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올해의 아름다운 마지막 문장?

영광도서 0 1,532

해가 뜨는 건지, 해가 지는 건지, 현상만 보면 해는 뜨고 집니다. 그러나 진실은 해가 뜨는 게 아니라 내가 딛고 사는 지구가 돌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과 진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 사실이라면, 눈으로 확인 가능하지 않지만 분명 변함 없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진리요, 어떤 존재가 품고 있는, 그가 품고 있는 그만의 것이 진실이겠지요. 요는 해가 뜨건 지건. 한 해가 가건 아니건달력으로는 한 해가 갑니다. 그리고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올해에 마지막으로 쓰는 아침편지입니다.

 

 

 

존경, 이 단어로 글을 시작합니다. 하고 많은 단어 중에 존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니 참 기분 좋습니다.  존경이란 단어를 써 놓고, 내겐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려니까 무척이나 더 좋습니다. 글로만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겐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로만 써서 누군가 그걸 확인한다면 그건 사실입니다. 게다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나만이 확인할 수 있는 것, 나만이 아는 그 진실, 고로 내겐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자 진질입니다.

 

 

 

사실이며 진실을 쓰려니, 올해 마지막 편지를 사실과 진실의 합치를 쓰려니 참 좋습니다. 올해 내가 강의를 가장 많이 한 곳은 도봉문화원입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네 시간 동안 늘 50여 분과 함께 합니다. 처음 강의를 맡은 지 3년 여는 때로는 소란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말 저런 말이 떠돌아 때로는 짜증도 났지만 지금은 아주 즐겁습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듯, 서로를 배려하는 듯, 매번 강의할 때마다 만나는 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고 맑습니다. 모두 즐거운 표정들로 왔다가 유쾌한 표정으로 강의실을 나갑니다.

 

 

 

이런 분위기의 밑바탕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서로를 향한 따뜻한 진실이 있어서입니다. 나이가 적지 않은 분들이지만 배움의 열정, 배움을 즐거워하는 마음, 한 번이라도 빠질까 싶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극히 추우나 극히 더우나 올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월요일이면 즐겁게 오는 이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명색이 선생이라고 어려도 한참 어린 나를 깍뜻이 대우합니다. 그뿐 아니라 무엇이든 특별한 게 있으면 주고 싶어서 까만 비닐 봉다리에 무언가를 담아 오는 어르신, 먹거리를 가져다 슬쩍 찔러주시는 어르신, 그러면서 쑥스러운 듯 얼굴 발개지는 어르신, 제자라고 부르기보다는 어르신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이들의 그 정성, 그 분들의 마음이 존경스럽습니다.

 

 

 

왕년에 내로라 하는 분들입니다. 이전에 작곡가, 교사, 회사 사장, 회사 임원, 고위 공무원, 다양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수필반에 오면 모두 겸손한 수강생이 됩니다. 그런 마음들 모두 준경스러울 밖에요. 특히 그 분들 중에 3년 동안 수필쓰기를 배우러 오는 원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미 등단하셨으나 매주 월요일이면 한 시간 반 거리에서 오십니다. 맨 앞자리에 앉으십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들으려 무척 노력하십니다. 세상 경험이 그렇게 많으시고, 평생을 성도를 가르치는 일로 살아오셨음에도 한 마디 반박 없이 내 말이라면 무조건 접수하십니다. 항상 겸손한 모습, 그 분을 뽈 때마다 떠오르는 건 존경이란 단어밖에 없습니다.

 

 

 

또 한 분, 미국에 유학하여 거기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경영대학원장까지 지내고 정년 퇴작한 후, 우리 수필반에 오셔서 만 2년을 공부하는 분이 계십니다. 한 반에 스무명 남짓하니 반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장이 멀리 이사 하는 바람에 누군가 필요한데 서로 안하려 합니다. 하여 할 수 없이 그 분께 부탁을 했더니 마지못해 받아들이십니다. 그리고는 전혀 어색함 없이 그 일을 척척해내고 계십니다. 특별한 일이야 있을까 마는 스스럼 없이 자질구례한 일들을 내 대신 해주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고요. 대학교수로 평생을 지낸 분이 수필반 수강생으로 열정과 겸손으로 나오시는 것만도 존경할 만한데, 겸손한 모습에 친절한 모습,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 그렇게 배어나오는 인품, 그저 라라만 봐도 존경스럽습니다.

 

 

 

이 분들을 바라보면 참 행복합니다. 이분들과 함께할 수 있음이 다행이면서, 다행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말로야 얼마든 존경한다고 할 수 있지만 진실한 고백으로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그분들에게 존경한다고 고백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글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명생은 선생이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참 소중한 인생을 배웁니다. 늘 변함 없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며, 누구를 대하든 스스럼 없이 스며나오는 겸손,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늘 사람을 대함에 있어 진실이 배어들게 하여, 이제 묵고 묵은 포도주처럼 흐르는 시간에 더하여 아름답게 스며나오는 고귀한 인품, 그 인품을 나는 존경합니다.

 

 

 

수필반에 나오는 이들은 나를, 나는 그분들을,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올해 나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바로 내가 본받고 싶은 그분들의 아름다운 인품과 존경할 만한 그분들의 겸손입니다. 나는 스스럼 없이 존경합니다거나 내겐 존경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연말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분들의 얼굴 하나 하나, 그분들의 넉넉한 미소 하나 하나, 기분좋게 내 마음에서 유영합니다. 그분들을 나는 큰사람이라고 부르렵니다. 무엇이든 품어서 녹여내어 아름다운 인품으로 만드는 이들, 연말이 쓸쓸하지 않으며 오히려 새해가 기다려지는 건 그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덕분입니다. 이 글을 읽을지 안 읽을지 몰라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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