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마운 내 인생에게

영광도서 0 1,384

내 인생아 고맙다!  

혼자 있으면 생각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으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내 기억 어디 숨어 있었는지 별의별 생각이 다 납니다. 지난 별의별 일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별의별 일들, 내 마음이 어쩌면 이리도 요상한지 걷잡을 수 없이 생각의 둑이 터진 듯 숱한 생각들이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땅속에서 기어나오듯, 그 놈들이 각각 한 가지 생각들을 물고 나오듯, 쉴새없이 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아마도 이걸 잡념이라하겠지요. 뭐라고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숱한 생각들이니까요.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생각들입니다. 그러니까 가만 있으면 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더군요.

 

생각도 생각나름입니다. 어떤 생각이냐에 따라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생각이 있나 하면, 하등 도움은 되지 않고 해로운 생각도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뭔가를 하면 나오지 못하고 숨고르기를 하는 생각, 때로 그 생각의 문을 닫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때로 생각이 내 삶에 도움을 주니 생각의 문을 열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으면, 다시 혼자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생각도 하고 하다 보니 요령이 생깁니다. 괜찮은 생각을 하려면 집을 나섭니다. 어딘가로 걷습니다. 쳔변을 걷거나 아니면 산길을 걷습니다. 그러니까 건설적인 생각, 생산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를테면 닫힌 공간에서 혼자 가만 있으면 처음엔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더니, 조금 지나면 온갖 잡념이 떠오르더군요. 나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 돈 떼먹고 도망간 친구들,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들, 누군가를 아프게 만든 내 치기어린 행동들, 결국 나 자신을 기분 안 좋게 만드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기억의 문을 열고 기어나옵니다. 조금 생산적이라고 해봐야 어떻게 하면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건설적이지 않은 소위 나쁜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더라고요. 닫힌 공간에서 멍 때리고 혼자 있는 건 그리 좋지 않더라고요.

 

때문에 여유,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아니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머리가 말끔히 정리되지 않고 묵직한 거시기한 덩어리가 내리 누르는 듯한 때, 가방 하나 둘러메고 산으로 가지요. 산길에 들어서면 우선 그게 좋더군요. 자연과의 만남이요.  그 덕분인지 내 안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평탄한 길은 평탄한 대로, 가파르면 가파른 대로 맡겨두면 숨이 가파르고 고라지듯 생각도 숨가파르게 또는 숨고르기를 하며 숱한 생각들을 나름대로 줄세우기를 하는 듯 하답니다. 생각들이 즈그들끼리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줄을 서고, 다가올 일을 안고 오는 생각들은 나름대로 괜찮은 해결책을 가지고 나름의 줄을 섭니다. 그리스신화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흐르듯이.

 

어느 산이든 괜찮습니다.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의 맛을 보노라면, 때로 제법 높은 산에 올라 흭흭 미친 회색 용처럼 지나가는 구름을 마실 듯 입술 내밀면 느낄 수 있는 그 맛, 어디쯤에 명당 자리 하나 잡고 산정에서의 한끼의 정찬, 그건 산신령들과의 느긋한 만찬처럼 여유롭고 기분 좋은 나만의 식사시간입니다. 그때 떠오르느니  참 고맙다, 내 인생아 고맙다입니다.

내 인생아 고맙다.

산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의 여유,

산에 오를 수 있는 체력의 여유,

산에 올라 컵라면 하나,  

막대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유,

고맙다 내 인생아!

 

그렇다고 혼자 산에 가라는 건 아니고요. 좋은 사람과 둘이 가면 서로 생각을 알아 가는 기쁨이, 좋은 사람들과 여럿이 가면 다양한 일들을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어쨋든 혼자 생각에 빠지고 싶다면 열린 공간이 좋더군요. 그래서 얻은 생각은 참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 감사함의 발견, 그게 행복이라는 것이더군요. 사람살이 거기서 거기겠지만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 차이 아니겠어요. 나에겐 당신이 참 고맙답니다. 이 글을 괜찮다 생각하고 제대로 읽어주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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