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조용한 나의 혁명

영광도서 0 1,462

혁명, 혁명이란 말이 참 흔하게 쓰입니다. 혁명은 우선 정치적으로 쓰입니다. 통치형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여 시민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통치제도가 확 바뀌면서 혁명 전과 후가 완전히 통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른 형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통치제도와는 달리 신석기혁명,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급격한 변화, 경제체제와 사회구조 및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의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때를 혁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혁명에는 극한 대립과 갈등은 필연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혁명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혁명은 말 그대로 Revolution입니다.

 

흔히 기득권을 가진 층에서는 기존의 신조나 도덕 그리고 문화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겐 편하고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오래 고여 있으면 연히 썩고 말듯이, 비기득권층에서 볼 때엔 기득권층의 신조나 도덕적 가치들이 부패하고 썩을 대로 썩었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면 분연히 일어납니다. 그 역할은 순수한 민중이 맞습니다. 거기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층이 개입하지 않는 한 순수한 정의가 주도합니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폭군으로부터 자유를 찾고, 그 자유를 누릴 권리를 찾으려는  투쟁의 결과를 혁명으로 인식합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기존 권력의 부패가 원인입니다. 때문에 혁명 후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 간의 다툼이 내란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순수한 혁명 의지에 불순한 세력의 이용이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중은 이용만 당하는, 가끔 봉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혁명이란 말과 쿠데타란 말의 경계도 모호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한쪽에선 혁명인 것이 반대쪽에선 쿠데타이고, 그와는 반대로 다른 한쪽에선 쿠데타라지만 반대쪽에선 혁명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라면 쿠데타 Coup d'Eta는 국가를 때림이란 의미로,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으려고 일으키는 정변을 말합니다. 프랑스어로 국가를 때리는 것이니, 부정적인 용어임에 트림 없습니다. 이를 테면 혁명은 정치뿐 아니라 사회전 분야에서 쓰지만 쿠데타는 정치권력에 한정해서 쓰인다는 점이 다릅니다.

 

세상 살면서 정치제도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밖에 나가면 모두가 정치 전문가 같아서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서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까요. 그런 통치적인 또는 정치적인 혁명이니 쿠데타니 그런 이야기 말고, 어쩌면 우리에겐 개인적인 혁명이 더 소중한,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어요. 우리 각자 개인에게도 때로는 혁명이 필요하니까요. 요컨대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고 있느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아니 잘못된 시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를 들여다보자는 것이지요. 그 삶의 원칙이 건강하지 않다면 나는 늘 힘들고 우울할 테고, 세상을 삐딱하게 보며 살 테니까요. 그러면 그럴수록 겉으론 웃어도 속으로는 울며 살아야 할 테니까요.

 

영화 <굿윌헌팅>에서 천재 윌이 궁지에 몰린 친구 편을 들러 나섭니다. 상대는 잘난 척하며 여자를 꼬시는 MIT대학생입니다.

"대학원 1년생으로 막스나 개리슨 저서를 봤나 본데, 다음달에 레먼 저서를 배울 때쯤 버지니아와 펜실바니아의 경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게 될 거야. 그것도 겨우 내년까지이고 다음엔 일류 사학자 고든 우드의 독립전쟁 이전 유토피아와 자본이 군대의 현대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하게 될 걸?"

윌이 우쭐해 있는  MIT대학생을 친구를 대신해 궁지로 몹니다. 그러자 "천만에, 사실 우드는 계층간 특질을 과소평가 했어."라고 반박하지만, 이내 윌은 "물론 부에 관한 계층간 특질의 영향을 경시했지. 특히 상속된 부에 대해서 말야 그건 사학자 빅커를 인용한 거지? 그의 저서 98페이지 내용 안 그래? 나도 읽어 봤어. 계속 도용할 생각이셨나? 니 견해는 없는 거야? 아니면 혹시, 술집만 오면 희귀한 책만 골라서 자기 것처럼 떠들어 여자애들이나 꼬시며 내 친구 쪽주는 게 취미인가? 서글픈 일이지만 너같은 녀석들은 50년쯤 지나야 겨우 두 가지를 자각하게 될 거야. 인생엔 두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는 걸 말야. 첫째, 남의 생각을 도용하지 않을 것!  둘째, 15만 달러를 그 잘난 교육에 탕진하느니 차라리 1달러 50센트 내고 도서관에 가는 게 이익이란 거!" 라고 재 반박합니다. 

MIT대학생은 "적어도 난 학위를 손에 쥐게 돼. 하지만 넌 내가 스키타러 갈 때도 점원 노릇이나 하겠지." 라고 말하며 윌의 아픈 곳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지는 몰라도 누굴 표절하진 않아." 

 

MIT대학생은 알량한 지식으로 자신을 멋지게 드러내려는 소위 겉멋든 학생입니다. 반면 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학으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명문대생은 앵무새처럼 기득건의 이론만 좔좔 외워대며, 마치 그것이 자시의 가치관인 양 말합니다.  영혼 없는 지식, 자기원칙이라기보다 표졀한 원칙으로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반면 윌은 직접 몸으로 삶에 부대끼며, 학문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며 삽니다. 그러다 보니 기득권층, 우쭐해 하는 친구, 거들먹거리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선 소위 영웅이니 천재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들어 있습니다. 세상을 분노로만, 반감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건강한 삶의  원칙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 세상을 분노로, 반감으로 바라보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안에 상처가 있으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느느 못합니다. 때문에 소외 당하며 산다, 나는 피해자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면, 스스로 자기 안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원칙도 건강해지겠지요. 아는 척, 배운 척 하면서 남의 지식이나 표절하거나 남의 삶을 표절하기보다는, 남의 삶을 표절하는 삶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윌의 말에서 나는 흠칫 놀라 나를 들여다봅니다. 조용한 나만의 혁명을 꿈꿔봅니다. 건강한 삶의 윈칙을 가지고 표절도 아닌, 나 지신 세상에 대한 분노도 아닌,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건강한 지식인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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