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0- 개구리 잡기와 개구리 요리

영광도서 0 797

한 때의 문화는 다음에는 금기가 되기도 하고, 이전엔 금기였던 것이 지금은 문화로 자리 잡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에 절대 악도 없고 절대 선도 없다. 절대 정의도 없고 절대 불의도 없다.. 모두가 시대의 산물이다.

 

늦가을부터 겨울이면 우리는 개구리를 잡았다. 개구리는 식용으로 그만이었다. 큰 강에서는 개구리를 잡기 어려웠지만 강으로 흘러드는 개울에서 개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족대를 들고 대량으로 잡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맨손으로 개구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맨손으로도 하루면 큰 양동이로 하나 가득 잡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잡을 때는 개구리를 잡아서 꿸 꾸러미가 필요했다. 철사가 있으면 더 없이 좋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출하면서도 가늘지만 잘 부러지지 않는 나무줄기를 이용했다. 밑으로 개구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밑에 기역자형 줄기가 있는 나무를 골랐다. 개구리를 잡으면 개구리 입에서 찔러 넣어 눈으로 빼어 꿰었다. 그렇기 한 마리 한 마리 잡아서 꿰어 족히 한 자 정도 채우면 50여 마리는 되었다. 그렇게 두어 꾸러미 잡아서 집으로 오곤 했다.

 

혼자 아니고 친구들과 함께 잡으면 훨씬 쉽고 많이 잡을 수 있엇다. 헌자 잡을 때는 발로 밟아 흔들어 개구리가 나올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돌 아래 사는 개구리만 잡을 수 있었으나 친구들과 잡을 때는 지렛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렛대는 단단한 나무를 이용하면 되었다. 힘센 친구가 큰 돌 밑에 지렛대를 넣고 굄돌을 이용해 돌을 흔들면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돌에 따라 수십 마리가 모여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흔들었다. 그렇게 나오는 족족 잡아챈 다음, 또 흔들어 그 안에 있던 개구리들을 알뜰하게 잡을 수 있었다. 보통 3인 1조가 딱이었다. 한 아이는 돌을 흔들고 한 아이는 개구리를 잡고 좀 어리고 동작이 둔한 아이는 주전자를 들거나 꾸러미에 개구리를 꿰는 역할을 맡았다. 그럴 때는 나는 잽쌌기 때문에 개구리 잡이가 내 몫이었다.

 

개구리를 모든 아이들이 잘 잡는 건 아니었다. 일단 개구리를 잘 잡으려면 개구리가 많이 사는 개울을 잘 골라야 했다. 그 다음엔 개구리가 들어가 살 만한 돌을 잘 골라야 했다. 너무 맑은 개울, 모래가 많은 개울에는 개구리가 살지 않았다. 바위도 딱 보면 개구리가 들어가 살 만한 돌이 다로 있었다. 바닥과 바위가 너무 들떠 있어도 안 되었고 적당한 틈이 있어야 했다. 바위 주변이 적당히 은폐가 되어 있어야 했고, 바닥에 흙의 질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바위나 돌은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 바위나 돌을 들추거나 지렛대로 흔들면 여지없이 개구리들이 신나게 튀어나왔다.

 

마음만 먹으면 개구리는 집에서 먹고도 남을 만큼 잡을 수 있었다. 필요이상으로 잡지는 않았지만, 가끔 건빵과 바꾸기 위해 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겨울이면 산에 따라 벌목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아니었다. 외지에서 일하러 온 아저씨들에게 개구리 꾸러미를 가져가면 건빵하고 바꿔주곤 했다. 해서 건빵하고 바꿔 먹는 재미로 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집에서 개구리를 먹는 방법은 화롯불에 구워먹는 게 가장 일반적이었다. 잡아온 개구리를 태질해서 한 마리 한 마리 확인 사살을 한 후에 석쇠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구워먹었다. 맛이 기막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때거리였다. 그렇지 않으면 얼추 양념을 하여 끓여먹었다. 온 가족이 때거리로 먹을 때는 그렇게 끓여 먹었다. 이렇게 두 가지로 개구리를 먹으면 뼈가 많이 나왔고 알뜰하게 먹을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대령으로 개구리를 먹을 때는 우선 개구리를 양동이에 담은 다음 잘 씻고 물을 자작자작 비운다. 여전히 개구리는 살아 있는데, 펄펄 끓인 물을 부어서 개구리를 한꺼번에 죽여서 요리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죽인 개구리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한다. 그러면 개구리 머리는 물론 개구리 뼈까지도 잘게 으스러진다. 그렇게 난도질한 개구리 무더기는 거무칙칙한 색깔을 띤다. 거기에 밀가루를 섞어 버무려 끓이면 알뜰하게 개구리 모두를 먹을 수 있다.

 

가족 전체가 때거리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렇게 먹는 날이 꽤 있었다. 가족의 먹거리로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기도 했고 때로는 과자 바꾸어 먹기로 잡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였다. 많이 잡으면 그런 대로 흡족한 마음이 있어서 겨울이면 자주 개구리를 잡으러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많이 잔인했구나 싶기도 하다. 개구리를 잡으면 돌에 내동댕이쳐서 쭉 하고 뻗는 것을 즐겼고, 양동이에 담긴 개구리들을 펄펄 끓는 물로 집단 학살을 하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으니 잔인했던 것 같다. 돌을 들추면 나름 도망치겠다고 다리를 쭉쭉 뻗으면서 깊은 물로 나아가던 개구리들, 추운 겨울에 그걸 잡겠다고 손이 벌게지도록 찬 물 속을 휘젓던 어린 손들,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풍경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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