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7-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광도서 0 510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아기는 여전히 세상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신체로는 분리된다. 세 살 즈음이면 미숙하지만 정신적으로 엄마와 자신이 별개임을 인식한다. 여전히 엄마에 의존하면서 성장한다. 학교에 보내주면 하교에 가고, 심부름 시키면 심부름하고, 말씀에만 잘 따르면 된다. 때로는 엄마의 심부름이, 진소리가 짜증스러울 때도 없지 않지만 돌아보면 그때까지가 제일 평화로운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토끼먹이를 구하러 가거나 소를 돌봐야 하니, 일부러라도 흐느적거리며 귀가시간을 끌면서 집으로 오곤 한다. 오는 길에 배가 고프니까 봄이면 찔레를 꺾어 먹거나 시금을 뜯어 먹는다. 여름이면 산발치나 들에 자라는 억새 이삭을 뽑아 먹는다. 억새 이삭을 잘 잡고 잡아당기면 쏙 하고 올라온다. 그걸 까면 하얀 이삭이 수줍은 듯 잠잔다. 그걸 먹으면 그런 대로 맛이 있다. 그걸 삐삐라고 한다. 뱀 딸기를 따기도 한다. 고개를 쭉 내민 풀 이삭을 뽑으면 20센티미터쯤 된다. 거기에다 빨간 딸기를 하나씩 꿴다. 가득 꿰면 마치 빨간 장식을 한 목걸이 모양이 나온다. 이런 저런 일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집으로 온다.

 

부모들은 정확히 학교에서 언제 돌아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귀가를 늦춰야 심부름을 덜할 수 있다. 다만 토끼먹이만 해결하면 별 탈은 없다. 요령을 피우면서 때로는 학교에서 돌아오다 물고기를 잡는다. 물고기가 많이 노는 웅덩이 하나를 고른다. 물의 방향을 돌리면 물이 안 들어갈 수 잇을 웅덩이이다. 아이들은 웅덩이로 들어가는 물 입구를 막고 다른 쪽으로 돌린다. 그 다음엔 웅덩이에 가득 고인 물을 검정고무신으로 퍼내기 시작한다. 한참 그렇게 여럿이 물을 퍼내면 물은 줄어들고 물이 자작자작 할 즈음이면 더는 견디지 못한 물고기들이 물을 찾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녀석들을 한꺼번에 제법 많이 잡는다.

 

이렇게 수고를 하지 않고 잡으려면 물길을 막고 웅덩이에 할미꽃 뿌리를 캐다가 물가에 놀고 짓찧어 물이 나오게 하여 물에 넣는다. 아니면 옻나무 비슷하게 생긴 핸경나무 껍질을 이용한다. 겉이 맨들맨들한 이 나무는 껍질을 벗기면 안 쪽은 오렌지색이다. 이 껍질을 짓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을 한 듯 배를 위로 하고 물에서 떠오른다. 그렇지 않고 간단하게 잡는 방법은 노는 물고기들에 접근하여 검정고무신을 족대삼아 생포하거나 아니면 물고기가 들어가 있음직한 바위를 다른 돌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녀석들을 기절시키는 방법이다. 그렇게 후려치고 돌을 들추면 기적한 물고기가 배를 위로 하고 떠오른다. 물고기는 잡는 재미가 있다.

 

아무리 시간을 늦추면서 돌아와도 집에 오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주어졌다. 일단 토끼먹이를 마련해야 했다. 그것이 내 몫이었다. 산에 올라 칡넝쿨에서 세 잎씩 달린 줄기를 잡아당기면 똑 부러졌다. 이것들을 어느 정도 모아 단으로 묶었다. 그렇게 여러 단을 묶어 만든 다음 단을 연결하여 어깨에 둘러매면 마치 풀잎 옷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하나의 과제는 다한 셈이었다. 그 다음엔 감자를 까거나 소꼴을 베어 와야 했다.

 

비록 작고 어리긴 했지만 아버지가 집에 늦게 돌아오시면 산에 매어 둔 커다란 소를 끌고 와야 했다. 눈이 커다란 소는 비교적 착했다. 아주 착한 소는 말뚝에 맨 밧줄만 풀어주면 저 혼자 앞장서서 집으로 돌아가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가끔 말썽을 부려서 옥수수 밭으로 뛰어들어 옥수수 밭을 망치는 심술을 부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 녀석은 앞장을 세우고 뒤에서 밧줄로 조종을 하면 코가 아프니까 말을 잘 들었다.

 

고단함의 연속이긴 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저녁을 느지막이 먹고 나서야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시간이었다. 졸리는 눈을 부비면서 숙제를 해야 했다. 어느 틈으로 새어든 바람에 깜박거리는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숙제를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나의 일상이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의 일상이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요령껏 하면 되었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무난했던, 결과에 책임을 질 줄도 몰랐고 그걸로 끝이었던 그 날들이 오히려 좋은 시절이었다.

 

어른이란 이름으로 산다는 것, 잔소리 듣기 싫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날도 있었는데, 잔소리 하고 싶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신체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정신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경제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이제는 그야말로 하늘 아래 고아인 지금 돌아보면 가장 즐거운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듯싶다. 책보를 전대 메듯이 질끈 동여매고 별의별 놀이를 하면서 한 시간이면 돌아올 길을 여러 시간으로 늘리면서 돌아오면서 놀았던 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시절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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