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선암사 숲길, 숲에서 만난 인문학
아름다움은 아쉬움입니다. 아름다운 만남은 늘 아쉬운 만남입니다. 만남이란 말은 분리의 전제이듯이, 분리 전의 아쉬움을 전제로 합니다. 충만한 듯 다시 아쉬움, 그 만남이 아름답습니다. 체워도 채워도 다 차지 않음,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하는 분리, 아니면 헤어짐은 아름답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 그 만남이 아름답습니다. 헤어짐도 슬프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돌아선 마음이 뿌듯합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향한 기대로 즐겁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웬 이별타령이냐, 아름다움 타령이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지난 금요일 순천에 다녀왔습니다. 순천 삼산도서관에서 주관한 숲에서 만나는 인문학으로, 강의도 있고, 숲길 걸으며 성찰의 시간도 있고, 차 체험도 있고, 현장 강의도 있는 그야말로 길위의 인문학 다운 인문학 산책이었습니다. 첫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모두 즐거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여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에는 서로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한 보람 있고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 있은 인문학 강의, 작년엔 인문학 아카데미로 다섯 번의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반응이 무척 좋은 덗분에 이번에는 길위의 인문학으로 다시 인연을 맺었습니다. 작년에 이미 나의 강의를 접한 이들도 있었고, 새로 참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강의에 초집중했습니다. 인문학의 도시, 그 도시민 답게 수준 높은 이들, 수준이 남다른 진지함, 그 모습, 그 분위기가 강의를 하는 나를 편안하고 힘이 넘치게 했습니다. 그 덕분에 강의를 즐겁게 할 수 있었고, 듣는 이들 역시 표정만 봐도 즐거워 보였습니다.
오후엔 선암사 숲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름다운 선암사 숲길, 습식사우나처럼 무더운 날씨로 땀이 삐질삐질 나긴 했지만, 숲의 분위기가 마음을 즐겁도록 채워주었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니 눈에 보이는 것들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나무들, 이끼로 덮인 나무들, 마치 나무의 푸른 털옷 마냥 삐죽이는 초록들이 나무줄기를 뒤덮었습니다. 이끼와 초록식물이 굵은 나무줄기를 감싼 공생의 숲, 색다른 풍경입니다. 마침 충분히 내린 비로 계곡을 흐르는 물들이 두런두런 자연의 시를 읊으며 흐릅니다. 숲도 아름답고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숲을 이루는 소리도 정겹고, 숲에 동화된 사람들의 소리도 정겹습니다.
그윽하고 차분하고 조용조용할 줄 알았던 차체험, 차를 강의하는 이의 표정이며 목소리는 그런 기대와는 달리 우렁차고 역동성이 있어서 의외였지만, 차를 대하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충분히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차체험 말미에 현장 강의는 내가 맡았습니다. 어떤 내용을 고를까 고민하다 숲에서 마음의 치유를 얻듯이, 마음과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실과는 달리 산만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분위기는 다시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열공의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인문학 강의에 갈급했던 이들처럼 초집중하는 이들, 저 옛날의 그리스 소요학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관광버스로 이동하여 하차한 후, 헤어짐의 시간,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히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너무 좋았다며 다시 와 달라며 눈을 맞추었고, 손을 잡았습니다. 고맙다는 이들, 오히려 그분들에게 너무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하며, 머지 않은 날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헤어져야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고마움의 반응, 하나의 티도 없는 것 같은 만남, 강의를 주관한 도서관 담당자, 강의를 들은 이들, 강의를 한 나, 모두가 뿌듯한 표정으로 헤어진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참여한 이들에게 엄지 척을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지만, 호응 좋은 강의도 많았지만, 이번 숲에서 만나는 인문학은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했기에,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유쾌하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갚을 길 없어 아침 글로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해주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