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93- 누에고치 팔던 날

영광도서 0 733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린다. 이럴 땐 농촌생각이 난다. 농사를 짓는 이들이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할까, 걱정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다만, 도시에선 이렇게 저렇게 돈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적어도 월급을 받지만, 농촌에선 뭔가를 생산해야만 돈을 만질 수 있다. 언제나 인내심 어린 기다림이 필요하다. 밭에서 또는 논에서 자라는 것들이 때가 되어야 돈을 만들어줄 터이니, 이때처럼 비가 내리면 얼마나 애가 타랴. 남의 일 같지 않다.

 

시골에서 돈벌이로 괜찮은 것이 누에 기르기였다. 거창하게 양잠이라고 할 것은 없었지만 집집마다 한해 두 번 봄과 가을로 누에를 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과 두어 달이면 돈을 만져보게 하는 고마운 게 누에 치기였으니까. 우리 집 역시 해마다 누에를 쳤다. 집에서 기른 뽕나무가 없었으므로 전부 산에서 따와야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다래끼에다 뽕을 따러 다니곤 했다. 그것도 누에가 어렸을 때고, 누에가 어른 누에로 자라면 어찌나 뽕을 많이 먹는지 엄마와 아버지가 먼 산에 가서 큰 자루에다 뽕을 담아 한 짐씩 져다가 며칠을 먹이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랴 누에를 치랴 아이들도 바빴고 어른들도 바빴다.

 

누에는 처음에 아주 작은 알에서 시작된다. 작아도 아주 작은 배추씨만이나 할까, 누에알은 폭 1㎜, 길이 1.3㎜, 높이 0.5㎜정도의 편평한 타원형으로 단단한 알 껍질에 싸여있다. 이 단단한 누에알, 그렇게 작은 누에씨,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누에씨, 그렇게 작고 한 줌도 채 안 되는 누에씨를 가져다 쳇바퀴에 담아 따뜻하게 이불을 덮어준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알에서 유충이 탄생한다. 이 작은 누에는 개미처럼 보여서 개미누에라고 부른다.

 

알에서 갓 깨어난 누에 유충은 뽕을 보지 못한다. 냄새로 뽕잎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부드러운 뒷면부터 뽕잎을 먹는다. 하지만 너무 작기 때문에 통으로 주면 먹지 못한다. 아주 잘고 잘게 썰어서 가루를 내다시피 잘게 잘라주어야 먹을 수 있다. 보통 뽕잎 두 장 정도를 먹는 데 2일 정도 걸린다. 이때에는 먹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뽕만 먹고도 점차 자란다. 자람에 따라 강모의 간격이 넓어져 유충이 희어진 것처럼 보인다. 3일째에는 뽕을 먹지 않는다. 피부가 마치 속이라도 들여다보일 것처럼 투명해지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자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을 첫 잠이라고 한다. 부화 후부터 첫잠까지를 1령이라고 한다. 이때쯤이면 키는 약 7㎜정도이다.

 

누에는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하루 정도 지낸다. 그렇게 자고 나면 귀여운 허물을 벗는다. 이때부터 누에는 2령이다. 우리 식으로 보면 두 살인 셈이기도 하고 보다 넓은 차원으로 보면, 탈피를 했으니 제 2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첫잠에서 깨어난 누에는 탄생한 지 5일 째부터 7일 째까지 뽕을 먹는다. 1령 때와 다르게 몸에 잔털이 사라지고, 색깔도 점차 흰색으로 변한다. 얇고 부드러운 잎을 먹을 수 있는 이 즈음엔 부드러운 정도로 썰어준다. 만일 제때 뽕을 안 주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길게는 일주일을 산 누에는 8일째 다시 잠을 잔다. 그렇게 잠을 자면서 또 허물을 벗는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난 누에는 이제 3령, 크는 것도 무척 빠르게 자란다. 뽕잎도 이젠 절반 정도를 잘라서 주어도 잘 먹는다. 어른이 된 만큼 아이 때와는 달리 좀 더 많이 먹어댄다. 먹는 소리는 잎사귀에 비가 내리는 소리 같다. 그러더니 다시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잠을 잔다. 이때는 고개를 쳐들고 자는 놈들이 많다. 이렇게 고개를 쳐들고 자는 놈들이 더 건강한 놈들이다. 다시 한 번 허물을 벗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잠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누에는 점점 더 희어진다. 까만 개미를 닮은 벌레에서 출발해 이제는 허연 벌레 같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4령, 태어난 지 12일이다. 태어나서 13일째부터 또 사흘 정도 잘 먹어댄다. 17일째 되는 날부터 하루 동안 잠을 잔다. 다시 허물을 벗고 머리도 새로 나온다. 제법 커진 누에는 이제 5령을 맞는다. 태어난 지 19일째, 이때부터 5-6일간 뽕을 먹는다. 일생 동안 먹는 양의 80%를 이 시기에 먹는다고 한다. 자랄 만큼 다 자라, 세상에 온 지 25일쯤 되니 더는 뽕을 먹지 않는다.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다 집을 지을 자리를 잡는다.

