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4- 말벌 쫓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영광도서 0 438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이 있다. 필시 어리석게 일처리를 하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낭패를 보는, 또는 작은 일로 큰 화를 입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말일 것이다.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짓을 뜻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어찌 살았는지 알 수 없다만, 보잘 것 없는 땅이긴 토지가 딸린 초가삼간이라도 우리 집이라고 누리고 살았는데, 그 집마저 팔아야 했나 싶었다. 집도 절도 없는 우리는 남의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때 다행이든 불행이든 큰매형네 소유의 도관리 불당골로 이사를 해야 했다. 별로 표정을 내지 않으시는 터라, 이러나저러나 좋은 듯 싫은 듯 표정 변화가 없으신 터라 아버지의 속내는 몰랐다. 그러나 엄마는 영 큰매형네 집으로 이사하는 걸 영 마뜩찮아 하셨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 간 첫해였다. 그때는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겨울엔 농목이라고 해서 겨울에 일 년 동안 땔감을 준비해야 했다. 소나무의 가지를 친다든가 잡목 따위를 채취하여 단으로 묶어서 집 옆에 집채만큼 큰 나뭇가리를 쌓아두곤 했다. 우리 역시 이사 가자마자 겨울 동안 한 가리를 노간주나무로 이룬 울타리 밖 집 옆에 마련해 두었다. 그리곤 나뭇가리에서 십여 단 빼서 땔감으로 쓴 후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뭇가리 위쪽에 말벌이 집을 지어 놓은 바람에 상당히 위험스러웠다. 불을 때려면 나뭇단을 뺄 때도 놈들이 잠든 밤에 몰래 빼내야 했다. 그놈들을 퇴치할 아이디어를 작은형이 냈다. 그때는 탄알을 구하기 쉬웠다. 6.25전쟁이 지난 지 15년은 족히 지났어도 밭에서 김을 매다 보면 녹도 안 슨 탄창채로 있는 탄환들을 꽤 수집할 수 있었다.

 

이놈들을 바위에 툭툭 치면 철 알이 흔들린다. 철 알을 빼려면 쉽게 빠진다, 거꾸로 들면 화약이 쏟아진다. 탄알 하나엔 제법 많은 화약이 나온다. 이걸 모으면 금세 한 움큼은 쉽게 얻는다.

 

작은형은 화약 냄새를 피워 말벌을 내쫓을 심산이었다. 소심한 나는 위험하다며 그걸 말렸으나 막을 힘이 없었다. 밤에 부모님은 안방에서 잠든 사이에 작은형은 나와 동생을 불러냈다. 명령에 따라 나뭇가리로 갔다. 나뭇단이 빠진 자리에 공간이 제법 있었다. 그 공간 밑 부분에 평평한 송판을 깔고 거기에 화약을 소복하게 쌓았다. 작은형이 성냥불을 붙였다. 화약이 쉬이익 소리를 내면서 불이 튀었다. 갑자기 밤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뭇가리에 불이 붙은 것이다. 작은형이 나에게 다급하게 물을 떠오라고 시켰다. 재빨리 부엌으로 달려간 나는 우물에서 예비로 물을 퍼다 담아 놓은 물동이에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나뭇가리로 다급하게 달렸다. 작은형이 물을 받아 나뭇가리에 부었다. 불이 주춤하는 듯 다시 타올랐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달렸다. 마침 감자기 밖이 환하자 놀란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안방 앞을 지나던 나는 다급하게 나뭇가리에 불이 붙었다고 외쳤다. 아버지는 맨발로 뛰어나오시더니 거름으로 쓰려던 오줌동이를 들고 나뭇가리로 달리셨다. 그리곤 작은형을 비키게 하곤 오줌을 나뭇가리를 향해 확 부으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은 단숨에 지지직 소리를 내며 잡혔다. 뒤따라 나오신 어머니는 맥이 풀리셨는지 자리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곤 깊은 한숨을 돌리시곤 물을 동이 채로 가져다 잔불 처리를 하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참 별일이었다.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잠을 주무실 때 항상 옷을 입고 주무셨으니 맨발 외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급한 순간에 오줌동이를 들고 달리셨던 아버지, 평소엔 무능한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아주 지혜로운 영웅이셨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혀를 몇 번 끌끌 치신 것 빼고는 아무런 말씀도 안하셨다. 그만큼 아버지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자식들한테도 싫은 소리를 못하셨다. 대신 엄마한테 작은형은 무척 혼이 났다. 나 역시 어리석다는 핀잔을 들었다. 나뭇가리에 불이 났으면 동이채로 들고 가도 시원찮은데 바가지에 물을 퍼가는 것이 뭐냐며 나무라셨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뭇가리 하나 태우는 건 그렇다 치고 불은 필연적으로 집으로 옮겨 붙었을 테니, 부모님으로 따지면 가장 어렵다는 사돈집의 초가삼간을 태울 뻔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으랴. 아버지는 그 순간에 어떻게 그런 기지를 발휘하셨는지, 어떻게 그런 궁리를 하셨는지, 봉당에 오줌동이가 있었던 것은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면서도 참으로 다행이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집도 절도 없던 우리가 게다가 남의 집까지 태웠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작은형의 위험한 아이디어, 아버지의 지혜로운 위기 대처, 엄마의 심한 꾸중과 한숨 돌리던 모습, 엄마의 한숨 소리와 맥 풀린 모습도 그렇지만 그 순간에 물동이 채로 가져가도 시원찮을 텐데, 물을 바가지에 담아 들고 불을 끄겠다고 한 어리석은 나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는다. 태평스러웠던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야말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도 그렇게 한심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남을 놀라게 하던 내가 그때는 다급한 성격도 아닌데 그리 한심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역시 인생은 오래 살아볼 일이다. 아버지가 오줌동이를 들고 나서셨던 모습을 보면,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삶의 지혜를 함께 먹으며 나이를 먹는 것 같다. 그 놈의 말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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