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살며 배우며 사랑하며

영광도서 0 1,244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흙으로 만듭니다. 인간만 만든 게 아니라 각종 동물을 만듭니다. 그리곤 자신이 만든 동물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합니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일, 그 책임을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맡깁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에게서 선물 자루를 받습니다. 에피메테우스는 생각 없이 일하는 신인지라,  그는 선물 자루에 손을 넣고는 , 모든 동물에게 손에 잡히는 대로 선물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선물 자루는 텅 빕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인간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합니다. 아무런 신의 선물을 받지 못한 인간을 아끼는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푸스로 올라가서 제우스에게서 불을 얻고, 아테나 신에게서 지혜를 얻어다 인간에게  줍니다. 

 

불과 지혜? 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불은 일종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자칫 불은 잘못 사용하면 도구가 아니라 재난입니다. 때문에 불을 사용하며면 지혜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불은 문명의 도구입니다. 지혜 없는 불의 사용, 그것이 삶을 좀먹습니다. 이를테면 지혜 없는 지식의 사용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세상을 망칩니다. 우쭐하게 만드는 지식, 머리만 크게 만드는 지식, 그것이 타인을 힘들게 하고 사회를 망치게 만드는 흉기요 무기입니다. 지식은 잘못 사용하면 확증편향과 같은 외곬수의 편견을 갖게 하거나 아집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영화 <굿윌헌팅>에서 윌과 숀 선생의 대화를 들어볼까요?  숀 선생이 윌에게 책망을 합니다.

 

<<내가 너에게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 거야?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잘 알 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본능까지도 알거야. 그렇지? 하지만 넌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 거야 ?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또 너의 여자 타입을 물으면 넌 네 타입의 여자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겠지. 벌써 여자와 여러 번 잠자리를 같이 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여자 옆에서 눈 뜨며 느끼는 행복이 뭔지는 모를 걸? 넌 강한 아이야.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세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다시 한 번 돌진하세 친구들이여!' 하면서....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움의 눈빛을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 건지. 

사랑에 관해 물으면 시 한 수까지 읊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로가 되어본 적은 없을 걸?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께서 너만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로 착각하게 되지. 절망의 늪에서 널 구하라고 보내신 천사! 또한 한 여인의 천사가 되어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그 사랑은 어떤 역경도... 암조차 이겨내지. 죽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달이나 병상을 지킬 땐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위는 의미가 없어져.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타인을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누굴 그렇게 사랑한 적은 넌 없지?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어 보인다기보다 오만에 가득찬 겁쟁이 어린애로만 보여. 하지만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 못 해. 그 누구도 네 지적 능력의 한계를 측정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넌 그림 한 장을 달랑 보곤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했어.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애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내가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솔직히 .. 젠장 그따윈 알바 없어. 어차피 너한테 직접 들은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뭐라든 필요없어. 우선 너 스스로 너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야. 그렇게 한다면 나도 관심을 갖고 널 대해주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할까 겁내고 있으니까. 네가 선택해 윌.>>

 

안다는 것, 지적인 앎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인생의 완성이 아니라 다만 완성을 위한 씨앗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재산일 수는 있지만, 자신을 넉넉하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앎, 지식이란 많을수록 좋지만, 다른 장치가 없는 지식은 쓸모없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 지식은 오히려  자신을 지식 안에 가두는 족쇄에 불과합니다. 감옥에 들게 하는 병에 불과합니다. 이를테면 그 지식은 아는 것은 힘이 아니라 병이다란 말에 해당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즉 지식이 힘이 되려면 지혜 안에 안겨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란 무엇일까요? 지헤는 어떻게 얻는 걸까요? 지식이 머리에서 온다면 지혜는 가슴에서 옵니다. 사랑이 숨 쉬는, 따뜻한 숨결이 이는 가슴에 지혜는 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삶의 현장, 그 현장 중에서도 사랑이 살아 숨쉬는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생각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의 몫입니다. 살아가는 자, 삶의 현장에서 말 그대로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사람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입니다. 삶의 그 무엇을 사랑하는 자에게 삶의 그 현장에서 얻는 깨달음,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야 말로 불을 문명의 도구로 만듭니다.  반면 지혜 없는 도구의 사용은 흉기가 되거나 무기가 되고 맙니다. 

 

물론 지식이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지식에 겸손을 보태면 지식은 무엇보다 지혜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을 수록 오만해지려는 마음을 경계하여, 자신을 수양하기만 한다면 지식은 지혜를 싹틔우도록 돕고, 지혜를 무럭무럭 자라게 돕습니다. 이렇게 이룬 지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특히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생깁니다. 지식이 자칫 상아탑에 갇힌 공허한 울림이요, 머리만 크게 만드는 오만의 아버지라면, 지혜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세상을 품는 넉넉한 품을 가진 어머니입니다. 따라서 지식은 자칫 자신은 물론 타인을 해롭게 하는 병이요, 지혜는 나도 남도 더불어 이로운 자산입니다. 화려한 지식의 옷보다 차라리 소박한 지혜의 옷을 입고 현재를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여전히 살며 삶을 배우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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