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산에서 본 세상 살맛

영광도서 0 1,421

사람만 꽃처럼 아름답다고 할 게 아닙니다. 때로는 날씨도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비가 내리다 갠 날, 특히 비가 여러 날 오다가 갠 날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 식물, 건물, 바람, 세상 모두 아름답습니다. 심지어 사람들도 아름답습니다. 들뜬 내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비가 사나흘 내리다 그친 날은  여지없이 산을 바라봅니다. 산에 오르고 싶어서입니다. 산에 오르면 유난히 푸를 하늘이 눈에 선합니다. 시원한 바람의 맛이 피부에 잦아들듯 한 기분을 미리 느낍니다. 삶에 찌든 마음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듯한 맑고 신선산 자극을 받을 듯 싶습니다. 하늘과 바람, 그리고 세상이 합작하여 만들어 줄 아름다운 풍경, 산에 올라야 볼 수 있는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날이면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사람살이, 딱 시간이 맞지 않더니 지난주 금요일엔 딱 맞았습니다. 그런 조건을 갖춘 날에다 마침 강의가 없었습니다. 마라톤을 즐기는 친구와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상계역에서 출발하여 불암산으로 올라서 수락산을 넘고 의정부 망월사역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제법 빠른 속도로 걸었습니다. 적어도 오르막을 시속 4키로로 걸었으니까요. 상계역에서 오르는 내내 하늘을 뿌옇게 흐렸습니다. 백여 미터 앞까지만 보이고 세상은 그곳까지였습니다. 비갠 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운이 좋다면 올라가는 사이, 두터운 안개들이 사라지고 골골이 잠길 운해를 볼 수 있을까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달랐습니다. 아래서 보는 세상과 산 정상에서 보는 세상은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아래는 흐린 날이었는데, 산정상에서 보니 하늘이 환상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늘이 너무 고와 불암산 정상 바위에 누웠습니다. 누워서 보는 하늘은  더 없이 환상적입니다. 빗물을 나르느라  빗물을 옴팡 흘린 하늘이 말끔합니다. 어쩌면 저리도 색깔이 고울까요? 먼지 한톨 없을 듯 싶습니다. 그냥 파란 하늘이면 환상적이라 할 수 없을 텐데, 자글자글한 흰 구름이며, 몽글몽글한 흰구름들이 어쩜 저리도 섬세한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요. 높이 열린 하늘, 아주 맑고 파란 바탕색에 인간은 그릴 수 없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 내가 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하늘 하늘 그림 속에 슬쩍 끼인 듯 불암산 정상 태극기가 흰 바탕에 태극무늬를 여보란 듯 하늘 거리며 천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늘을 감상하다 문득 세상을 봅니다. 발 아래 펼쳐진 세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온통 구름바다입니다. 집도 없고 도로도 없고, 우리가 올라온 산도 없습니다. 파란 바다가 아닌 흰 바다가 온 세상을 삼키고 있습니다.  멀리 보니 북한산 정상을 이룬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빼꼼히 머리르 내밉니다. 그 바다를 건너 우측으로 작은 섬 하나, 도봉산입니다. 도봉산도 모두 바다에 잠겨 있고 가녀린 목만 내밀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 상상해 보세요. 하늘과 함께 세상풍경이 얼머나 아름다울지를요. 구름을 딛고 선 신선이 바로 나라는 기분 좋은 착각으로 세월을 잊습니다. 하산이 싫습니다만 하산하는 듯 다시 수락산으로 건너가기 위해 바다 속으로 잠수를 시작할까 합니다.  

 

불암산을 내려와 수락산으로 접어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락산이 격하게 환영합니다. 독버섯이라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망토버섯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불암산에 오면서 혹시 망토 버섯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불암산에서 보았으니까요. 물론 그 길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불암산에서는 못 보았는데 수락산에서 망토버섯들의 환영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다른 이들도 볼 수 있도록 그대로 잘 보존하는 대신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잡았습니다.

 

이제는 구름바다는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멋진 하늘도 평상심으로 돌아가 그냥 파란 하늘입니다. 물청소를 한 듯한 깨끗한 산길을 걸어 수락산 정상, 준비한 간단식으로 늦은 아침을 먹습니다. 마침 명당자리는 우리 차지입니다. 멋진 돌문 안에 앉아서 컵라면을 죽입니다. 오늘은 막걸리 장수가 없습니다. 생각은 간절한데 도리가 없습니다. 나를 위로하려는 걸까, 위문공연 온 걸까, 나비 한 마리 내 바로 앞으로 다가오더니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내가 산신령이냐 네가 산신령이냐.' 사진만 찍으려 했는데 춤사위가 너무 뇌쇄적이라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바지런을 떨며 산에 오니 나비까지 춤으로 기쁨을 줍니다.  산에 오르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세상의 맛, 아름다운 맛, 하늘이 맛으로 변하고, 세상이 맛으로 변합니다. 세상 살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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