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설악산 최고의 명품 공룡능선
공룡능선,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 보고 싶어하는 능선입니다. 국립공원에서 볼만한 곳 100경을 뽑았는데, 그 중에 제1경이랍니다. 그 정도로 아름답기로 소문난 능선입니다.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서,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구름이 휘감은 모습은 마치 신선의 영역을 보는 듯하다고 합니다.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리키며,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답니다. 높낮이가 상당한 봉우리들, 즉 한참을 내려가나 싶으면 다시 한참 오르기를 그만큼 반복해야 하는 봉우리가 10여 개를 넘어야 이 능선을 통과합니다.
거리로는 5키로미터 남짓밖에 안되지만 오르고 내려가고 오르고 내려가기를 그냥 오르내림이 아니라 완전히 산 하나를 내려가나 싶을 만큼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들 합니다. 하지만 경치로는 그야말로 끝내줍니다. 어디를 보아도 절경인 설악산을 중간으로 기어가는 능선이라, 능선에 서면 양쪽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설악의 능선들, 용아장성, 화채능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정상을 언제든 올려다볼 수도 있습니다. 험한 걸로 따지면 서울의 산들보다 약하지만 높낮이가 심하여 체력이 약한 사람에겐 무리일 뿐, 위험한 길은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넘으면, 그 정도 체력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할 만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등령에 오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많이 앞서서 좋았는데 해돋이를 보는 사이에, 아침을 먹는 사이에, 다시 사람들이 내 앞에 수 없이 줄일 잇습니다. 전국에서 모두 모인 것처럼, 이를테면 등산객 모두 모인 것처럼 사람들이 물결을 이룹니다. 옷 색깔도 형형색색이라 나뭇잎 단풍을 보러 온 것인지, 사람 단풍을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람들 물결이 단풍 같습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저 세월아 네월아 한없이 시간을 죽이며 걷습니다. 다채로운 웃음소리도 산을 수놓습니다. 꼬리잇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앞사람의 뒷모습만 따라가다 보면 한이 없겠다 싶습니다.
다시 눈치를 보면서 앞지르기를 하기로 합니다. 어둠 속에 걸을 때보다 도 세심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살 찌푸리지 않도록, 부대까지 않도록 조심하며 앞지르기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간혹 짜증 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아주 좁아서 한 사람씩 통과해야 하는 곳에선 바싹 뒤를 따릅니다. 그러다 앞으로 나아갈 공간이 보인다 싶으면 그때 살짝 살짝 앞서가야 합니다. 그런 틈새를 노리며 걷고 걷습니다. 찍고 싶은 풍경들도 많지만 잠깐잠깐 찍습니다. 사진 찍다가 한두 사람이 앞서면, 다시 막힌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지르길 하며 한참을 걷다보니 벌써 공룡능선 절반을 넘었습니다. 그즈음이 되니 좀 널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온 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체력이야 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은 없습니다. 나보다 젊고 튼튼하니까요. 다만 앞지르기 어려워 뒤따라 올 것이라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며 걷습니다. 사람들이 뜸하다 보니 이제는 앞서 가던 이들이 오혀려 스스로 길을 내줍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들 앞으로 나서서 걷습니다.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다가 멈추어 서서 좌측으로 보이는 천불동쪽 풍경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우축으로 보이는 우아한 풍경들도 담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무리를 만납니다. 도대체 언제 출발한 것인지 벌써 여기까지 왔을까, 널널하다가 또 만나게 되는 산악회 멤버들, 무리지어 걸으니 또 걸음을 늦춥니다. 그들을 통과하면 한참은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길은 좁으니 오는 사람들 피해주면서 걷습니다. 그렇게 걸어서 여유 있게 앞에는 별로 사람이 없을 즈음, 희운각 1키로미터 지점, 그제야 안심입니다. 공룡능선을 넘으면서 점차 간격이 벌어져서 이제는 여유가 있는 행렬입니다. 거기서 기다립니다. 조금 배가 고프니까, 일단 혼자 새참을 먹습니다. 배가 든든하니 졸음이 옵니다. 혹여 친구가 지나가다 볼 수 있으라고 길 옆에 자릴 잡고 잠시 눈을 붙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보니 아직 친구가 나타날 조짐이 없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안 받습니다. 문제가 생긴 걸까 걱정을 하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전화가 옵니다. 아직 오지 않습니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서야 친구가 나타납니다. 다시 합류, 나야 땀이 다들어가도록 쉬었으나 다시 한참을 휴식합니다. 오늘은 사람에 치어 정상엔 가지 않기로 합니다. 시간으로야 열 시도 안 되었으니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해도 충분하다만 사람들의 물결에 치어 걷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공룡능선 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입니다.
혼자는 여러 번 넘은 능선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만 그날의 기상에 따라 달라지는 공룡능선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물론 공룡능선 자체도 아름다우려니와 실제로는 공룡능선의 전채의 아름다움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공룡능선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풍경들, 예를 들면 마등령에서 오면서 우측으로 용아장성과 가야동계곡의 넉넉한 아름다움을, 좌측으로 천불동계곡과 동해바다쪽의 확 트인 풍경을 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진귀한 바위들, 울긋불긋 바위산의 진맛, 그림 같은 수많은 풍경들, 어디를 볼지 눈 둘 곳을 찾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공룡능선, 그 능선을 오르내리지만 공룡을 볼 수는, 느낄 수는 없습니다. 용아장성 능선으로 걸어야 공룡을 느낄 수 있답니다. 마치 내가 나를 모르는 면을 남이 나를 더 잘 아는 것과 같습니다.
공룡능선을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설악산 정상을 올려다보면서 쓰잘데 없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하는 가사도 있다만, 내가 공룡처럼 생겼다는 공룡능선을 밟고 있으나 공룡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싶지만, 내가 모르는 나를 남들이 더 정확하게 아는 것도 있을 테니, 특히 나의 단점이나 나뿐 점은 남이 먼저 알 것이란 깨달음을 슬쩍 얻습니다. 때문에 가끔 남들이 보는 나에게도 관삼을 가져야겠다 싶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니네거 나를 더 잘 알리'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겸손하게 나를 돌아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