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고창고인돌마라톤 참관기

영광도서 0 1,510

여자 마라토너가 들어옵니다. 여자부 두 번째로 들어오는 주자입니다. 가파른, 평소에는 그냥 경사진 언덕이었을 그곳, 결승점을 앞둔 그곳은 가파른 언덕길로 바뀌어 숨을 최극단으로 몰아넣는 얻덕을 올라오면 결승점, 인고의 사투를 이겨내고 올라서서 들어서는 문, 문을 들어서자 그녀를 응원하던 이들이 박수를 보냅니다. 박수소리와 함께  고통과 환희, 환희와 고통, 무엇인 먼저인지, 아니 무엇이 맞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파열음을 그녀가 뿜어냅니다. 응원하는 이들 중 한 남자가 그녀와 함께 옆에서 힘내 힘내를 외쳐주면 달려줍니다. 그녀는 한 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단말마인지 환호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주위를 깨웁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 아니면 '네버 엔딩 스토리'를 완성합니다.

 

마라톤을 하러 간 것은 아니지만 고창고인돌마라톤에 참가하는 팀을 따라 갔다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보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은 사뭇 달랐습니다. 미디어로는 승자들, 이를테면 아주 잘 달리는 사람들만 볼 수 있었는데, 현장에서는 참가한 모든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 권력의 주변만 기록하듯, 미디어 역시 제법 잘 달리는 사람들만 카메라로 잡고,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고 기록과는 상관 없이 달리는 사람들은 잡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로지 기록을 단축하거나 등수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각자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슴점 부근에서 함께 간 친구들을 기다리다 언덕을 내려가 봅니다. 마라토너들이 걸어옵니다. 한눈에 딱 봐도 마라토너로는 적합하지 않은 몸매의 사람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언덕을 올라옵니다. 걷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어쩌다 뛰는 사람은 한두 명입니다. 저들은 기록을 위해 달리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냥 마라톤이 좋아서, 아니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아니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서, 아니면 건강관리를 위해서 저리 달립니다. 아니 걷습니다. 아니 걷는다기보다 힘겹게 무거운 걸음을 옮깁니다. 왜 저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사서 할까 싶을 만큼, 당장 들어가서 부축해주고 싶을 만큼 힘겹게 걸음을 옮겨 놓는 이들이 저리 많습니다.

 

세계적인 마라톤대회가 아닌 마라톤대회의 재미는 이런 점들이 아닐까요. 누구나 신청하면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마라톤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명한 마라톤대회라면 기록을 세우거나 자기 기록을 깨기 위해, 등수 안에 들기 위해 달리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지만 이 마라톤대회는 서로 즐깁니다. 그렇습니다. 환희를 즐기는 게 아니라 고통을 즐집니다. 복장도 가지 가지입니다. 그 이상으로 달리는 이들의 표정도 가지 가지입니다. 그렇게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 어떤 이는 5키로미터를 달리고, 어떤 이는 10키로미터를, 어떤 이는 20키로미터를, 어떤 이는 42.195키로미터를 달리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적일 뿐입니다.

 

달리는 시간은 거리에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좀더 빨리 달리는 이들이 있고 늦게 달리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무리를 지어 달리든, 혼자 달리든, 앞서서 주도하며 달리든 따라 달리든 마라톤이 장거리인 이상 고통을 사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표정의 다양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저들은 각기 다른 마음으로 달릴 겁니다. 홀로 산행을 하면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며 나를 가다듬고, 다른 이들을 나름 평가하듯이, 그렇게 얽힌 삶을 펼치고 정리하듯이 마라톤을 하면서 저들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삶의 실타래를 풀지도 모릅니다.

 

추임새를 들으며,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들으며 그들을 따라 나도 다시 언덕을  걸어 오릅니다. 그들은 도로를 따라 걷거나 뛰고 나는 보도로 부지런히 걷습니다. 어떤 이들보다는 내 걸음이 더 빠릅니다. 미디어에서는 행인보다 느린 주자는 없는데 여기는 그렇습니다. 정말 진실한 삶의 현장이니까요. 그래서 더 정감이 갑니다. 카메라라곤 하나도 없는 현장, 진실한 현장을 나는 눈으로 찍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의 표정을 찍습니다. 저들의 목에서 울럭대는 소리를 담습니다. 심지어 저들의 마음을 가늠합니다. 수많은 사연과 함께 달렸을, 수많은 포기와 고통과 함께 달렸을 저들이 언덕을 올라섭니다. 어떤 이는 응원을 받고, 어떤 이는 한 사람의 응원객도 없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가 결승점에서 기다립니다.

 

많은 표정과 많은 사색을 만났습니다. 특히 페이스메이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기록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때로는 뒤에서 달려주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때로는 조금 앞에서 달리며 이끌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을 즐기는 친구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부럽기도 했고요.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애가 꽃을 피우는 것이겠지요. 인간, 고통을, 고생을 사서도 하는 유일한 존재, 그 현장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루의 이야기, 많은 생각에 잠겼을 사연을 마감하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축제, 서로의 다툼이 없는 자신과만의 다툼이 있으면 있었을 시간이라서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대회가 끝나가는 시간입니다.

 

마라톤, 자기와의 싸움이 필연인 이 싸움을 계속하는 이들, 그들은 그래도 남다릅니다.  건강챙김을 위해 달리면서 마음챙김을 할 수 있는 게 마라톤 아니겠어요. 때문에 마라톤을 오래 한 친구들과 대화를 해 보면 수많은 책을 읽은 이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지지 않는 인생의 깊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와 대화를 하면서 달리기보다 혼자 달리며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달립니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서 나름이 답을 얻습니다. 진정한 자아성찰을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스스로 읽어내는 것이 마라톤이요. 그러면서 주변을, 이웃을 읽어내는 것이 마라톤입니다. 시끌벅적함 속에서 새삼스렙게 자신을 재발견한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돌아갑니다. 소리들이 점차 잦아듭니다. 서서히 저녁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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