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울긋불긋 내장산 단풍들처럼
울긋불긋 꽃들이 사라진 자리를 울긋불긋 나무잎들이 미화작업을 대신합니다. 예쁜 게 꽃이라면, 볼수록 아름다운 게 꽃이라면,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화안하게 하는 게 꽃이라면 가을 나뭇잎들도 꽃입니다. 꽃만 에쁜 줄 알았더니, 아름다운 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줄 알았더니, 꽃들만 화려한 줄 알았더니, 단풍들 또한 꽃들 못지 않게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여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모든 식물들이 겨울나기 준비에 들어가느라 퇴색되어 가는데 나뭇잎들은 아름답게 퇴색되면서 꽃들의 시절보다 더 아름답게 세상을 꾸며줍니다.
퇴색의 계절, 한 생이 저물고 떠날 것은 떠나는, 소멸 될 것은 소멸되는 그 준비를 하는 나뭇잎들의 화려한 계절입니다. 보기엔 화려하나 이미 그 안에 소멸을 품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뿐, 그럼에도 아름답게 보일 뿐입니다. 나뭇잎들도 인간처럼 감정을 품고 있다면 얼마나 서글프랴만 보는 이들은 모두 떠나기 전 아름다움에 환성을 터뜨립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가만 앉아 생각에 잠기면 아름다운 나뭇잎들이 마지막으로 베풀어주는 환상적인 축제가 마음 가득 펼쳐집니다. 가만 앉아 상상으로 누리기 어려울 만큼.
떠나야겠다, 단풍들의 화려한, 아름다운 때깔을 만나기 위해 내장산에 가야겠다, 그 생각을 했습니다. 주말엔 사람들이 너무 많을 터라, 엄두를 못 내겠고, 평일에 가려니 시간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목포 강의 가는 길에 들려야겠다 생각하고 나름 머리 속으로 프로그램을 그려두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케티엑스를 타고 정읍에 간다, 거기서 시내버스를 탄다, 아홉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오후 두시에 산행을 마친다, 다시 정읍으로 나와서 사우나에 들려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네시 열차를 타고 목포로 간다, 딱 이 그림이었습니다.
그림대로 떠났습니다. 그림대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둥구리에서 우군치로 올라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처음 구상은 세 봉우리 정도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곱 개의 봉우리를 넘었습니다. 내장산을 한 바퀴 돌고 단풍 구경을 실컷 했습니다. 파란 하늘이 아니어서 그림이 덜 아름다웠으나, 단풍이 좀 떨어진 터라 우화정 그림이 지지난해보다 덜 멋졌으나 내장산 단풍 구경은 충분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단풍 터널을 통과하면서 색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드랬습니다.
화려한, 아름다운, 환상적인, 어떤 수식어를 붙여줘야 어울릴지 모를 만큼 곱고 아름다운 단풍들이 어우러진 단풍 터널을 지나면서 입으로 내장 내장 내장을 되뇌었습니다. 빨간 내장! 내장 속 빨강을 생각했습니다. 마치 내가 빨간 내장 속을 통과하는 듯했습니다. 그 내장 속을 탐구하는 살아 있는, 살아서 통과하는 먹이라고나 할까요. 울굿불긋한 그 속을 지나면서 내 마음도 욹긋불긋 물드는 기분을 상상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걷다 보니 콧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도 자라니까요." 지금은 울긋불긋한 색, 내 마음도 물들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물이 잘 드니까요.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음 곱게 물들이고 물들이고 나가서도 고왔으면 좋겠다 아이스러운 마음을 품으니 좋았습니다. 빨간 내장을 통과하여 빨갛게 물든다면 부끄럼 물들어 사랑에 젖은 얼굴처럼 설레겠지요. 노란 물들어 고우면 내 마음도 한결 부드럽겠지요. 울긋불긋 아름다워 아름다운 생각만으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다시 속세로 나섭니다.
버스가 울긋불긋 고운 내장 밖으로 미련 없이 나갑니다. 내 몸도 따라갑니다. 물든 내 마음도 벗겨지겠지요. 서로 미워하고 앙앙 거리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 아름다운 풍경 마저 잊겟지요. 곧 떠날 거면서 한껏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나뭇잎들, 퇴색되어 더 아름다운 나뭇잎들, 내가 더 곱다 아름답다 자랑하는 내장산 단풍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살만큼 살아서 인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들이 리더들인 세상, 그럼에도 네가 더 나빠, 네가 더 죄 많아, 서로를 정죄하려 안달인 세상으로 나갑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곱디 고운 내장산 단풍들처럼 누가 보아도 아름답게, 울굿불굿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 더불어 고운 색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는데 벌써 세상 한복판 정읍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