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8- 쥐잡기 운동!

영광도서 0 730

그때는 그랬지,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는 이런 일 저런 일 많기도 하다. 여러 일들 중에 아마도 나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이라면 인상적인 것이 ‘쥐를 잡자’는 운동, 쥐잡기 운동이 아닐까 싶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그때는 쥐가 무척 많았다. 쥐가 병균을 옮기는지는 그때는 몰랐다. 다만 사람 먹을 것을 축내니 놈들은 철천지원수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놈들은 엄청 많았다. 떼로 다닐 때도 많았다. 이를테면 부엌과 마구간은 붙어 있었는데, 아침에 나가면 마구간 서까래에 쥐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가 사람이 나갈라치면 마치 경주를 하듯 반대편으로 앞 다투어 줄지어 냅다 달리는 모습을 보면 볼만했다.

 

안방에서도 놈들은 떼로 괴롭혔다. 천정을 신문지로 도배라고 해 놓으면 천정 벽과 도배한 사이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 안에 들어 있다가 가끔 밤이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경주하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쩌다 천정에 구멍이 뚫리면 그 사이로 떨어지는 놈들도 간혹 있었다. 작기나 해야지 큰놈은 마치 강아지만한 놈들도 있을 만큼 볼수록 징그러웠다. 때문에 눈에 띄기만 하면 쥐들은 어른들은 물론 어린애들한테도 적들 중에 적이었다.

 

때문에 그때는 “쥐를 잡자!”는 포스터가 신작로를 접한 가계집이나 반장 집 벽에 붙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흉측한 쥐 한 마리 크게 그려 넣고 뭔가로 찌르는 그림이었다. 포스터도 포스터지만 학교를 중심으로 쥐잡기 운동도 벌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기한을 정해주고 그때까지 한 아이 당 쥐꼬리를 다섯 개씩 가져오라고 시켰다. 물론 아이들에게 잡으라는 건 아니었다. 누가 잡든 그걸 가져다 조사를 받아야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들은 조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하긴 상관없을 듯싶다. 어른들에겐 쥐란 놈은 더 철천지원수였을 테니까. 어른들은 동네 반장을 통해 쥐약을 받았다. 나라에서 쥐약을 무료로 주어 쥐를 잡도록 시켰다. 해서 어른들도 쥐약을 놓아 쥐를 잡았다. 그런데 쥐약을 먹은 놈은 어느 구석에 박혀 죽는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학교에 가져가려면 따로 잡아야 했다. 하여 쥐 잡는 틀을 만들어 잡았다.

 

산에서 다래나무 오래 묵은 굵은 줄기를 4-50센티미터쯤으로 자른다. 두 개를 준비한다. 한 줄기를 아치 모양으로 휘게 만든다. 활모양으로 질긴 노끈으로 고정시킨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에 밑줄기보다 약간 짧지만 흰 중심부분엔 딱 맞도록 노끈에 함께 꿴다. 그러면 둘은 아치형의 중심에서 서로 딱 맞도록 조정한다. 거기에 걸이를 만들고 먹이를 단다. 놈이 먹이를 먹느라고 그것을 건드리는 순간 위에 있는 아치형 줄기가 내려치면서 쥐의 목을 조이게 만든다. 그렇게 쥐를 잡았다. 때로는 쥐틀에 강아지만한 놈이 걸려서 죽지 않고 찍찍 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놈을 잡으려면 무섭기까지 했다. 어떤 놈은 꼬리 뒷부분만 잘린 채 도망친 놈도 있었다. 그렇게 잡은 쥐는 꼬리만 잘라 학교에 가져다 내면 되었다.

 

어른들은 쥐약으로 쥐를 잡기도 했지만 고양이를 길러 고양이가 잡게 만들었다. 물론 개들 중에도 제법 쥐를 잘 잡는 개도 있긴 했다. 비록 똥개들뿐이긴 했지만. 고양이들은 쥐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놈들에게 쥐를 잡게 하려면 밥을 실컷 먹도록 주어선 안 되었다. 최소한으로 주고 쥐를 잡아먹게 훈련시켰다. 고양이들은 배가 좀 고파야 쥐를 열심히 잡았다. 쥐를 잡는 재미를 들인 고양이들은 먹을 만큼만 잡는 게 아니었다. 최대한 쥐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은 듯 열심이었다. 물론 고양이들은 쥐를 잡으면 반드시 주인한테 보여주고야 먹었다. 때문에 고양이가 쥐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는 늘 확인이 가능했다. 영리해서였는지 주인한테 자랑을 하고야 쥐를 먹곤 했다.

 

한 번은 우리 고양이가 밤에 뱀을 잡아들였다. 방이 윗방과 아랫방 두 칸뿐이라 아랫방엔 나랑 엄마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들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밤중에 아버지가 놀라서 일어나셨다. 고양이가 뱀을 잡아 물고 들어와서 윗목에서 야옹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물은 채가 아니라 손으로 장난하듯 뱀의 뺨을 때리며 놀고 있었다. 기겁한 아버지가 얼른 집어서 마당으로 내던졌다. 고양이는 야옹대며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다시 물고 들어왔다. 그렇게 세 번을 아버지가 내던지고야 고양이는 그 짓을 멈췄다. 아버지라고 뱀이 무섭지 않았으랴만 책임감 때문에 용기를 내어 집어던지셨을 터였다.

 

때로는 이런 곤란을 겪게 만드는 게 고양이였으나 고양이야 말로 쥐를 잡는 위대한 첨병이었으니, 집집마다 고양이는 귀한 대접을 받을 만했다. 때문에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불을 깔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그것도 모자라 품에 파고들어 안겼다. 그리곤 잠시 후면 잠이 들었다. 배에서 부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잤다. 때로는 나와 손을 가지고 서로 할퀴는 놀이도 하고, 재미를 주었다. 똥은 반드시 눕는 곳이 정해져 있어 그곳에 누었고, 똥을 눈 다음엔 그것을 발로 후비적거려 덮은 센스도 있었다.

 

사람은 쥐약으로 또는 쥐틀로 쥐를 잡는다. 개는 어쩌다 운 좋으면 취미로 쥐를 잡는다. 고양이는 전문으로 쥐를 잡는다. 덕분에 고양이는 사람들과 안방에서 지내고 개는 밖에서 지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잡든 저렇게 잡든, 쥐를 잡는 것도 일 중에 일이었던 시대, 웬 쥐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얼마나 징그럽던지, 도시생활을 하면 그 놈의 쥐들을 보지 않으니 좋다. 물론 그것마저 잊고 산다만. 가끔은 쥐꼬리를 종이에 싸서 책보에 싸서 가져다가 선생님한테 내던 순간들이 촌스럽게 떠오른다. 물론 내 품에서 부르럭 배를 끓이며 잠들곤 했던 귀여운 고양이와의 한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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