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914회 - " 나이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까닭 "

영광도서 0 1,471
"나이든 사람에겐 예의를 갖춰야 해."

티치아노가 그린 자화상을 보면, 위로는 우로부터 좌로 소년, 어른, 노인이 그려져 있고, 그것들이 아래에 비춰지는 거울효과로 그려져 있는데, 아래 비친 그림자는 소년 아래엔 개, 어른 아래엔 사자, 노인 아래엔 늑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노인은 늑대와, 어른은 사자와, 소년은 개와 품성이 같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우리 사람들, 인생의 자화상이랍니다. 어려서는 개처럼, 어른은 사자처럼, 노인은 늑대처럼 산다는 것이니, 그 각 동물의 품성을 알면, 인생의 단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년은 개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꿈을 갖고 앞으로 철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니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살아갈 겁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려니, 어른이 조언한들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노인이 조언하면 잔소리로 무시할 겁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지만, 이건 나이가 들건 들지 않았건, 사람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싶어합니다. 자신은 성숙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쓰라린 고생이나 고통을 하고 나서야, 세상 일이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소년은 어른이 됩니다. 아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주변을 의식할 겁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정이 많은 시절이니, 무엇보다 자신의 열정, 자신의 능력을 믿으니, 자신감이 충만합니다. 꿈만 꾸었던 소년 시절과는 달리 무엇이든 실천하고, 때로는 무모한 일에도 뛰어듭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긴 시절입니다.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시절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자신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이때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증에 빠질 수 있는 때도 이때입니다. 전진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넘어질까 두렵기도 한 갈랫길의 시절입니다.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중반, 이 시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찬란하면서도 괴로웠던, 힘겨우면서도 보람 있었던, 한 일도 많았으나 아픔이나 쓰라림도 많았던 중년의 강을 건너 노년으로 접어듭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든,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도전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 마음 먹은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깨닫습니다. 열정과 힘만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없음을 압니다. 다른 이의 조언을 무시했던 것, 제 힘만 믿었던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힘이 없다, 열정도 전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노년은 이제 늑대처럼 삽니다. 늑대처럼 주변에 사는 이들이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 힘의 자리에 지혜를 놓습니다. 열정 대신에 효율성을 놓습니다. 효율성이나 생산성, 힘으로만 하지 않고, 효율성을 생산성을 찾아내는 것, 그것을 지혜라 부릅니다. 노인은 소년처럼 아름다운 꿈을 더 이상 갖지 않습니다. 중년처럼 힘으로 밀어붙이지도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일을 벌리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인이 소년보다 중년보다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노인은 힘 대신, 열정 대신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조건은 안 좋게 세상에 왔으나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은 가질 수 없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노인은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힘 대신 지혜를 키웁니다. 무조건 일을 하기 전에 생산적으로, 효율적으로 그 일을 하려고 궁리합니다. 거기서 얻어지는 지혜, 그 지혜로 노인은 힘을 능가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약하지만 노인은 중년보다 오히려 강합니다. 지혜가 노인을 강하게 합니다. 꿈의 옷, 힘의 옷보다 더 아름다운 옷의 주인공, 지혜로운 노인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문장을 바꿉니다.

"나이든 사람에겐 예의를 갖추고,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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