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8- 나쁜 사람들

영광도서 0 532

무지란 무었을까? 때로는 무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맥락을 몰라 그냥 넘어가거나 동조하기도 한다. 때로는 같은 편에 들어 있어 제대로 판단을 못해 악을 선으로 착각하고 동조하기도 한다. 무지란 실제로 몰라서일 경우도 있으나 보다 좋지 않은 무지는 알긴 아는데 제대로 모르는 무지가 더 좋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무지의 기준은 다를 바 없지만 점차 영악한 무지로 사람들은 서로 편 가르기 한다.

 

이런 저런 무지와 다를 수도 잇지만 어렸을 때는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역시 그럴 것이었다. 깊고 깊은 산골이라 보도 듣는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점구경도 못했지, 텔레비전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 라디오도 없었지, 바깥세상을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어쩌다 가족고개에 올라가서 조금 내려가 내려다보이는 면소재지를 가리켜 “아부지 저기가 서울이에요?”라고 물었을 정도였다.

 

우리 동네에 라디오 있는 집이 두 집이 있긴 했다. 사각의 통처럼 생긴 라디오였다. 라디오 밖에 커다란 배터리, 이를테면 액과처럼 네모반듯한 쪼가리들이 십여 개를 포갠 베터리를 단 라디오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상자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 말을 하고 노래를 하는지 신기했다. 그런들 우리 라디오가 아니니 어쩌다 한 번 구경 가서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었으니 참으로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못된 짓을 해도 그게 나쁜 일인지 몰랐다. 한 번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낯선 세 사람이 학교 앞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보통은 족대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거나 낚시로 잡는데, 이 사람들은 등에다 배터리를 지고 배터리에 선을 연결한 장치를 물에 담가서 잡고 있었다. 신기했다. 웅덩이에 그걸 담그니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내고 거꾸로 떠올랐다. 그걸 신기해서 구경하노라니 그 아저씨가 장난삼아 내 발등에 대었는데 찌릿 깜짝 놀랐다. 아저씨가 웃었고 나도 신기해서 웃었다. 그렇게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아닌 낯선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서 물고기를 엄청 잡아갔지만 우리 동네 어른들 누구도 막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이것보다 더 심한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교 앞 강을 건너는데 웅덩이마다에 온갖 다양한 물고기들, 빠가사리, 돌거지, 버드재 등이 하얀 배를 드러내며 물웅덩이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건너는 곳뿐 아니라 그 위로도, 그 아래로도, 어디서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강 곳곳에 물고기들이 거꾸로 떠오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도 양동이를 들고 나가서 한 양동이씩 건져오기도 했다. 이 역시 외지에서 온 이들이 약을 풀어서 강을 따라 족히 4킬로미터 이상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었다. 순진해서 또는 순수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 무시하고 저들 마음대로 못된 짓을 한 것이었다. 물로 그들 자신도 그것이 나쁜 짓인지 모르고 할 수도 있었다. 아마도 자기들 동네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터였다. 만만한 동네에 들어와서 못된 짓을 저질러놓은 탐욕,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 짓이 얼마나 나뿐 짓인지 그때는 몰랐다. 어른들도 몰랐다. 우리 동네 사람도 아니고, 물론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배터리를 구경한 적도 없으니 사용법도 몰랐을 테고, 액을 풀어 물고기를 잡겠다는 발상 자체를 할 줄 몰랐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음에도 누구 하나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무지한 탓이었다. 무지한 탓에 어린 나도, 어른들도 그냥 넘어가거나 동조자가 되고 말았다.

 

무지, 무지는 나 자신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물론 무지하기 때문에 정상참작이랄까, 뭐 그런 정도로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지가 악임을 이제는 안다. 못된 짓을 목격하고도 그게 못된 짓인 줄 몰랐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다. 그걸 오히려 즐겼으니. 지금 역시 나는 무지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영논리에 따른 편견의 무지에 빠져 제대로 판단을 못하며 동조하거나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린 시절처럼 아예 무지해서 지은 악보다, 뭔가 좀 안답시고 자기편견에 빠져 나 자신을 합리하화라고 내가 동조하는 편을 옹호하는 편견의 무지가 더 악일 것이다. 무지가 악인 한 무지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설픈 앎보다는 진정한 앎을 나의 세계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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