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2- 우리 형제들 중 나만 충청도 사람

영광도서 0 550

알게 모르게 삶의 환경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어느 곳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곳에서 자랐느냐, 어디에서 살았느냐는 은연중에 그를 지배한다. 때문에 자녀의 바른 교육을 위해 이사를 다녔다는 맹모삼천지교가 회자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나 역시 여러 곳에 이사를 다닌,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런 터였다. 우리 식구들, 우리는 7남매였으나 실제로는 8남매였단다. 불당골에 살 때 해방동이인 큰형, 그 아래 큰누나, 둘째누나까지가 6.25전쟁 전에 태어났다. 어느 날,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집 근처에서 큰형이 불장난을 하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집안에 있다 불이 난 것을 알고 큰누나와 큰형은 도망쳐 나왔으나 어린 둘째누나는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주 똘망똘망했었다며 회상하셨다. 전후에 셋째누나에 이어 작은형이 태어났으니, 이후로 둘째누나는 잊혔고, 누나가 둘인지라 큰누나와 작은누나로 불렀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질서를 서서히 잡아갈 무렵이었을 터, 그러나 술을 무척 좋아하신 탓에 술병을 얻으신 아버지, 당연히 우리 집 가세는 기울었다. 기어코 불당골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다. 게다가 아버지는 술병이 들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당시 충남 서산군 해미면 대곡리에 거주하던 외삼촌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오라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터라 우리는 서산으로 이사를 했다.

 

외삼촌들이 집을 직접 지어서 살 수 있는 터전을 잡아주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우리 가족, 서서히 터전을 잡아가고 있을 때, 그곳에서 바로 내가 태어났으니, 우리 가족 모두 강원도 생인데 나만 충남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곳에서 나의 씨는 잉태되었고,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일 년을 갓난아이 적에 살았다.

 

어느 정도 살림이 피자 아버지는 다시 강원도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고집을 피우셨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아버지의 누나, 두 분 사이는 아주 돈독했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는 강원도에 이사를 가서 맑은 물 좋은 공기를 마셔야 병이 낫는다며 고집을 피우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서서히 터전을 잡아가던 곳에서 다시 강원도로 이사를 했으니,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던 곳, 홍천군 두촌면 흑둔지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내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었다. 충남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으나, 울타리가 싸리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고, 건너편 신작로로 투박한 군용차들이 줄지어 달리던 모습을 작은누나와 함께 보았던 일, 나중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꿈이 아니라 바로 흑둔지의 모습이었단 엄마의 말씀에서 그것이 내 최초의 기억임을 알았다. 적어도 내 네 살 생일 전이었으니까, 우리 나이로 세 살쯤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네 살 내 생일날 내가 자라고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내촌면 광암리로 우리 집은 이사를 왔으니 나의 거의 모든 삶의 영향은 그곳이었다. 그곳이 내 고향이라면 고향이었다.

 

어쩌면 기근을 피해 애급에 가서 그 시절을 보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야곱일가처럼, 먹고 사는 문제로 충청도로 가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조금 웬만하니 다시 고향 강원도로 돌아온 우리 집, 그리 생각하니 거창한 듯싶다만, 단순히 무의식으로 자리 잡았을 내 유년시절, 나는 나를 모른다. 단지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태어나기 전의 내 가족의 이야기를, 내가 태어난 사연을, 내가 자란 사연을 알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환경에 지배를 알게 모르게 받을 수밖에 없음을 때로는 실감한다. 왠지 모르게 우리 형제들 중 내가 가장 말투가 느리다. 성격도 느슨하다. 때로는 전형적인 충청도 티가 난단다. 피는 못 속인다지만 환경은 못 속인다. 무의식의 시절에의 경험과 의식이 시작된 후의 경험, 그런 경험들 덕분에 나는 우리 식구들 중 독특한 면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한다. 알게 모르게 가장 많은 이사를 경험한 때문에 때로 방황하고 때로 외로워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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