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1- 오줌 싸고 소금 얻어 온 날!

영광도서 0 937

나 어릴 적엔 어른들은 ‘낮에 불장난을 하면 밤에 자다가 오줌 싼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다. 불장난을 하고 나면 용케도 자다가 이불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리는 일은 제법 있었으니까. 때문에 불장난을 한 날은 특별히 조심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오줌을 이불에 싸곤 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한 것은 아니었다. 덜하면 덜했다.

 

우리 반에서 한 아이는 밤에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싸는 것으로 유명했다. 거의 매일 그러다보니, 학교에 올 때 집에서 옷을 안 빨아주는지 항상 옷에서 지린내가 나곤 했다. 학교에 다닐 나이쯤엔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때는 오줌을 가려 쌌음에도 그 아이는 늦도록 오줌을 싸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곤 했다. 그래선지 3학년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령기가 되기 전엔 대부분 아이들은 가끔 자다가 옷에 오줌을 싸곤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그것을 고칠 방법은 없었다. 그럴 때 어른들이 쓰는 방법은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게 하는 일이었다. 어린 것이 세상사를 모르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야만 다시는 자다가 오줌 못 가리고 이불에 싸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소금을 얻으러 간 적이 있었다. 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최소한 한 번은 기억한다. 우리 살 던 곳엔 집과 집의 거리가 꽤 되었다. 농사를 짓는 집들이라 자기 농토를 깔고 집을 짓기 때문에 곳에 따라서는 산 넘어 한 집이 있을 만큼 집과 집의 거리가 꽤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우리 집에선 다행히 앞집은 200여 미터 거리에 있었고, 옆집은 500여 미터, 뒷집은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당연히 오줌을 싼 날은 앞집으로 가서 소금을 얻었다. 이사 오던 날 아버지가 지고 오시던 큰 가마솥을 중간에 대신 져다 주셨던 분, 허씨네 관수형네 집이었다. 마당도 우리보다 넒은 집, 부잣집이었다.

 

어느 날 나 역시 그 집에 소금을 얻으러 가야 했다. 어린 것이, 게다가 유독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너무 쑥스러웠다. 그렇다고 감히 엄마 말씀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아니 거역한다기보다 그것은 삶의 철칙이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엄마의 말씀을 따라 그날은 하필 새로 구입한 키였다. 키는 오래 쓰면 세월의 때가 묻어 거무칙칙하게 변하는 데 처음 구입하면 키는 얼핏 보면 하얗게 보일 만큼 희고 깨끗했다. 키를 쓰고 이른 아침에 해가 막 뜰 무렵 그 집에 갔다. 거의 키의 크기와 나의 크기가 엇비슷했다. 밥을 지으시다 부엌에서 나오신 관수형의 어머니는 “자다가 오줌 쌌구나!”하시면서 별다른 말씀은 안 하시곤 소금을 한 줌 쥐고 나오시더니 내게 소금을 뿌리셨다. 소금을 얻어 오라 하셨는데 소금은 안 주시고 뿌리곤 가라 하셨다. 모법생인 나는 “엄마가 소금을 얻어 오라하셨어요.”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다시 들어가시더니 내 손바닥에 소금 한 줌을 쥐어주셨다.

 

그 덕분이었던지, 어느 정도 나이에 이르면 신기하게도 오줌을 가렸다. 그러다 오줌을 충분히 가릴 나이가 되었음에도 어쩌다 한 번은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럴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하면 들키지 않게 일처리를 하느라 전전긍긍했다. 그런 날은 어른들 말씀대로 불장난을 한 날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불장난을 한 때문으로 믿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그것은 일리는 있었으나 실제로 불장난 때문이 아니라 불장난은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피곤한 줄 모르고 놀다보니 피곤해서 자다가 그냥 오줌을 쌌던 듯싶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낮에 물놀이를 하면 자다가 그냥 그 자리에 오줌을 싼다는 말들도 하셨는데, 그 또한 그랬을 것이다. 물놀이, 물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개구리 잡기를 하면 무척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곤 했는데, 그 또한 물에서 노는 일은 피곤한 터라 오줌을 못 가린다 싶었다. 그런 날은 꼭 꿈이 나를 속였다. 분명히 자다가 깨서 밖에 나가 신나게 오줌을 쌌는데, 이상한 기분에, 왠지 척척한 기분에 잠에서 깨고 보면 이불에 실례한 거였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나처럼 자다가 오줌을 싸고 그걸 처리하느라 전전긍긍한 적은 한두 번쯤 겪었으리라. 모르겠다. 나를 합리화하려고 나를 위로하려고 그렇게 나 스스로 믿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동생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을 봤으니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동생들도 나처럼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긴 했지만 나처럼 소금을 얻어온 적은 없긴 했다.

 

그랬다. 소금을 얻으러 오라고 시킨 것은 그 일을 하면 부끄럽기 때문에 자다가 이불이나 옷에 오줌을 싸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여, 스스로 조심하게 만드는 방책에 불과했을 텐데 나는 그대로 믿었던 탓이었으리라. 그냥 소금 뿌려주면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었을 것을, 엄마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라서 소금을 달라고 했으니,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내놓고 꽤나 웃으셨으리라. 그래도 작은 손에 얼마 되지는 않지만 소금을 얻었으니 생산적이 아니랴. 어린 나이 때문인지 엄마 역시 그냥 내 주먹에서 쏟아낸 소금을 그냥 받으시곤 아무런 설명을 안 해 주신 걸 보면 어른들도 그대로 그 풍습을 믿으셨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만, 그럴 수 있다면 그땐 떼를 써서 소금 한 되박은 얻어다 엄마한테 살림을 보태줄 텐데. 새로 구입한 탄탄해 보이는 하얀 키, 유난히 키가 크셨던 후덕하신 앞집 아주머니, 모두가 그리운,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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