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67- 멧돼지를 만난 날

영광도서 0 604

요즘 아직 채 밝지 않은 여명 때나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산에 들면 멧돼지를 만나기는 쉽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서울을 둘러싼 불암산이며, 수락산이며, 도봉산이며, 북한산, 어느 산에든 멧돼지가 많이 서식한다. 낮에 산길을 살펴봐도 산 곳곳에서 멧돼지가 지나간 흔적은 얼마든 많다. 그만큼 멧돼지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었단 의미이다.

 

정작 나 어렸을 때는 멧돼지를 직접 보기는 거의 어려웠다. 서울도 아닌 깊고 깊은 산골마을에서도 멧돼지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다만 흔적은 어쩌다 발견할 수 있었다. 멧돼지는 주로 애간에 활동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 사는 마을엔 잘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맷돼지가 많지는 않았던 듯싶었다. 겨울에 양지바른 곳에서 칡뿌리를 캐 먹은 흔적이라든가, 감자밭에 내려와 헤집어 놓은 흔적을 볼 수는 있었다.

 

멧돼지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놈들이 한 번 출동하면 밭을 아예 절단 내듯 했다. 점잖게 먹을 것만 파먹고 가면 좋을 텐데, 주둥이를 땅에 한 번 박으면 한참을 밭 이랑을 갈 듯이 죽 밀고 나가서 감자를 확 뒤집어 놓는 심술을 부리곤 했다. 때문에 멧돼지는 심술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더 무서운 것은 멧돼지는 화가 나면 사람을 잡아먹는데 뼈도 남기지 않아서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어른들 말씀 때문에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만나기 쉽지 않은 멧돼지, 4학년 때 산에서 멧돼지와 처음 맞닥뜨렸다. 이야기인 즉, 자칭 우리 집은 술로 망한 집안이었다. 아버지가 무척 술을 좋아하셨다. 두주불사로 ‘막걸리 한 통을 지고는 못 가고 마시고는 간다’할 정도였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신 덕분에 술병에 들리셔서 일을 못하셨다. 때문에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에도 겨울에 땔감은 엄마의 몫이었다. 하여 엄마는 나보다 세 살 위인 작은형에겐 꼬마지게를 지우고 나를 앞세우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셨다. 집으로 올 때는 내 어깨에도 까치 집 만한 나뭇단을 칡으로 만든 질빵을 얹어주었다. 그렇게 땔감을 해결하곤 했다.

 

그런 것이 내가 4학년 무렵 겨울엔 작은형이 짊어지던 꼬마지게는 내 몫이 되었다. 그 지게를 지고 작은형을 따라 겨울이면 땔감을 하러 양지바른 산에 오르곤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멧돼지와 맞닥뜨렸다. 집에서 2킬로미터 쯤 되는 백우산 중턱에서 땔나무를 채취하고 있었는데, 땅을 파 헤치는 소리, 누군가 뭔가를 캐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나무를 채취하다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니 멧돼지, 조금 과장을 하면 집채만 한 멧돼지 두 마리하고 작은 놈 한 마리가 칡뿌리를 캐느라 국국 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작은형과 나는 도망가기로 눈을 맞추었다. 겁이 무척 많았던, 나중에 봐도 나보다 훨씬 겁이 많았던 작은형은 지게꼬리를 사리지도 않은채 지게만 지고 냅다 달렸다. 나도 작은형을 따라 달렸다. 멧돼지가 뒤따라오는 것 같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달리는데 작은형 몸이 갑자기 뒤로 젖혀졌다. 놀란 작은형이 “복현이 멧돼지가 지게꼬리를 잡았나 봐.”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작은형이 외쳤다. 가만 보니 멧돼지가 잡은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지게꼬리가 걸린 것이었다. 내가 줄을 풀며 줄, 즉 지게꼬리가 걸렸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다시 몸이 놓이자 냅다 산 아래로 냅다 달렸다. 그렇게 작은형과 나는 땀이 흥건하게 나도록 집에까지 뒤도 못 돌아보고 달렸다. 그렇게 집에 까지 와서 나무를 못해 온 이유를 엄마께 말하자 엄마는 기가 찬 듯 말씀이 없으셨다. 그날 멧돼지는 공초 중에 공포를 불러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멧돼지를 만나면 두렵긴 마찬가지이다. 몰라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멧돼지, 뒤도 못 돌아보고 어린 걸음으로는 제법 멀었던 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달렸던 그때, 무지라기보다는 순진해서 더 힘들었던, 정신이 없어 힘든 줄도 몰랐던 그 날 그 순간은 지금도 무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동화처럼 생생하다.

 

그때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말씀 때문인지, 실제로 영리하지는 못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멧돼지의 속성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 최근에도 산에 다니다 멧돼지와 마주치면 잔뜩 주눅이 들곤 한다. 직접 맞닥뜨리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멧돼지를 만날까 두렵다. 가끔 서울 인근 산에서 만나는 멧돼지들, 나라에서 좀 잡아주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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