 

누에는 5령이 되면, 이를테면 마지막 잠을 자고 나서 수일간 뽕을 먹으면, 더는 뽕을 먹지 않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다섯 번째 잠, 지금까지와는 다른 잠, 보다 긴 잠을 자려 한다. 잠을 자면서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의 변태를 위한 잠이다. 그래서 집을 짓기 시작한다. 누에는 이제 자신이 움직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자신을 보호할 집을 짓는다. 하루 만에 집의 틀을 잡는다. 다음날엔 벌써 안이 잘 안 보인다. 그 안에서 누에는 집을 단단하게 짓는다. 삼 일째면 이제 고치는 딱딱하다. 액체를 토해내 무려 1000-1500미터 길이의 실을 자아낸다고 한다. 먹지도 않고, 더는 성장하지도 않고 밖이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태를 한다. 소리 없는 변태, 집을 모두 짓고, 하루 지나면 피부를 벗고 번데기로 변한다. 번데기가 된 직후엔 유백색을 띈다. 부드러웠던 피부도 점차 색이 변하여 갈색을 띠고 단단하다.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번데기로 머문다.

 

이렇게 누에는 일생을 보냅니다. 적어도 누에는 알→애벌레→번데기→나방으로 완전변태를 한다. 누에의 한살이는 45일이지만 여러 번의 생을 사는 셈이다. 알에서 깨어나 약 25일간에 걸쳐 네 번의 허물벗기, 고치를 짓고 번데기로 일주일, 번데기를 벗고 나방으로 일주일, 짝짓기를 마치고 2세를 낳기까지 일주일로 46일간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누에치기, 우리가 하는 일은 고치를 지어 완성하기까지였다. 이들 중에서 쌍고치, 누에는 혼자 집을 지어야 가치가 있는데, 둘이 한 집에 들어가 집을 지으면 쌍고치라 하여 가격이 형편없었다. 이것들은 집에 두었다가 번데기를 꺼내 구워먹는 용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거기에서 나방이 되어 나왔고 알을 많이도 낳아놓았다.

 

제대로 잘 지은 고치, 아주 하얀 고치, 정말 탱글탱글하니 하얀 고치가 자루에 한가득한 걸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얻은 고치는 아버지께서 면소재지로 지고 가야 했다. 아무 날이나 가는 것이 아니라 매입하는 날이 있었다. 고치는 부피는 많았지만 가벼웠으므로 큰 자루에 아버지 혼자 담아 짊어지셨다. 나는 졸래졸래 아버지를 따라가면 되었다. 그런 날은 기분 좋으면 아이스께끼 하나 얻어 며먹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그렇거니와 그날은 고치를 팔려면 여러 절차가 있어 그것을 아버지가 따라다니며 해야 했기 때문에 고치 짐을 내가 지키고 있어야 했다.

 

면사무소 옆에는 사방에서 몰려든 어른들이 순서를 기다려 평가를 받았다. 검사를 하는 심사원 아저씨는 고치를 이렇게 저렇게 들여다보고 커다랗고 둥근 도장으로 등급을 찍었다. 특이냐 수냐 우냐 미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었다.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전체 그 기준으로 킬로에 맞추어 계산되기 때문에 어른들은 필수적으로 검사원에게 다가가 몰래 담배를 사서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어야 했다. 그것으로 애써 지은 누에 농사는 일단락되었고, 얼마간 귀한 돈을 만져볼 기회를 얻었다. 그날쯤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다. 기분에 따라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 드실 수 있었고.

 

도관리에 있는 면사무소 옆 창고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많이 모여든 사람들, 북적이는 가운데 벼슬이라도 한 양, 으스대면서 검청색 도장을 들고 다니면서 등급을 매기던 심사원, 공무원이었을지, 누구였을지는 모르지만, 수줍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버지마저도 애써 담배 한 갑 사서 주머니에 찔러주시던 모습이 씁쓸하다. 그러고도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한 아버지의 그때 씁쓸한 얼굴이 아련하다. 처세를 잘 모르시던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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