지접 대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로 말하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의미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꿈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기보다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이 해몽이건 해석 아니겠어요.

꿈은 아니라도 우리는 늘 세상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렇게 주어지는 메시지를 그냥 넘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메시지를 발견하고 깨달은 사람, 그를 우리는 현자라고 합니다. 또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그냥 시를 쓴다고 다 시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요. 어떤 사건에서, 어떤 대상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지극히 단순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아낸다면 그는 현자요 시인입니다. 그 무엇이든 평범하게 보지 않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 애쓰면서 바라보면 그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꿈에만 국한하지 말고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자고요.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스스로 깨달아 보자고요. 나는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 건지, 무엇이 절박한지, 그리고 용기 있게 원하는 삶을 찾아가자고요. 원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보물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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