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별밤이 그리운 날

영광도서 0 520

별밤, 나는 별밤을 좋아한다.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에 빽빽한 별들, 한때 하늘에 별이 몇 개냐는 난센스 문제가 있었다. 답인 즉 100개였다. 사방에 각각 백백 그리고 중간에 백백하니 1000개라 했는데, 나 살던 곳엔 별이 참 많았다. 별만 많은 게 아니라 절말 하늘에 우윳빛 강이 흘렀다.

 

은하수다. 영어로는 은하수는 milky's way로 우유길이란 의미이다. 추측컨대 그리스신화에서 온 듯하다. 제우스가 인간 여자 알크메네와 불륜을 저질러 어리를 낳으니 헤라클레스이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영생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아내 헤라가 잠든 사이에 갓난 헤라클레스를 올림포스로 안고 올라가 헤라의 젖은 물린다. 신 제우스의 피를 받았으나 인간 여자의 피가 섞여 유한자인 아기를 헤라의 젖을 먹게 하여 영생불사의 몸을 만들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잠들었던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너무 젖을 세게 빠는 바람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난다. 알지도 못하는 갓난아기가 자신의 젖을 빠는 걸 본 헤라는 얼른 아기를 던져버린다. 제우스가 재빨리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서 인간에게 돌려준다. 이때 헤라의 젖줄기가 하늘로 뿌려져서 하얀 길이 되었으니, 그것이 은하수란다.

 

나 살던 홍천 광암리 하늘에는 선명하게 은하수가 흘렀다. 하늘 사방에 별들이 가득했다. 어쩌다 지리산에 새벽산행을 갈 때면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곤 하지만 나 살던 곳만큼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별밤 그리고 하늘, 사연도 꽤 있다만. 설렘도, 살랑거림도, 당연히 고운 추억으로 남은 별밤의 추억들, 때문에 지금도 별밤이란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어느 곳을 지나다 별밤이란 상호만 봐도 어떤 집일까 궁금하다. 왠지 정겨울 듯하고, 깔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별밤이란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지 않을까.

 

광주에 강의를 내려갈 때면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광주역에서 걸어가기에 충분한 별밤이다. 이름이 마음에 들기도 하려니와 내가 살아오면서 머문 곳 중 가장 깔끔하고 고요한 곳이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는 없다만 별밤을 상상할 만큼 고요하고 아주 깔끔하다. 집안에 들면 온통 흰색이다. 벽도 흰색, 침구도 흰색, 침대도 흰색, 온통 흰색인데 어디 하나 티 하나 안 보인다. 화장실도 흰색인 데다 너무 깔끔하다. 침구에 깔 보도 깔끔하게 개어놓은 흰색이다. 뭔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안 될 것 같아 조심하게 되는 게스트하우스다.

 

게스트하우스하면 조금은 시끄럽고 잠자기가 불편한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인, 곧 별밤지기를 만났다. 물론 주인은 별밤지기라 하지 않는데 내가 그렇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지난 1월 전남공무원교육원에 강의를 가는 길에 무등산에 들렸다. 증심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바람재 코스로 동화사 터를 지나 올라가려는데 여성 두 분이 더 오를지 망설였다. ‘힘든 코스는 여기서 끝이고 이제부터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고 조언을 했다. 그랬더니 정상까지 따라오겠다기에 함께 산행을 했다. 한 분은 게스트하우스 손님이었고, 한분은 별밤지기였다.

 

그 인연으로 광주에 갈 때면 별밤에서 묵고 온다. 게스트하우스 주변은 건물들인데 이 집만 한옥이어서 더 좋다. 다시 묵어도 아주 조용하다. 깔끔하다. 온통 하얀 공간, 마치 눈 속 마을 같은 느낌이다. 천정도 아주 하얀 공간에서 책을 읽다 잠을 자려고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보노라면 집 이름이 별밤이어선지 별밤이 보일 것 같다. 별밤에 누워 별밤을 상상한다. 상상하기보다 추억한다. 그 시절의 별밤, 밤하늘을 소환한다. 하늘은 직접 보이지 않지만 상상으로 별밤을 본다.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하늘 가득한 별들, 그냥 별들이 아니라 아주 맑고 깨끗한 별들이 보인다. 가끔은 긴 꼬리를 날리면서 북쪽 하늘에서 동쪽으로 사라지던 별들도 보인다.

 

내가 스물네 살 되기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마을 내 고향, 이사 나온 다음해에야 전기가 들어왔다지. 그렇다 한들 가로등은 없을 테니 지금도 고향에 가면 은하수 가득한 하늘일까, 별 가득한 하늘일까? 지금은 연고도 없어 고향에 다녀온 지도 30년은 된 듯하다. 잊히지 않는 기억들도 많다만, 다른 것들은 많이도 변했을 테지. 길도 집들도 사람들도, 그래도 변하지 않았을 별밤, 별밤을 만나러 고향에 다녀오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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