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5-호기심이 부른 개구리 실험

영광도서 0 586

호기심, 아이일수록 호기심이 많다. 아는 게 많이 없기 때문에 보는 것마다 신기하다. 새롭다. 새로우니까 다시 들여다본다. 이런 걸 호기심이라 하겠지. 난 예나 지금이나 호기심이 좀 많은 편이다. 뭔가 새로운 게 입력이 되면 그걸 알고 싶어 마음에서 안달이다. 그럴 모르면 늘 마음에서 그걸 알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 같다. 때로는 발품이 필요하면 여하튼 시간을 내서 그걸 확인하거나 보러 간다.

 

지금도 호기심이 많은 걸 보면 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봐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것이겠지. 덕분에 독서도 좋아하고, 산행도 좋아하니, 나 자신에게 해롭다기보다 이로운 것 같다.

 

호기심의 나의 역사는 어렸을 때부터였다. 당시엔 초등학교 들어갈 정도면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개구리를 잡았다. 그게 먹을거리로도 좋았지만 그걸 잡아서 파는 경우도 많았다. 이놈들은 여름이면 밭이나 산으로 숨었다가 가을이면 개울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개구리 잡기는 늦가을부터 시작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사이로 드러난 돌을 들추어 잡았다. 봄에 개구리들이 알을 낳기 전까지 개구리 잡이는 계속되었다. 개체수가 무척 많았다.

 

개구리는 알을 낳을 때인 봄이 아니면, 입을 열어 노래하는 때 이전인 입을 닫은 때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바위나 돌 밑에 가만 숨어 있다. 아무 돌 밑에나 있는 게 아니라 놈들이 좋아하는 환경이나 돌 밑 또는 바위 밑이 따로 있다. 아이들은 안다. 딱 보면 어느 곳에 개구리가 숨어 있을지를. 뭐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산골 아이들은 개구리가 머물 곳을 용케도, 바위 밑을 직감으로 안다. 작은 돌을 들추면 개구리가 뛰쳐나온다. 그러면 잽싸게 놈을 낚아채어 준비한 빈 비료포대 따위에 담는다. 조금 큰 바위는 들출 수 없으니 지렛대를 이용한다. 그럴 땐 혼자서는 못하고 두셋이 함께 한다. 한 사람은 지렛대 질을 하고 한 사람은 또는 나머지 사람은 바위 주변을 지키다 개구리들이 뛰쳐나오면 얼른 얼른 잡아낸다. 어떤 바위에선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뛰쳐나온다. 족대가 있는 집이면 족대를 이용해 한 번에 잡기도 한다. 그걸 잡아다 빨간 양파자루에 담아 물웅덩이에 담가놓고 필요한 만큼 잡아다 화롯불에 구워먹거나 양념을 해서 끓여먹기도 하고, 칼로 난도질하듯 짓이겨서 밀가루를 섞어 수제비처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개구리들의 까만 알이 섞여서 그럴 땐 까만색이다. 뼈까지 으깨져서 버릴 것 없이 모두 먹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개구리는 영양보충에 아주 좋은 양식이었다.

 

때로 화롯불에 석쇠를 얹어놓고 구워먹곤 했는데, 어느 날은 놈들의 사체의 모양이 남달리 보였다. 소위 알가지 개구리인 암컷의 죽은 모습은 모두 다 양손을 가지런히 배에 대고 있었다. 수캐구리는 모두 예외 없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게 궁금했다. 남자 개구리와 여자 개구리는 죽을 때 그렇게 죽기로 약속을 한 것인지 실험하고 싶었다. 하여 어느 날 개울에서 개구리 몇 마리를 잡아 실험을 했다. 놈들이 생각을 하고 죽지 못하도록 재빨리 바위에 태질을 했다. 단번에 쪽 뻗었다. 그렇게 암개구리와 수개구리 각각 대여섯 머리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똑같았다. 집에 들어왔다. 이번엔 꽤 많은 개구리들을 양동이에 담은 다음 물기를 최대한 없앴다. 그리곤 물을 펄펄 끓여 개구리들이 생각할 시간이 없이 끎인 물을 양동이에 부었다. 떼죽음당한 개구리들, 역시나 죽은 모습은 한결같았다. 개구리들 중 암 개구리는 알을 보호하려고 본능적으로 양손을 배에 두고 죽고, 수개구리들은 보호할 알이 없으니 팔을 벌리고 죽는 거라는 어린 나의 가설은 증명되었다.

 

그걸 암 개구리는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다, 수개구리는 그럴 일이 없다, 때문에 모든 생물의 암컷은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다, 이런 식의 세련된 생각을 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그때는 다만 암 개구리와 수개구리의 죽은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알을 가진 개구리는 알을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없어서인지 나의 궁금증을 연구하는 이들은 없는 것 같다만 호기심 덕분에 그 차이는 알았다.

 

물론 요즘은 개구리들을 잡으면 소위 감옥 갈 수 있으니 허가 없이 잡으면 큰일 난다. 모두 지난 일이다. 때로는 쓸모없는 짓을 할 때도 없지 않다만 호기심 덕분에 알게 되는 일들도 많다. 물론 이 나이가 되어서도 호기심 때문에 어린애 같다. 철딱서니 없다는 아내의 핀잔을 들을 때도 있지만 내 말릴 수 없는 호기심을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짓만 안하면 되는 거니까. 호기심은 관심을 부르고 관심은 무엇인가를 알게 만들기도 하니, 잘 관리하면 글을 쓰는 데에도, 어떤 정보를 얻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다. 세상은 알려고 하는 만큼 알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보면 기억에 남고, 관심 없이 바라보면 기억을 뚫고 지나나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 나는 철없는 나를 사랑한다. 오늘도 호기심 거리를 찾아 하루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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