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4- 물이 검정고무신을 삼킨 날의 추억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비행사는 어렸을 적의 일을 소개한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중인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무엇인지 물었더니 어른들은 여지없이 누구랄 것도 없이 모자라고 답했다고 말한다. <어린왕자>를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그림, 만일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검정고무신이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그 그림은 마치 내가 어렸을 적 검정고무신으로 만든 자동차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검정고무신 한 짝을 바닥으로 쓰고, 다른 한 짝은 뒤집어서 바닥 신에 앞뒤로 끼면 앞뒤로 조금씩 튀어나온 자동차 모양이 나온다. 딱 그 그림이어서다.
검정고무신은 참 다용도로 쓰였다. 굵은 모래 드러난 양지쪽 산비탈에선 자동차놀이 도구로 썼고, 물놀이할 때면 송사리를 잡거나 잡은 송사리를 담아두는 그릇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본래는 발을 보호하는 신발이지만 다용도로 쓴 검정고무신은 매일의 필수품이었다. 어쩌다 그것을 잃으면 적어도 5일마다 열리는 장날까지 기다려야 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검정고무신을 어쩌다 한 번 잃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다 기억엔 없지만 뚜렷한 기억 두어 개는 있다.
일학년 때였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위지만 학년으로는 일 년 선배인 작은형을 따라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도중에 아랫마을에 사는 영기가 합류했다. 영기는 나와 같은 학년이었고 키는 나보다 약간 작았으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학교까지는 6킬로미터쯤 되었다. 학교에 가려면 학교 앞에 흐르는 강을 어디로든 건너야 했다. 방법은 세 가지였다. 맨 위쪽에 시멘트다리, 유속이 느린 곳에 어른들이 놓은 돌다리, 자연적으로 생긴 아래쪽에 돌다리로, 시멘트다리로 건너는 게 가장 안전했다. 넓은바위 마을에서 건너오는 시멘트 다리는 높이는 5미터 가량에 폭은 1미터밖에 안되고, 길이는 20미터 가까웠다. 문제는 가장 멀리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중간 돌다리를 이용했다. 강폭이 가장 넓어서 비교적 유속이 느린 곳에 놓였으나 때로 물이 좀 불면 건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돌다리보다 아래쪽으로 백여 미터쯤에, 탑동에서 넘어오는 신작로 아래쪽에 자연적으로 생긴 돌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중간에 유속이 빠른 한 지점이 문제였다. 고학년 아이들은 충분히 건너뛸 수 있었으나 저학년 아이들이나 여자 아이들은 무서워서 잘 건너뛰지 못해서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마침 그 날은 돌다리로 건널 수 없을 만큼 물이 불은 날이었다. 돌더라도 시멘트다리로 건너면 좋을 일이었으나, 작은형은 우리를 데리고 맨 아래에 있는 돌다리로 데려갔다. 중간에 있는 돌다리로 건너면 가장 빠르고 좋았으나 그 돌다리로는 물이 불어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돌다리로 건너려고 했다. 이쪽에서 건너기는 어려웠고 반대편에서 건너기는 좀 쉬운 구조였다. 그날은 제법 물이 불어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셋은 책보를 전대를 메듯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단단히 매었다. 문제의 중간, 건너뛰어야 하는 곳까지 왔다. 작은형이 제일 먼저 훌쩍 건너뛰었다. 영기가 주춤하다 건너뛰면서 건너편 바위를 얼른 움켜잡고 다시 일어나 건넜다.
내 차례였다. 빠른 유속의 물, 그 아래로 하얀 물거품이 나를 삼킬 듯이 부글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아래는 더구나 깊고 꽤 넓은 소였다. 건너 뛸 용기가 싹 들어갔다. 차라리 혼자라도 돌더라도 시멘트다리로 건너야겠다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작은형이 핀잔했다. “너보다 작은 영기도 건너는데 못 건너!”라면서 욕을 했다. 용기를 냈으나 여전히 겁이 났다. 그러다 작은형의 재촉에 울먹이며 건너뛰었다. 건너편 돌을 밟긴 했다. 그런데 한 쪽 발이 물을 스치면서 고무신 한 짝을 거품이 이는 물이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물 아래로 사라진 검정고무신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작은형과 영기는 학교로 갔고, 나는 다시 울면서 집 쪽으로 되 건넜다.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꽤 먼 거리, 한 손에는 검정고무신 한 짝을 들고 맨 발로, 사람이 없는 곳에선 울음을 그쳤고, 사람이 지나가면 울기를 반복하면서 그 길을 돌아왔다.
다음날 아버지께서 장대를 가지고 그 곳에 가서 물속을 휘저으며 찾아봤으나 결국 잃고 말았다. 그 다음엔 새 신발을 얻었거나 아니면 아무리 같은 날 신기 시작한 신발이라도 조금 신을 만한 외짝은 있었을 터이니 그 신발로 얼마간 신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 그곳으로는 건너려고 시도한 적은 없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때에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넓이였다. 다만 잔뜩 긴장해서 건너려다 보니 그런 거였다. 건너 뛸 용기만 있었다면 충분히 건널 수 있었을 터였다. 용기야 말로 없던 힘까지 보태주는 것을, 그렇다고 용기를 낸다는 게 그게 그리 쉬운가.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거의 6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어떻게 울면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는 연기를 오래 하기 쉽지 않아 사람이 오면 울고, 사람이 없으면 울지 않으면서 돌아오던 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닌 듯한 낯선 어린아이, 하지만 정겨운 아이의 모습이 흑백화면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