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양재시민의숲을 걸으며

영광도서 0 1,473

시간은 살아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가는 것 같지만 그건 물리적인 시간일 뿐입니다. 그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재는 시간일 뿐 시간이란 간다 안 간다 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이 가는 것인지, 인간이 가는 것인지, 그건 인간이 정할 뿐,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 뿐, 달이 지구를 돌 뿐, 시간이란 실체를 우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기계로 재어지는 시간보다는, 내가 느끼는 시간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죽어 있는 기계적 시간보다는 살아서 움직이는 심리적인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살아 있는 시간은 내가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누리는 시간입니다. 때문에 이 시간은 내 마음에 따라 빠르기도 하고 때로는 더딥니다. 그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뿐입니다. 이를테면 과거는 지나간 현재입니다. 미래는 다가오는 현재입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만이 현재입니다. 어제는 내가 산 현재요, 내일은 알 수 없으나 내가 살 현재입니다. 그리고 나의 시간은 현재밖에 없습니다. 나는 현재만 살 수 있으며, 현재만 누릴 수 없고, 현재만 나늬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엊그제 개포도서관에 그리스신화 강의를 가는 길에 양재시민의 숲에 들렸습니다. 맘껏 아름다움을 먹었습니다.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나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눈으로 즐겁게 먹고, 눈을 즐겁게 하니, 입으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먹는 만큼 마음의 입은 많은 감탄사를 쏟아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아름답고 찬란한 가을이, 햇살을 받아 더 빛나는 아름다운 가을이 거기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세히 보면 각각 생김새가 다른 단풍들이 그윽한 또는 귀여운, 매혹적인 또는 순수한, 여러 모양으로 또는 여러 색깔로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내장산만큼이나 아름다운 단풍터널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햇살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지먼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숲을 두른 길을 따라 걷노라면 때로는 단풍터널을 지날 수도 있고, 그렇게 걸으면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뭇잎들에겐 미안스럽지만 길에 쌓인 나뭇잎들을 밟노라면, 경쾌하 소리와 함께 바닥에 접촉면을 완충하여 부드러운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로 바람이 휘감아 돌면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공중에서 재주를 넘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수많은 나비들이 저토록 높은 곳에서 곡예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날을 느끼며 양재시민의 숲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분위기에 취해 개포도서관 가는 길은 좀 더 분위기에 젖으려고 양재천변길을 택했습니다. 벗나무 늘어선 뚝방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붉은 색 길, 그 위로 몸을 살짝 기울인 벗나무들, 다른 곳에 벗나무 잎들과 달리 여기 벗나무 잎들은 아주 곱게 물들었습니다. 단풍들처럼 아주 빨갛거나 아주 노랗거나가 아닌 새악시 볼에 살짝 무든 부끄럼처럼 발그랗게 물들었습니다. 햇살을 받는 색깔이 바닥의 붉은 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아래 천변길은 스타들만 걷는 레드카펫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붉은 길을 따라 천변길가엔 억새밭이며 갈대밭이 한껏 가을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습니다. 붉은 길을 벗어나 뚝방 중간 길로 올라서면 그 길은 녹색으로 경쾌하면서도 곧게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다시 위로 올라 뚝방으로 올라서면 그 길은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세 개의 길, 세 가지 길이 양재천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각기 다른 가을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길을 걷는 저런 길을 걷든 이 날의 길은 마냥 아름다웠습니다. 가을다웠습니다.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길 끝에서 지진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시에 두 가지 시간을 느꼈습니다. 무서움의 시간과 아름다움의 시간, 내가 어디에 있느냐, 어디를 걷느냐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이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누군가는 고통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행복을 누립니다. 지금 어디서 시간을, 지금 어떻게 시간을, 지금 누구와 시간을, 지금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누리느냐, 사느냐, 느끼느냐만 나의 시간들입니다. 나의 시간은 내가 살 수 있는 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시간뿐입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시간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불행한 현재는 빨리 지나가게 마음을 다독이고, 행복한 시간은 더디게 머물기를, 시간 앞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나의 시간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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