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수리산 산행, 난 참 잘했어요.

영광도서 0 1,439

나비들이 날아더닙니다. 저렇게 나비가 높이 날았던가요. 반짝 거리면서 저 높이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가 반짝 거리면서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높이 높이에서 상하운동을 하며 날아다닙니다. 아니었습니다. 나비가 아니었습니다. 나무에서 떨린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바람을 타고 공중을 배회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마침 불어대는 강렬한 바람에 갈피를 못 잡고 회오리 바람을 트듯이 공중제비를 돌며 시달리는 나뭇잎들이 파란 가을하늘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강의를 가는 길에 잠깐의 틈을 내어 수리산에 들렸습니다. 강의를 가면서 산행을 하려면 좀 번거롭긴 합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아니면 그 모습 볼 수 없으니 불편을 감수합니다. 등산화를 신은 채로 강의를 할 수 없으니, 여벌로 구두를 챙기거나 아니면 구두를 신은 채로 등산을 해야겠지요. 게다가 옷차림 역시 준수하게 입거나 여벌 옷을 챙겨야 하고, 너무 서둘러 걸어서 땀이 많아 나면 안 되니까 그것도 좀 신경써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긴 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 아름다운 가을을 즐길 수 있으니, 불편을 감수합니다.

 

등산을 해도 될만큼 튼튼한 구두를 챙겨 신습니다. 등산복과 외출복의 중간쯤의 옷을 챙겨 입습니다. 마침 날씨는 서늘하여 좀 천천히 걸으면 되겠습니다. 수리산 입구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습니다. 슬기산 아래까지 2키로미터 남짓은 맨발로 걸어도 충분합니다. 거기까지는 공원길처럼 높낮이도 심하지 않고 걷기 딱 좋습니다. 파란 하늘이 좋은 배경을 갖춰줍니다. 변색된 갈잎들이 강렬해지는 한낮의 햇살을 받아 윤기를 쏟아냅니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반짝이면서 새들 같기도 하고 나비들 같기도 하게 공중돌이를 하며 쏟아져 내립니다. 가만 걸음을 멈추고 귀기울이면 세상에 이토록 운치 있는 가을노래도 없습니다. 우수수도 아니고 와수수도 아니고 사르륵 같기도 하고 스르륵 같기도 한 사륵스륵, 뱀의 혀가 날름거리며 내는 혓소리 같기도 하답니다.

 

가을 햇살, 가을 하늘, 가을 나무, 가을 나뭇잎, 온통 가을로 가득 찬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며 공원을 산책하듯 걷노라면 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책하는 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들 역시 산새들의 노래처럼 정겹습니다. 일군의 산악자전거 행렬이 지나갑니다. 가을에 마음을 적시며 걷노라니 슬기봉 아래, 그쯤에 마을 어르신들이겠지요. 길가 양지바른 넓직한 자리를 차지한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로 가을을 자아내며 정겨운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발을 꺼내 다시 신습니다.

 

슬기봉에 오릅니다. 정상 체 못미처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봅니다. 가을 바람이 먼지를 털어간 걸까요. 도시가 참 깨끗합니다. 정확히는 흰색의 아파트들이 윤이 날 만큼, 막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맑고 깨끗해 보입니다. 아파들만이 아닙니다. 녹색이 간간이 섞여 있는 갈색 바다가 도시를 여기 저기 감사고 있습니다. 경치 차암 좋습니다. 파란 하늘이며, 갈색 바다며, 갈색 바람이며, 온통 가을 분위기의 도시와 숲의 조화가 참 곱습니다. 곱다란 표현만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가던 길 마저 올라 슬기봉 정상, 군시설이라 정상을 밟지 못하고 수암봉 가는 계단에 올라서서, 그러니까 군포 쪽이 아닌 안양쪽을 내려다보면 도시는 저만큼 벌고 고운 갈색 산이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서 새근새근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넉넉한 가을 옷을 입고 잠든 산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니까요.

 

조금 더 가보자고요. 태을봉으로 향합니다. 태을봉 가는 길은 산답습니다. 칼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며 걷는 스릴, 병풍바위를 넘는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바위들을 타고 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바람은 능선을 넘나들며 소란을 떱니다. 날선 바위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길을 넘다보면, 가다가 가끔 안양시내를 조망하면서 눈을 즐겁게 하다보면 마음도 즐거워 합니다. 날씨가 온화하니, 온통 가을 분위기가 마음을 잡아주니 힘들지 않게 깔딱고개를 올라 태을봉 정상에 섭니다. 시간을 체크하니 하산해야 할 시간입니다. 태을봉을 내려가 관모봉으로 향하다 고개쯤에서 하산을 시작합니다. 전설 깃든 바위 하나 지니치면서 조금 더 내려오면 초등학교 담을 따라 마을로 이어집니다.

 

마을과 산이 경계를 이루는 즈음에 다시 뒤돌아보면 다시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리산자락이 고운 가을옷을 입고 있습니다. 가을 바람, 가을 하늘, 모든 것이 가을을 입고 있습니다. 산을 나서면서도 마음은 아직 산을 떠나지 못합니다. 설렘을 주는 가을숲을 나서면서도 이미 가을을 푹 젖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도 이미 가을에 잠겨 있습니다. 이럴 때면 착 가라앉아 인생을 관조하며 때로는 서글퍼질만도 한데 오히려 가을을 즐기자 합니다. 가을이 참 곱다 참 즐겁다 합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마시지 않으면 언제 마시겠어요.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이 가을을 즐길 수 있잖아요. 지금을 누리지 못하면 늘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니겠어요. 과거는 지나간 현제요, 미래는 다가오는 현재라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가을을 만나러 가야 해요. 가을이 떠나기 전에. 내가 나를 칭찬합니다. 난 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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