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도봉산의 해피엔딩

영광도서 0 1,431

끈적끈적합니다. 습습한 공기가 마치 온몸에 딱 달라붙은 듯합니다. 거짓말처럼 하늘은 갑자기 저리 높은데, 분위기는 완전히 갈아앉은 듯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초목은 춤을 춥니다. 간혹 불어오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수목들의 초록 일렁거림에 숲의 윤곽을 두른 초록의 능선이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아파트 단지의 잔뜩 모여선 나무들이 일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가만 있을 수 없습니다. 하여 짐을 꾸려 길을 나섭니다. 멀지 않은 산, 늘 뒷산이라 부르는 도봉산에 갑니다.

 

전철역에서 많이 걷지 않았는데 벌써 이마가 끈적끈적합니다. 땀 나지 않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포기하고 그냥 걷습니다. 최소한의 준비물로 물 두 병, 컵라면 한 개, 이게 전부입니다. 무게를 최소한으로 했음에도 보온물통의 무게인지 벌써 무겁습니다. 분위기는 사뭇 무겁고, 몸은 벌써 끈적거림을 느낍니다. 그래도 눈을 들어 산쪽을 올려다보면 언제나 동양화처럼 멋지고 우람한 도봉산 정상이 그윽한 시선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냥 올려다보기만 해도 좋은 기분,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입니다.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면 작은 파문이 일어 동심원이 사방으로 그려져 나가듯, 산 발치에 서니 설렘이 살그마니 일어납니다.

 

"내가 여기를 자주 찾는 이유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기 때문이지."하던 코메디의 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설렘을 안고 다락능선으로 길을 잡습니다. 산에 들어서니 어제 내린 비로 깨끗합니다. 어서 오라는 듯 간밤에 물청소를 깔끔하게 끝낸 길입니다. 초록은 더 말끔합니다. 어디를 흔들어도 먼지 하나 날리지 않습니다. 아주아주 깔끔합니다. 새들이 불러주는 노래도 깔끔합니다. 새들의 목소리에도 먼지 한 톨 없는 듯 영롱합니다. 모처럼 계곡도 살아납니다. 계곡도 모처럼 살아나 생명이 약동하는 노래, 삶의 찬가를 부릅니다.

 

도봉산에서 우측으로 다락능선, 우측으로 보문능선이 마치 커다란 하트를 그려놓은 듯 합니다. 특이하게도 다락능선은 억세고 험합니다. 남성적인 미를 자랑합니다. 반면 보문능선은 부드러운 것이 여성미를 자랑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겉보기는 유사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보문능선은 부드러운 육산이요, 다락능선은 바위들의 연속입니다. 가끔 뭔가 자극이 필요하다, 맥이 없다, 삶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싶을 때, 이 길을 걷습니다. 팔힘도 쓰고 다리 근육도 쓰고 아찔하니 머리도 써서 긴장감을 느끼고 싶을 때 괜찮은 길입니다. 바위 타기를 무서워하거나 고소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이 길을 걷지 못합니다. 때문에 이 길은 많은 이들이 찾지 않습니다.

 

산발치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산을 절반쯤 올랐다 싶으면 아기자기하게 바윗길이 재미를 줍니다. 손끝에 힘을 주고 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발바닥을 밀착시켜 미끄러지지 않게 하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올라서다 보면 포대능선 7부쯤입니다. 여기서 팔에 잔뜩 힘을 주고, 뒷다리로 밀어올리면서 올라야 하는 80도는 됨직한 급경사입니다.  벼랑길이 두려워 우회하는 이들도 있지만 잠깐입니다. 그다음엔 몇 년 전에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 위험하지 않습니다. 계단 끝에 포대능선 전망대가 있습니다. 이제 능선입니다.

 

오르막도 끝나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둔탁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능선입니다. 아래에서 보면 완만한 초록의 능선입니다. 그 사이로 길이 있습니다. 일명 와이계곡입니다. 벼랑인데 벼랑 사이사이로 용케도 길이 있습니다. 급경사를 오르내려 와이자를 그려내는 길입니다. 물론 그 길이란 게 쉽지는 않습니다.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그냥 길이 아닙니다. 쇠파이프를 박아놓고 파이프와 파잎 사이를 쇠줄로 연결하여 놓아, 그 줄을 잡거나 의지하면서 오르락내리락 계곡을 건너가는 재미가 짜릿합니다. 그 재미 때문에 가끔 이 길을 찾습니다. 

 

그 벼랑길 사이사이에 멋진 운치를 보여주면서 살고 있는 소나무들, 뒤틀린 삶의 곡절이 읽힙니다. 대견스럽습니다. 벼랑 틈새에 어찌 물을 마시며 사는지 노란 꽃들이 앙증맞게 미소짓습니다. 참 곱습니다. 생명체라곤 없을 듯한 벼랑계곡을 건너며 생명들을 읽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삶의 긴장을 만끽하며 반대편으로 건너서 칼날 같은 능선을 건너면 산행의 정점은 끝납니다. 소설이라면 여기쯤이 위기일 겁니다. 여기서 이른 점심을 때웁니다. 자운봉 정상을 가슴에 안고, 서울의 중생들을 굽어보면서 나만의 호젓한 자리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고, 달달한 커피 한 잔 마시는 기분, 아는 사람은 압니다.

 

오늘도 산행이 주는 행복 한 스푼 달달한 커피 한 잔으로 산행의 정점을 넘어 하산합니다. 이 기분 아시지요? 기분이 좋다, 그거 정신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산행하기 신체건강에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산행은 기분 좋게 하여 정신을 맑게 하니 정신건강에 최고요, 다리 튼튼 몸 튼튼하게 하니 신체건강에 최고입니다. 신체 건강과 정신건강의 균형, 진정한 건강관리입니다. 오늘은 다소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산행을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돈벌어 하산합니다. 미래의 병원비를 벌어서 내려가는 기분 흡족합니다. 설렘으로 시작한 산행, 흡족한 기분으로 마무리합니다. 헤피엔딩입니다. 도봉산 쌍줄기 약수가 오늘따라 더 시원합니다. 죽죽 뻗어나는 물줄기 만큼이나 기분도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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