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7- 꿩 사냥을 나간다.
“까투리,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훠이”
꿩은 꿩이나 암꿩은 까투리, 수꿩은 쟁끼리라고 부른다. 이 노래에선 서 쟁끼를 지칭하지 않고 까투리를 지칭했는지, 아마도 음절 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만, 꿩의 생김새는 단연 까투리보다는 쟁끼가 훨씬 아름답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구애를 하는 쪽, 달리 말하면 을의 입장에 있는 것들이 더 아름답듯이, 쟁끼도 구애를 하는 쪽에 설 것이다,
시골 살 때 외지에서 온 사냥꾼이 공기총으로 꿩 사냥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사냥개가 꿩을 날리면 사냥꾼은 공중을 향해 사격을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산탄에 난사당한 꿩은 날아오르다 급격한 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추락했다. 꿩에겐 비극적인 죽음이지만, 내 잔인한 습성인지 몰라도 그 궤적은 아주 아름다웠다.
총기라고는 구경도 못한 시골이었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는 겨울이면 꿩을 잡는 것이 거의 일반화였다. 꿩을 잡는 방법은 어느 집이든 같은 방식이었다. 양지 바른 곳 찔레나무 덤불 밑에 사이나를 넣은 콩으로 잡는 방식이었다. 똘똘한 흰콩을 고른 다음, 귀 후비개 모양 또는 일자 드라이버 모양의 도구를 만들어서 콩의 안을 최대한 파내었다. 너무 파내서 얇으면 사이나가 밖으로 퍼져 나와 꿩이 속지 않기 때문에 적당하게 파내야 했다. 너무 두껍게 파내면 사이나를 먹는다 해도 꿩은 쉽게 죽지 않기 때문에 멀리 날아가 죽기 때문에 얼마나 적당히 파내느냐가 관건이었다. 파낸 빈 곳에는 사이나를 최대한 채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파내느라 생긴 자리를 살짝 초칠을 하여 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겨울인지라 돌에서 습기가 스며들면 사이나가 겉으로 퍼져 나와서 약삭빠른 꿩은 속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콩을 양지바른 곳에 눈을 헤치고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돌을 놓은 다음 돌 위에 초 칠한 부분이 닿도록 올려놓아야 여지없는 멀쩡한 콩처럼 보였다.
각자 꿩이 올만한 자리에 사이나 콩을 놓는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조사를 나간다. 하얀 눈 위에 꿩의 발자국이 찍혀 있으면 꿩이 잡혔을 가능성이 있기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재수 없다면 까치가 왔다가 콩만 굴려 떨어뜨리는 경우이다. 다행스럽게 꿩이 그것을 먹었다면 꿩의 발자국을 따라 추적한다. 사이나를 먹은 꿩은 이내 약이 퍼지기 때문에 항상 오르막으로 기어가다 고꾸라져 죽는다. 그렇지 않고 사이나 콩에 사이나의 양이 덜 들어갈 경우는 꿩은 날아가 죽는다. 이런 꿩은 누가 주인이랄 것 없이 줍는 사람이 임자이다. 때문에 나무를 하다 꿩을 줍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동네에 허씨네 형은 유독 꿩을 잘도 잡았다. 작은형도 잡으려고 나름 무척 노력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잡곤 했다. 대신 어쩌다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죽은 꿩을 들고 오기는 했다. 나 역시 남이 죽인 꿩을 두어 번 주워온 적이 있었다.
꿩을 잡으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꿩 고기 만두를 해 먹을 수 있으니 더 더욱 좋았다. 꿩을 잡아오거나 주워오면 엄마는 무척 좋아하셨다. 들고 오는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고. 나는 줘오기는 했으나 사이나를 놓아 꿩을 잡은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복은 있어서 맨손으로 꿩을 잡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한 번은 봄에 소꼴을 베러 갔다가 알을 품고 있는 중인 꿩을 발견했다. 녀석은 나를 미처 못 본 것 같았다. 거리는 3미터는 되어 보였다.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꿩을 덮쳤다. 그렇게 까투리 한 마리를 생포했고, 그 아래 숨겨 있던 알 12개도 함께 얻었다. 그걸 엄마한테 가져다 드렸더니 엄마는 이럴 경우 한 가지만 우리가 차지하고 한 가지는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어야 한다는 미신인지 관습인지를 믿고는 꿩은 우리가 먹고 알은 이웃집에 가져다주었다.
생포한 경우는 또 있었다. 어쩌다 매가 꿩을 낚아채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놈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다. 매는 하늘 높이 날면서도 소리를 질러대자 놀라서였는지, 너무 무거워서였는지 그만 꿩을 떨어뜨렸다. 매에서 벗어난 꿩은 아주 근사한 궤적을 그리며 수직으로 낙하했다. 죽었거나 기절한 상태였을 터였다. 떨어진 쪽으로 냅다 달렸다. 떨어진 주변을 수색하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꿩, 쟁끼였다. 녀석은 죽은 것이 아니라 숨느라고 숨은 듯했다. 풀숲에 머리는 처박고 있었으나 몸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까이 가서 몸을 움켜잡을 때까지 놈은 잘 숨었거니 하고 그대로 있었다. 그때 꿩이 머리가 좋지 않음을 처음 알았다. 때문에 후에도 매가 꿩을 채가는 걸 보면 냅다 소리를 질러 꿩을 떨어뜨리게 만들었고, 불노소득으로 꿩을 여러 번 잡았다. 그게 내 방식이라면 방식이었다.
꿩에게는 소중한 목숨이지만 놈을 잡으면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던 나에겐 그만큼 잔인한 습성이 숨어 있나 모르겠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그럴 기회가 있다면 녀석이 불쌍하다 생각 들기보다는 잡고 싶다. 그래, 나는 선하지는 않다. 여전히 사냥꾼의 본능이 내게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꿩고기를 다져 넣은 만둣국을 만들어 먹고 싶다. 엄마가 손수 밀가루 반죽을 치고, 손수 빚은 만두, 그 안에 꿩고기를 피로 넣은 만둣국, 생각만 해도 구미가 당긴다. 그때만 해도 한창 젊었던 엄마의 모습, 그때 그 모습의 엄마로, 그때 그 시절의 나로, 꿈에서라도 한 번쯤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날이면 나는 복권 한 장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