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마음이 부르는 가을 노래

영광도서 0 1,425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아요. 고운 가을을 만나는 데는 잠깐 집 앞 공원으로 가도 좋고, 조금 수고를 더해 가까운 야산도 좋고, 좀 더 멀리 우뚝 솟아 도심을 둘러싼 사나에 오르면 더 좋아요. 요즘은 어딜 가나 온통 가을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 말고 자연은 모두 가을옷으로 단단히 갈아 입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바지런을 떨어서 일단 집을 나서 보시지요. 눈을 즐겁게 하는 풍경이 마음도 즐겁게 해줄 테니까요. 마음만 즐겁게 하겠어요. 발걸음에도 작는 날개를 달아줄 텐데요. 그러면 마음 한켠이 뻥 뚫리는 듯 들뜨는 기분에 멍든 마음도 조금은, 아니 많이 어루만져 줄 거예요.

 

혼자면 혼자인 대로 좋습니다. 명상에 잠기든 사색에 잠기든 조금은 나를 깊이 있는 척, 아니 깊이로 인도해줄 테니까요. 둘이라면 더 좋지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답답한 마음의 말들이 어느 순간 물꼬를 트고 스멸스멀 입 밖으로 나오겠지요. 감춰두었던 부끄럼들, 감추고 살면서 힘들었던 마음의 말들이 그리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면서 둘 사이가 보다 가까운 친구로, 가까운 이웃으로 변할 수도 있겠지요. 셋이면 어때요. 마음은 못 털어도 여럿이 모여 지저귀는 새들처럼 웃고 즐기면서 자연을 접하다보면 쌓여 있던 스트레스의성이 무너지면서 기분이, 아니 마음이 환해지겠지요.

 

나뭇잎들이 곱습니다. 올해는 더더욱 곱게 잘 물들었습니다. 어쩜 저리도 고울까 싶게 색깔들을 잘 골랐습니다. 인문학이 않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덕분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사랑 받는 덕분에 여기 저기 강의를 다닐 수 있어 좋습니다. 어제도 파주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그리스신화로 학부모들을 만났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단풍처럼 환해진 이들의 얼굴을 대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하다는 표현은 보너스로 접수합니다. 운정역에서 2키로미터는 되는 듯 싶은 길을 걷습니다. 신도시라 넓직넓직한 길, 행인은 뜸합니다. 거리가 넉넉하니 마음도 넉넉해서 더욱 좋습니다.

 

천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공원길을 걷기도 하면서 오가는 길, 한창 가을을 맞은 자연처럼 마음도 착 갈아앉아 좋습니다. 고운 색깔을 뽐내는 나무들과 눈을 마주칩니다. 보라색 구슬을 잔뜩 매달은 작살나무들을 만나 열매를 가만가만 만져봅니다. 요즘 화살나무는 조금만 떨어져 보면 마치 빨간 꽃으로 덮인 듯 보입니다. 곱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무리지어 늘어선 화살나무들 집단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자전거 다니는 길은 붉은 길, 사람이 걷는 길은 회색길, 멀리서 보면 그 길들도 가을을 닮았습니다. 모두 가을을 달아 나를 사색의 깊은 늪으로, 그러나 즐거운 사색의 늪으로 들게 합니다. 마음을 가을로 물들게 합니다.

 

가는 길 한참, 오는 길 한참, 가을이 무르익은 가을을 걸어가면서 지나간 현재를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현재를 미리 곱게 그려봅니다. 그리고 지금의 현재를 걸어갑니다. 가는 길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설렙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이들의 기대하는 마음을 상상해서 즐겁습니다. 오는 길은 오늘 쏟아낸 나의 언어들이 그들의 가슴 한 자리 차지할 것을 상상하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결과도 중요합니다. 그거야 그렇다치고 내 나름대로 나의 말, 나의 행동을 내가 즐겁게 받아들이면 나로선 뿌듯하니까 오늘은 내가 나에게 관용을 베풀렵니다.

 

그냥 걷습니다. 가을 길을 걷는다, 단풍이 곱다, 그렇다고 나뭇잎에만 눈을 맞추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실 테지요. 가끔 멀리 사람 사는 집들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분위기 덕분인지 사람들의 집들도 평화롭고 고요하게 보이네요. 가끔 하늘도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은은하게 하늘을 덮고 있네요. 그레선지 하늘은 깨질 듯한 군청색이 아니고 파란 듯 아닌 듯, 은은한 하늘색, 그렇군요. 하늘색 다운 하늘색이네요. 은은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의 하늘이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전철 왕복 서너 시간, 가을을 걷는 길 30분, 즐거운 강의 두 시간, 가을을 건너는 길 다시 30분,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오늘입니다.

 

어때요! 가을은 걷기에 딱인 계절이지요. 아! 겨울이 곧이겠구나. 그런 쓸쓸한 생각으로 침울하게 집안에서 인생이 쓰다드니 허망하다느니 궁상 떨지 말고 집을 나서서 가을을 걸어봐요. 다가오는 시간들을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늘을 즐겁게 맞아봐요. 오늘의 가을만 느껴봐요. 아름다운 가을, 곱게 물든 가을에 그냥 젖어요. 은은하게 빛나는 가을 분위기를 그냥 느껴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에요. 지금 가을이 주는 선물을 받지 않으면 다시 받을 수 없어요. 나오라잖아요. 가을이 집을 나서라잖아요. 혼자면 혼자의 사색으로 가을을 걷고, 둘이면 둘이서 정담을 나누며 가을을 넘고, 여럿이면 여럿이서 낄낄거리거나 조잘거리면서 가을을 건너요. 그래요. 오늘을 누려요. 오늘만이 줄 수 있는 건 오늘 아니면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요. 아! 참 곱고 아름다운 가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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