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신로봉의 소나무

영광도서 0 1,397

좋아요. 좋습니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점차 산이 더 좋습니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기, 그래서 더 좋은 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매주 한두 번은 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가면 새로운  이야기가 생깁니다. 다른 산을 찾아다녀서 그럴 때도 있지만, 같은 산에 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뿐만 그런 건 아니지만 산이란 게 언제 오르느냐, 누구와 오르느냐, 어떤 기분일 때 오르느냐에 따라 매번 다르니까요. 나보다 훨씬 전에, 생겨난 산이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겠어요. 

 

지난주엔 포천에 있는 국망봉엘 다녀왔습니다. 국망봉만 오른 게 아니고, 국망봉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여, 신로봉을 먼저 오르고, 능선을 따라 올라 국망봉을 밞은 후, 견치봉까지 갔다가 뒤돌아서서 갔던 길을 다시 밟다가 원점으로 하산하는 산행을 했습니다. 날씨는 더없이 맑았습니다. 태풍 탈림의 영향인지 바람이 선들선들 쉼 없이 불어 산행하기 딱이었습니다. 아주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적당히 온화한 기온, 외할머니 품처럼 편안한 기분을 주는 날씨였습니다. 하늘이 협조하여 흰구름 뭉게뭉게 장식하여 하늘 바라보는 기쁨마저 맘껏 베풀었습니다.  

 

신로봉, 이름은 신비로우나 소외 받는 신로봉으로 우선 오릅니다. 여기에오면 국망봉이 제일 높습니다. 때문에 국망봉을 중심으로 좌측에 신로봉, 우측에 견치봉은 산객들로부터 소외를 받습니다. 높이에서 국망봉에 뒤지기 때문입니다. 국망봉이 1168미터인 데 비해, 신로봉은 999미터, 견치봉은 1102미터로 조금씩 낮기 때문입니다. 이 중 신로봉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작장에 다니다 수개월 간 실업자 생활을 할 때 가까운 산이 아닌 원정산에 재미를 들리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때를 이어 매주 토요일이면  새로운 산을 찾아 다닐때 올랐던 산, 아주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준 산입니다. 그 산에 오릅니다.  

 

이야기인 즉슨  신로봉 정상에서 만난 인고의 소나무입니다. 2007년 12월 그날도 혼자 국망봉엘 오르겠다고 떠났습니다. 서울엔 비가 내렸는데 산 입구에 와 보니 눈이 쌓였습니다. 족히 10센치는 넘었습니다. 마을길을 걸을 때 만난 할머니가 바닥은 이 정도지만 산은 훨씬 눈이 많을 것이니, 더구나 혼자 산에 오르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그럼에도 열정이 무척이나 넘쳤던  때라 용감하게 출발했더랬습니다. 과연 아무도 가지 않은 길, 하얀 순백의 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급경사가 시작되는 길에 이르자 미끄러지면서 3미터 오르면 1미터는 다시 뒤로 미끌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신로봉으로 올랐습니다.  

 

그렇게 애써 오른 신로봉 정상, 세상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드센 바람으로 산정상에서 7부능선까지는 온통 눈꽃에다 상고대로 덮여  신천지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신로봉 정상에서 만난 소나무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벼랑 위 좁은 정상이라 환경이 척박한 탓에 굴곡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소나무는 근육질이 단단했습니다. 그런 나무들이 그렇듯이 키는 크지 않고 다부지게 가지들을 뻗어 나무 자체로만도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하얀 눈꽃을 잔뜩 이고 있으니 아름다움의 극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상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그 소나무를 만나러 오릅니다. 10년만에 재회입니다. 눈은 없지만 신로봉 가까운 곳에서 위험구간이라고 쓴 길로 오르려니 가파르긴 합니다. 더구나 우르르 무너지는 잔돌들이 깔린 길이라 70센치 보폭으로 오르면 20센치는 미끄러지기 십상입니다. 흔적은 있으나 사람들의 통행이 적어서 바닥은 분명 길이지만 눈으로 보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수풀이 길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써 오르니, 신로령을 생략하고 바로 신로봉 아래입니다. 올려다보니 소나무가 안 보입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을 소나무, 세상을 하직했을까, 그 생각을 하고 오르니, 역시 예감이 맞습니다. 고아하고 다부진 소나무는 간 데 없고 기둥에 해당하는 등걸만 존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도 한경이려니와 세월을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씁쓸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나무, 나보다 먼저 스러진 걸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나무 할아버지의 흔적만 남은 신로봉 정상, 좁지만 우뚝솟은 정상, 소나무님은 말이 없어도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역시 일품입니다. 벌써 바람이 아주 차갑습니다. 앞을 내다보니 포천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선을 멀리 던지니 서울의 산 도봉산과 북한산이 겹쳐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날씨 덕분입니다. 좌우로 뒤로 돌아보면 온통 산입니다. 바라보는 풍광, 두 말이 필요없이 기분을 끌어올립니다. 살아 숨 쉴  수 없는 소나무엔 관심 없이 내 기분만 낸 것 같아 미안스럽습니다.  

 

껍질이 다 벗겨진 남은 등걸, 기둥을 어루만지며 소나무의 삶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습니다. 독야청청, 이 정상의 주인이었던 소나무, 소나무가 없는 정상엔 잡목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소나무 등걸 바로 옆엔 구절초 한 포기 소박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젠 사진으로만 잔뜩 눈을 입고 선 아름다운 소나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더 없이 아름답습니다. 주변 풍경 역시 안구정화를 해줄 만큼 상쾌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엔 소나무의 그때 영상이 가득 차 있습니다. 내 마음을 소나무가 알 리야 없겠지만, 나 역시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내가 알 리 없어도 누군가의 마음에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신로봉 정상을 쉼없이 드나드는 세찬 바람이 유난을 떱니다. 바람막이를 입어야 할 만큼 차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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