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삶의 굳은살을 만들어주는 고생

영광도서 0 1,344

맨발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마당에서 맨발로 공을 찼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 청소냔 시절엔 들에서 맨발로 일했습니다. 일상이 맨발이었습니다. 그렇게 맨발로 생활해도 발바닥이 멀쩡했습니다. 그만큼 발바닥도 단련이 되어 굳은살이 배겼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종일 걸어도 종일 일해도 불편을 몰랐습니다. 신발이라야 고무신밖에 신을 수 없었던 시절이라 맨발이 더 편했습니다. 고무신은 조금만 질펀한 곳에서는 벗겨지기 일쑤고, 조금만 빨리 달려도 쉽게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맨발 생활이 일상이었습니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맨발을 잊었습니다. 덕분에 발바닥이 약해졌습니다. 조금만 부드럽지 않은 바닥을 맨발로 걸으려면 고통스럽습니다.  발바닥에 가시 박히기 일쑤고, 까지기 일쑤입니다. 마치 순례자가 된 듯합니다. 관광 다니는 사람은 투어리스트요, 순례자는 트레블러로 다른 의미로 쓰는 것처럼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맨발로 걷기와 신발 신고 걷기도 운동효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답니다. 조금 고생스럽긴 하지만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가 있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행을 할 때면 일부러 맨발로 잠깐이라도 걷곤 합니다.

 

자난주에는 분의 아니게 길게 맨발로 걸었습니다. 매주 한 번 이상은 산행을 하는데 때로는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지난주에 역시 그랬습니다. 마침 목요일엔 낮 강의가 없고 저녁 강의만 있었습니다. 개포도서관 그리스신화 강의 가는 길에 산을 넘어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과천대공원에서 출발해서 서울 양재역까지로 구간을 정했습니다. 문제는 등산차림으로 강의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는다 해도 옷이야 뭉치면 그리 부피가 많이 나가지 않는데, 문제는 신발이 등산화는 무겁기도 하려니와  부피가 컸습니다.

 

그래서 워커를 잘라서 만든 신발을 선택했습니다. 전에 워커를 하나 얻었습니다. 목이 무릎 가까이 올라오는 긴 신발이었는데, 왕창 목을 잘라서 단화로 만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구두 같아서 구두겸 등산화로 신기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잘 되었다 생각하고 그 놈을 신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영 불편했습니다. 평지를 걸을 땐 몰랐으나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발이 불편했습니다. 단번에 뒤꿈치에 물집이 생겼습니다. 차라리 맨발이 건강에 좋다니 신발을 벗고 걸었습니다. 그 고통이 더 참을만 했습니다.

 

자분자분한 땅은 걷기가 그런 대로 좋았습니다. 대공원에서 매봉 정상까지는 문제 없이 걷기 편했습니다. 여기서 내리막이 시작되면서는 왕모래가 발바닥을 괴롭게 찔러댔고, 그보다 조금 더 굵은 모래도 아닌 것이 돌도 아닌 것인 무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자갈이랄까 짜갈이랄까, 그런 놈들이 잔뜩 깔린 길은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오르막은 참을만 하다해도 내리막은 더 괴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신발을 신으면 짜증이 날 정도로 안에서 괴롭혔습니다. 조그 고통스러워도 맨발이 나았습니다. 본의 아닌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만큼 길은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매봉에서 내려와 청계산 정상으로, 청계산 정상에서 서울 방향 정상으로, 매바위를 지나 양재역으로 하산하는 길은 제법 멀었습니다. 맨발이 아닌 신발을 신고 걸으면 그리 먼 코스는 아니겠지만 맨발로 걸으려니 좀 멀게 느꼈습니다. 바닥에 위험물 이 있나 살피려니 주변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눈을 들어 먼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는 충분히 누렸습니다. 아마도 12키로는 족히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사히 산행을 마쳤습니다.

 

'초년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거나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마치 진리인 것처럼 회자되었습니다. 고생한 경험이 삶의 현장에서 웬만한 고생을 보다 쉽게 참아낼 수 있는 인내를, 어려운 일도 잘 해결할 수 있는 삶의 융통성을, 만만치 않은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년에 고생하면 계속 고생하며, 고생은 고생을 부른다는 게 진리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생은 미련한 자의 몫이며, 약삭바른 사람이라야 세상을 늘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고생은 사서 할 게 아니라 가능하면 버려야 할 대상인 겁니다.

 

하지만 어떤 고생을 하느냐에 따라, 고생을 잘 활용하면 보다 나은 삶에 도움이 됩니다. 편리한 것은 그 순간엔 좋으나 점차 삶을 무디게 만듭니다. 문명도구의 발전으로 어느 순간 단순한 계산도 여럽습니다. 전화번호 암기도 먼 옛날 이야기 같습니다. 기억력을 앗아가고 몸의 약화도 선물합니다. 때로는 고생 사서할만 합니다.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가끔은 정신건강을 위해서 또는 뭄의 건강을 위해서 고생을 사서 할 생각입니다. 그 덕분인지 강의실을 놀랍도록 꽉 메운 사람들 앞에서 패기 있게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일과를 미치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습니다.

 

고생, 일부러 살만한 이유 충분합니다. 신체를 적당히 고생 시키면 근육을 만들어주어 건강하게 합니다. 발바닥을 적당히 고생시키면 굳은살 배기게 만들어주어  다부진 발바닥을 만들어줍니다. 신체의 근육을 만들거나 굳은살을 만드는 일은 고생스럽지만 건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물론 생각 없이 고생하면 개고생이지만, 그 고생에 의미부여를 하면 정신건강에도, 삶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겁니다. 의미부여한 고생은 삶의 근육과 삶의 굳은살을 선물할 테니까요. 고생,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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