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
오이디푸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입니다. 남들은 못 푸는 수수께끼를 푼 남자, 수수께끼를 푼 덕분에 왕이 된 남자, 반면 그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한 남자, 비극 중의 비극을 만난 이 남자, 그리스신화에는 아주 다양한 이야기가 많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바로 오이디푸스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로 들어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도 있으니, 낯익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왜, 무엇 때문에, 끔찍한 살인자가 되고, 금기를 깬 파렴치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오이디푸스, 그렇다고 오늘 오이디푸스 신화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는 것 중에 그 무엇을 아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그 중요한 것은 진정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안다는 것, 내가 가진 지식은 얼마나 중요한가, 아니면 지식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기에 남들보다 훌륭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런 끔찍한 비극에 빠지는 것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고, 그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내게 그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 영화가 있습니다. <굿윌헌팅>입니다. 이 영화에서 타고난 천재지만 사회를 보는 눈이 비뚤어진 윌에게 그의 심리를 치료해주려는 윌 선생이 그의 속을 파고드는 내용입니다.
"내가 너에게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 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그를 넌 잘 알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그의 성적 본능까지도 알 거야. 그렇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에서 나는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 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넌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또 여자 타입에 대해 물으면 넌 네 타입의 여자들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겠지. 벌써 여자와 여러 번 잠자리를 같이 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여자 옆에서 눈 뜨며 느끼는 행복이 뭔지는 넌 모를걸 ?
넌 강한 아이야.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세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다시 한 번 돌진하세 친구들이여!' 하면서...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움의 눈빛을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 건지 넌 모를 걸.
넌 또 사랑에 관해 물으면 시 한 수까지 읊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로가 되어본 적은 없을걸?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께서 너만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로 착각하겠지. 절망의 늪에서 널 구하라고 보내주신 천사! 또한 한 여인의 천사가 되어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그 사랑은 어떤 역경도... 암조차 이겨내지. 죽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달이나 병상을 지킬 땐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위는 의미가 없어져.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타인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넌 누굴 그렇게 사랑한 적 있니?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어 보인다기보다 오만에 가득찬 겁쟁이 어린 애로만 보여. 하지만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 못 해. 그 누구도 너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측정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넌 그림 한 장을 달랑 보곤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했어.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애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내가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솔직히, 젠장 그따윈 알바 없어. 어차피 너한테 직접 들은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뭐라든 필요없어. 우선 너 스스로 너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야. 그렇게 한다면 나도 관심을 갖고 널 대해주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할까 겁내고 있으니까. 네가 선택해 윌."
윌은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 천재입니다. 누구도 그의 지식을 뛰어넘지 못할 만큼 무엇이든 한 번 공부하기 시작하면 금세 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합니다. 때문에 그는 독선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선에서 다른 사람을, 모든 일을 재단합니다. 게다가 트라우마가 있어서 세상을 아주 삐딱하게 봅니다. 지식으로는 누구도 그를 꺾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숀 선생은 진실로, 진심으로 접근합니다. 그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하고, 그가 세상을 보는 삐딱한 시선을 바로잡아주려 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똑똑하다, 누구보다 많이 안다,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깝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 착각이 때로 나에게 편견을 갖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거부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누구보다 현명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의 조언은 그 따위 말 정도로 무시합니다. 실제로 세상의 비밀 중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알고 있으면서 마치 그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인 양 오만을 떨고 싶은 겁니다. 그 착각이 때로 나를 비극으로 몰아 넣습니다.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아는 것, 지식이 세상의 전부는 아닌데, 그 지식이 모든 것인 양 착각하는 겁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 지식을 보잘것 없는 걸로 만드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오만에 빠져 있다 때로 쪽팔림을 당하고 무안해서 어쩔 줄모르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아주 작은 부분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마치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우쭐해서, 오만해서 범하는 실수들이 많습니다. 마치 오이디푸스가 비극에 빠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지식에 대한 오만입니다. 조금 알면서 모든 것을 안 것처럼 행세하거나 그런 대우를 받을 때의 오만, 그 오만의 늪이 우리를 비극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지식이 원인이었습니다. 남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 만한 지식을 그는 가졌으나 진정한 인간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복잡다기한 진실은 물랐습니다. 지식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는데......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지식보다 어쩌면 더 가치 있는 건 진실한 한 마디의 말, 지혜로운 한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진실을 담은 문장이거나 지혜의 한 문장은 지식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삶과 부대끼며 깨닫는, 자신의 내면 깊이에서 울궈져 나온 문장이 아닐까요?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진실로 자신의 삶을, 삶의 문제를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사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