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매미와는 다른 내 삶의 노래
이른 아침 벌써 매미들의 노래가 귀를 찢을 듯 들려옵니더. 참 부지런도 합니다. 부지런하다니요. 끈질기다해야겠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낮에도 어제 저녁에도 노래를 불렀고, 밤새도록 저리 애절하게 노래를 불렀을 테니까요. 즐거워서 부를까, 일삼아서 부를까요? 놀이로 노래를 부르는 걸까, 아니면 일로 노래를 부르는 걸까요? 저것이 놀이라면 즐거워서일 테고, 저것이 일이라면 절박한 삶의 의무 같은 것일 테지요. 나 잠든 사이에 저들도 잠시 노래를 쉬었는지는 모르나, 아니면 나 모르는 사이에 교대로 부르는 줄은 모르나 내 기준으로는 종일, 밤낮으로 노래합니다.
그것도 혼자 노래하는 게 아니라 합창을 합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하면 악보가 있어서 음과 음 사이에 휴지가 있으나, 저들은 그런 약속이 없으니 휴지가 없습니다. 음과 음 사이에 일정한 휴지도 없고, 음과 음 사이가 촘촘하게 메어진 불협화음의 노래를 줄기차게 불러댑니다. 일이겠지요.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16년이나 땅 속에 살다가 지상에 올라와서 보름 남짓 보내다 매미의 삶을 마감하는 사이, 그 동안 암매미의 사랑을 얻어 제 씨를 뿌리려니 얼마나 절박하겠어요. 듣기는 좋으나 노래라기보다는 삶의 절박한 투쟁이라 해야겠지요. 함께 부르고 싶은 합창이겠어요. 치열한 경쟁이겠지요.
수컷의 본능,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 죽느냐 사느냐만큼 치열할 겁니다. 저리 노래하여 선택을 받는 소수만이 암컷의 선택을 받고 제 씨를 심는 데 성공할 테니 얼마나 사력을 다해 노래하겠어요. 노래라기보다 생존경쟁이지요. 저것이 선택이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요 사명이요, 본능일 테니까요. 노래할 힘이 생길 때부터 짝짓기에 성공하는 순간까지 노래해야 하는 숙명, 주어진 기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기회를 잃고 존재가치를 포기한 채 떠나야겠지요.
저들이 절박한 노래 시합을 벌이는 동안 텔레비전에선 런던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 400미터 준결승 경기에 이어, 여자 장대높이 뛰기에 이어 방금 여자 100미터 결승이 끝났습니다. 환호하는 1위, 조금 아쉬운 표정의 2위,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등외자,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에 따라 얻는 것은 다릅니다. 저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같이 절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리 달리는 이유는 각기, 저리 달리는 마음가짐은 각기 달랐을 테니까요. 매미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다시 경쟁할 기회도 있으니까요.
매미는 오직 한 종목으로 단 한 번의 기회로 존재이유를 가늠한다면, 아주 다양하고 다양한 종목이든 삶의 방식이든 아주 다양한 일, 놀이, 조건, 상황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이유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매미처럼 다부지고 절박한 매순간을 살지는 않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 선택이 실패한 들 또 다른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 번의 기회, 여러 가지 선택, 다양한 삶이 가능합 니다.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매미보다 더 절박하게 삽니다. 다른 존재들은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 단일한데 인간은 아주 다양하고, 그 모든 것은 절대기준이 아니라 참조상황일 뿐입니다. 복잡한 놀이, 복잡한 일, 잡다한 생각을 가졌기에 잡스러운 인간인 나 역시 노래를 소재 삼아 한 생각 풀어내면서 오늘의 잡일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