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맨발의 순례자 흉내내기

영광도서 0 1,487

순례자를 아시나요? 종교적 의무 또는 신앙 고취의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순례라고 합니다.  이 여행을 하는 사람을 순례자라고 하고요.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을 사랑한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엄청만 고난을 겪었던 것을 따르려는 의도가 있을지 모르지만,  순례는 원래 기독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세기 경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활동한 이스라엘을 순례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그러다 성지인 예수살렘 회복을 위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이들을 따르는 순례여행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예루살렘 성지 순례가 가장 대표적이고, 로마나 초기 교회의 사도들이 활동했던 터키·그리스 등이 순례의 장소로 꼽힙니다.

 

순례는 트레블, 순례자는 트레블러라고 할 수 있는데, 관광객이란 의미로 주로 쓰기도 하지만, 원래 의미는 고통을 수반하는 여행에  쓰는 말입니다. 즐겁게 구경을 다닌다면 투어라고 쓰고, 그런 사람은 투어리스트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순례자란 트레블러이고, 고통을 감내하며 맨발로 걸어서 다니는 게 원래의 순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서유럽에서 맨발로 예루살렘까지 걷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러니까 트레블이 좋지 않은 의미의 단어 아니겠어요. 맨발로 걷기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 고통을 겪으며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죄를 정화함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순례는 할만 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일부 종교에서는 순례를 의무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 역시 맨발로 고통을 겪으며 성지를 향해 떠나고 있겠지요.

 

맨발로 걷기,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맨발걷기가 좋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 또한 맨발 걷기를 가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맨발로 걸으면서 고통을 느낀다면 다른 생각을, 내 삶을 볼아볼 수 있기야 하겠지만 순례와 같은 거창한 행위를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가 있을 테니, 건강에 특히 혈액순환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히 했습니다. 물론 시골 살 때엔 맨발로 생활하다 싶이 했습니다. 밭에 나가 일을 하건 논에서 일하건 늘 맨발로 일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때 지금보다 건강한 건 아니었습니다. 일상이었고 일이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맨발로 걷기는 좋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맨발로 걷기, 시골에서 맨발로 일하고 맨발로 걷고 그러다 보니 발바닥이 굳어서 맨발로 무엇을 하든 고통을 몰랐습니다. 일만 맨발로 하는 게 아니라 공도 맨발로 찼으니까요. 그럼에도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 축구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고척동 하천부지에 있는 축구장에서 맨발로 축구를 했습니다. 우리는 청년부, 상대는 고등부였습니다. 물론 다른 애들은 전부 축구화나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나는 구두 밖에 없었으니 맨발로 뛰었습니다. 뛰는 재미에 고통을 못 느꼈습니다. 괜찮으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발바닥이 얼얼해서 보니 엉망이었습니다. 발바닥이 까져서 피가 줄줄 흐르지 뭡니까.

 

지금이야 그렇게 무모하다거나 미련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목요일 현대백화점에서 그리스신화로 세상읽기 강의를 마치고 거기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선택했습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인 의미를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단지 그 시간에 오를 수 있는 산이 거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시간이면 족히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 테니까 선택했습니다. 서둘러서 맨발로 올랐습니다. 가끔 따끔거리며 발바닥을 위협하는 자갈들이 괴롭히긴 했습니다. 흙바닥은 상쾌하고 시원하게 지압을 해주었고요.  마천역에서 내려서, 수어장대로 올랐습니다. 별 부리 없었습니다. 문제는 성에 올라 성곽길을 따라 이어지는 신작로가 더 괴롭혔습니다. 자잘한 자갈을 깔아놓아서 지압보다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맨발로 북문까지 걸었습니다.

 

고문이라면 고문이겠지요. 남한산성이 성지도 아니니 다른 종교적인 의미부여도 아니고, 그냥 걸었드랬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날처럼 생각을 많이 한다거나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발 밑을 잘 보아야 했으니까요. 온통 정신이 발바닥이 덜 아플 곳을 딛는 데 쏠려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오기로 산입구에서 능선까지, 수어장대에서 북문까지 맨발로 걸었습니다. 명상이니 성찰이니 그거 못했습니다. 명상이니 성찰, 그런 것도 고통스러운 상황에선 사치가 아닐까 그리 생각했습니다.  물론 고통을 사서 하는 맨발산행, 그 또한 누군가에겐 사치라면 사치일 테지요. 그래도 맨발 걷기로 지압효과는 얻었을 테니 잘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기회를 만들어 맨발산행 꾸준히 할 겁니다.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나는 행운아입니다. 고생을 사서도 하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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