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32- 어르신이란 말을 들으면

영광도서 0 455

때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가 상대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철에서 나이는 많지 않으나 거의 대머리인 사람인지라 나이가 많거니 하고 전철에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한다면 뜻은 갸륵하나 당사자는 깨나 난처할 것이다. 실제로는 나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앉으려니 나이는 적고, 그렇다고 양보를 무시하려니 나이가 많지 않다고 굳이 밝히기도 그렇고 하여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사람의 기대가 다를 경우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다. 내 나이와 상대가 보는 나이가 다를 때의 충격,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가 다를 때의 충격이다. 이처럼 누구나 자기기준을 갖고 있다. 그 기준이 세상에 반응한다. 때로는 사안에 따라 긍정적인 반응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부정적인 반응을 할 때도 있다.

 

나는 10여 년 전에 처음으로 도봉산 등산 중에 어르신이란 말을 들었다. 회룡역에서 걷기 시작했다. 호암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지난다. 사패능선에 오른다. 사패산 정상에 올랐다가 사패능선을 타고 오른다. 숨고르기하며 오르막을 지나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거기에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그쯤에선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좋다. 정상 자운봉도 바로 보인다.

 

전망 좋은 감시초소,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가방을 풀었다. 먹거리를 꺼냈다. 감시초소에 공익근무요원 혼자 지키고 있었다. 혼자만 지키고 있다, 혼자만 먹기 좀 그랬다. 공익요원에게 굴 다섯 개를 주면서 먹기를 권한다. 그러자 그는 “괜찮아요. 어르신! 어르신 드세요.”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럼에도 재차 권하니 젊은이는 기꺼이 받는다. 고마운 마음으로. 먹을 것을 나누니 나 역시 기분은 좋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어르신이란 호칭 때문이었다. 그 젊은이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벌써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구나, 마음은 젊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나이가 어르신이라 할 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는 다르다는 것, 그런데 하필 내가 생각하는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것에 그때는 왠지 허망함을 느꼈다. 지금에야 어쩌다 누구든 어르신이라고 한다면 그러려니 할 터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충격이었다. 처음 들은 말이니 더했다. 때문에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한 영상처럼 떠오른다. 그 주변에 삐쭉삐쭉한 바위들이며, 젊은이가 고마워하는 표정이며, 예의바른 모습이며, 심지어 내가 나를 상상한 모자를 눌러쓴 내 모습까지도 생생하다.

 

나름 예의를 갖추어 고마움의 표현으로 내게 한 어르신이란 말은 그때까지 상당히 낯설었다. 그 젊은이 입장에선 당연히 어르신이라고 할 만큼 내가 늙어 보였을 것이다. 조금은 예의를 갖추느라 어르신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아직 어르신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말을 자주 들었으면 익숙할 터이나 처음 들은지라 충격이 컷을 터이다. 그때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한 번도 어르신이란 말을 다시 들은 적은 없었다.

 

때로는 지나친 예의는 다른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도 하고 난처하게도 한다. 그렇다고 예의 앞에 상대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이고, 고마운 일이니까. 다만 내가 나에게 주는 충격일 뿐이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면 나이 들게 마련이고, 남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와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괴리는 당연한데, 그것을 인정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 탓이거늘.

 

어르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을 들을 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는 나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고, 젊은이가 봤을 때는 당연히 나이 들게 보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예의가 바른지라 순수하게 예의상 높여 불러주었을 수도 있는 호칭 어르신, 1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내게 어르신이란 말을 하면 여전히 낯설 것 같다. 난 아직 젊으니까.

 

“난 아직 어르신이 아니라니까. 난 청년이라고. 자네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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