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설악산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

영광도서 0 1,446

​사람들인가, 단풍인가, 설악산인가, 한숨 잠 몾 자고 설악산으로 달려갔는데,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때문에 설악산을 만나기 전헤 수많은 사람을 먼저 보아야 했습니다. 단풍을 구경하기 전에 사람들을 먼저 구경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 있을 줄, 여기 왔을 줄 몰랐습니다. 새벽 세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는데 벌써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직 어둠 속이라 모두 그림자색에 지나지 않지만 상상으로 얼마나 다양한 색깔의 옷들이 무늬져 길을 메우고 있을지 상상이 갔습니다. 저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산으로 오를 생각을 하니 하루 여정이 걱정이 되었으나 일단 한 시간이라도 잠을 자고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설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이면, 게다가 이때쯤이면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개다가 주말이면 더더군다나 엄청 많을 거라는 걸 알기에 평일에 가려고 했으나, 후배가 평일엔 일을 해야 하기에 주말을 택했습니다. 내심 공룡능선을 넘을 것이니 입구에선 많은 사람과 마주치겠으나 공룡능선으로 오를려면 시작점이 될 비선대를 지나면서는 괜찮으려니 생각했습니다. 차 안에서 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20여 분이나 눈을 붙였을까,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새벽 네시 출발했습니다.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비선대로 향하는 길은 넓어서, 사람들은 많았으나 속도를 빨리하는 만큼 전진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비선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을 앞지르기 하기가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에 들어서면서는 걸음을 늦추어야 했습니다. 아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어가다 싶이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어둠속이라 시커먼 무리, 불빛들만 가녀린 새명처럼 번쩍거리고 있었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어둠속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전국의 다양한 사투리들이며, 다양한 사연들이며, 촌스러운 농담들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가다간 능선 쯤에서 해돋이를 보기는커녕 종일 올라도 마등령능선에 오르기는 글렀다 싶었습니다.  산에 가는 이유는 사람들이나 삶의 부대낌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한 것인데, 산에서마저 사람에게 치이면 어쩌나 싶어서 왔는데, 이게 무어람, 속으로 불만이 솟았습니다.  공룡능선은 힘들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  사람이 많았습니다. 길이 좁으니 앞질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답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앞지르기를 하면서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후배 뒤를 따라가다 슬쩍 신화를 주고는 앞지르기를 시작했습니다.  

 

줄에 방해 되지 않게 앞지르기를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면 어떤 불협화음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앞지르기를 하려면 좁은 길을 벗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눈치를 보다가 원 길이 아닌 샛길, 부분 부분 짧은 샛길에서 잽싸게 앞지르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눈치를 챈 친구가 뒤에 따라 붙습니다. 어느 순간 후배가 내 뒤를 놓칩니다. 어쨋든 마등령에서는 만날 테니 그대로 전진입니다. 그렇게 앞에서 가면 어떻게든 따라올 것이니, 체력으로야 나보다 훨씬 나을 것이니,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앞지르기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렬이라 빠르든 느리든 제 길을 가는 사람들,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용케도 잘 빠져 나가면서 가파른 돌길을 오릅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길은 가파릅니다. 절반 정도는 너덜지대입니다. 조심스럽게 걸어야 합니다. 아직 세상은 어둠의 색입니다. 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지상엔, 그런데 하늘을 봅니다. 어쩜 저리도 영롱합니까. 하늘의 별들이 동해의 쪽빛을 닮았나 봅니다. 저들이 모두 동해에 푸욱 담겨 곱게곱게 씻고 나온 듯 싶을 만큼 아주 맑게 하늘에서 반짝입니다. 천정처럼 둥그스럼한 설악의 하늘, 그 하늘에 가득 담긴 별들, 무척 아릅답습니다. 아무런 티 하나 없이 해맑아서, 까만 어둠속이어서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스신화에서 헤라의 젖줄기라는 은하수가 부옇게 하늘 한가운데로 흐릅니다. 그냥 상상해 보세요. 저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아름다운 별 하늘을 가끔 바라보며 어둠 속을 걷습니다. 동쪽에 유난히 맑고 밝고 아름다운 별 반짝입니다. 샛별이라고도 하는 금성, 비너스의 별입니다. 모처럼 만나는 새벽별입니다. 저 별이 저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보면 곧 아침이란 의미입니다. 후배는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한결 여유롭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게 속초시내의 야경이 멋집니다. 위로 뒤로 세상이 열려 있습니다. 잠시 감상에 젖다 걷기를 반복합니다. 이때쯤 동쪽 하늘이 곱게 물듭니다. 어쩌면 저리도 고운 색이 있을까요. 아침 해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희미해져 사라지는 별들을 보내고 멋지고 힘차게, 아주 빨갛게 타오를 해를 맞을 시간입니다.  고생끝에 낙이라나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해맞이 명당을 찾는 마음, 설렘이 요동칩니다. 곧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