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오락가락 내리는 비처럼

영광도서 0 1,301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은 왜 쳐다보나?" 원각경에 나오는 말이라지요. 거창하게 이 말로 시작하면 뭔가 있어 보이나요? 생소한 철학을 이야기할 것 같나요? 하지만 난 그렇게 거창하지 못합니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르네요. 이 말인 즉슨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본질을 보지 않고 곁가지를 보고 다 보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제사는 지내지 않고 젯밥에만 관심 있는 욕심,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걸 해석해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요.

 

어제는 아차산역에서 출발, 아차산으로 올라서, 용마산을 거쳐서, 망우산에 들려 망우역까지 걸었습니다. 1997년부터 건강을 위해 나 자신과 약속을 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한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고 있고요. 그런데 이번주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화요일이 광복절이라 기회였는데 종일 비가 많이 와서 안 갔거든요. 오늘 목포에 강의를 가면 토요일까지 강의를 해야 하니까 산에 갈 기회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 오전 강의를 하고 오후에 강의 장소에서 가까운 아차산에서 출발해 망우리로 해서 집으로 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높지 않은 야산이긴 하지만 복장은 불량했습니다. 겉옷은 벗어서 가방에 쑤셔 넣고, 구두를 신은 채로 산을 타야 했으니까요. 이전 같았으면 간첩으로 오인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아차산역에서 출발 동네 사이사이를 지나 아차산으로 갔습니다. 겨의 십 년만에 찾은 것 같습니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한다 생각하고 가는 산이 아차산이기 때문입니다. 낮에 찾기보다는 밤에 찾으면 좋은 산입니다. 산행의 즐거움이 목적이 아니라 시내를 굽어보는 즐거움이 훨씬 큰 산이거든요. 낮에는 그렇지만 밤이면 오르다 뒤돌아보면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무척 아름다워서 야간산행의 명산이 아차산입니다. 서울시내는 물론 구리시를 함께 볼 수 있고요.

 

낮이라 야간에 볼 수 있는 장면은 상상으로 봅니다. 산길보다는 이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밤 도시를 마음으로 봅니다. 불켜진 건물들, 도로에 잔뜩 피운 자동차의 불꽃들, 달라진 것이야 많겠지만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라면 제2롯데월드건물이군요. 마치 우주도시 같습니다. 산에 왔으면 산을 느껴야 하는데, 산을 봐야 하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달리 보이는 도시를 돌아봅니다. 산보다 저 아래 도시풍경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만큼 부담 없이 공원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산입니다.

 

아차산을 지나서 급경사를 잠시 내려서면 오르막 경사입니다. 그래야 잠시입니다. 정상에 올랐다 싶으면 그대로 직진하면 망우산으로 가고, 좌회전하여 500여 미터 걸으면 거기가 용마산입니다. 망우산으로 가려면 다시돌아나와야 합니다. 그리 힘들 게 없으니 용마산 정상을 밟기로 합니다. 아차산과는 다른 도시풍경입니다. 틈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만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발 아래 펼쳐집니다. 온통 판자를 갈아놓은 바닥 같습니다. 한강도 보이고, 남산도, 북한산 정상,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어딘든 볼 수 있습니다. 밤이라면 저기서 새어나올 수많은 불빛들이 얼마나 장관을 이룰까, 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용마산을 넘어 망우산으로 가려는데 다시 도시를 돌아보니 멋진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에 올랐으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한강주변에 비내리는 풍경이 확연합니다. 도시 전체에 내리는 게 아니라 일정한 부분에 짙게 비내리는 풍경, 마치 산신령이 되어 비를 내리라 명령하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합니다. 잠시 내리막으로 걸었다가 오르막을 지나면 공원산책로처럼 편안한 산길과 그다지 질서잡히지 않은 듯 산재한 무덤들이 즐비한 망우산입니다. 아차산이나 용마산이 악산이라면, 망우산은 육산입니다. 걷기엔 훨씬 편안합니다. 독립운동을 한 어르신들, 애국지사들이 여기 잠들어 계십니다. 그 중 한용운 선생 묘소에서 묵념을 하고 하산합니다.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은데 망우리고개입니다. 중생들이 들끓는 도시, 발아래 굽어 보았던 도시로 내려갑니다. 망우역으로 가는 길, 금란교회를 지납니다. 웅장합니다. 점점 더 세상 속으로 걷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이제 실감합니다. 여기는 산이 아닙니다. 망우역입니다. 거리로는 제법 될 듯 싶은데, 산을 걸어왔는지 도시를 걸어왔는지 산길보다는 도시의 집들이 머리에 가득차 있습니다. 거참! 산에 갔으면 산을 보고 와야지 도시를 보고 온 것 같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내 마음도 오락가락했나 봅니다. 하긴 내가 나를 알려면 남에게 나를 비추어 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산에 올라 도시를 달리 보았으니 잘한 게지요. 타산지석인가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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