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아빠표 알람 필요한가요?
아버지께선 남 듣기 싫은 소리는 거의 안 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머는 곧잘 하셨지만 욕이나 싫은 말씀은 안 하신 겁니다. 만일 능력이 없어 쌀을 사지 못하면 굶습니다. 거리가 꽤 먼데도 차비가 없으면 종일 걸어도 걷습니다. 자식들에게 매 한 번 들은 적 없고, 험한 말씀 한 번 하신 적 없으니 천하의 양반이요, 천하의 좋은 사람이요, 천하의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그만큼 남에게 불편을 주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다른 말로 무능이요, 바보와 같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가족들은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남에게 괴로움 주는 것을 싫어하신 아버지, 아침에 일을 하려면 나를 깨우셔야 했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하시면 될 것을 그리 못하셨습니다. 내가 잠든 방 앞에 저만치 서셔서 에헴 에헴 헛기침만 대여섯 번 하셨습니다. 그게 아버지 나름의 알람이었습니다. 혼자 일하시기 벅차면 함께 일 나가기 위해 말씀 대신 기침으로 의사표시를 하셨던 아버지, 지금 저 세상에서도 부지런하실 테지요. 나를 내려다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실지요. 지금 누구보다 나는 나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니까요.
아침이면 나는 알람시계 노릇합니다. 아버지는 헛기침으로 나를 깨우셨다면, 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막내딸을 깨웁니다. 나는 알람시계가 필요없을 만큼 자동으로 일찍 일어납니다. 잠귀가 밝아 아주 미미한 소리에도 얼른 잠을 깹니다. 그런데 막내딸은 나와 달리 잠에서 깨는 데 제법 워밍업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언젠가부터 내가 알람 역할을 합니다. 물론 알람시계도 있고, 스마트폰 알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알람, 아빠알람이 더 좋은가 봅니다. 비서실 근무라 아침마다 일정하게 일어나지 않는데 그때마다 시간을 조정하며 알람역할을 내가 대신합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직행하는대신, 선취직하고 3년을 채우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 막내딸, 자립심은 나를 닮은 게 분명한데, 잠귀만큼은 나를 닮지 않았나 봅니다. 일하며 공부하면서 힘들다는 표현 안 합니다. 왜 힘들지 않겠어요. 남들처럼 낮이면 종일 일하고, 밤이면 대학으로 가서 공부해야 하는 일정이니,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쉬고 싶을 테지요. 실컷 잠자고 싶은 마음 왜 없겠어요.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힘든 건 당연하지요. 그걸 알기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깨웁니다. 한번에 안 일어납니다. 그러면 십여 분 후 다시 깨웁니다. 끝까지 애정을 담아 깨웁니다.
아침이면 이렇게 나는 글을 씁니다. 어제 일 중에서 인상에 남는 일 하나 잡아내서, 내 삶의 기록도 할겸, 생각정리도 할겸 글을 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20여 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막내딸이 전날 밤 정해준 시간에 나는 알람모드로 돌아갑니다. 딸의 방문을 열지는 않습니다. 문 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릅니다.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물러납니다. 십 분 후, 다시 살핍니다. 아직 안 일어났으면 반복입니다. 쓸모있는 알람 맞지 않나요. 시간에 따라 메일을 쓰다가 중간에 잠깐 다녀옵니다. 그러고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알람역할 하는 똑부러지게 하는 아빠인 셈입니다.
아버지의 아람방식과 나의 방식은 다르지만, 그 알람에 담긴 애정의 농도, 배려의 농도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방금 전 알람역할을 하고 다시 메일쓰기 앞에 앉았는데, 막내딸의막내딸의 기척이 들립니다. 오늘은 워밍업이 짧습니다. 잠을 깨워주면서 두 가지 마음입니다. 하나는 더 잠자고 싶을 텐데 일어나야 하니 피곤하겠다 싶어 안타까운 마음, 또 하나는 자립심으로 굳건하고 당당하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딸을 향한 고마움과 대견스러움입니다.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오늘도 나만의 사랑을 담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 이름 불러주었으니, 오늘의 첫마디가 딸 이름이었으니, 오늘 종일 행복할 겁니다. 부러운가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