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새해, 내 안으로 떠나는 여행

영광도서 0 1,799

당신은 매저키스트인가요, 아니면 새디스트인가요?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매저키스트 또는 마조히스트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오스트리아 작가 슈발리에 레오폴트 폰 자허 마조흐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매를 맞고 굴복당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 시킵니다. 주인공은 상대에게 고통을 당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습니다. 이 상황을 심리학에서 받아들여 자기학대 성적쾌감을 추구하는 성애성향을 소설가의 이름을 따서 마조히즘이라 부르고, 이를 추구하는 사람을 마조히스트 또는 매저키스트라고 부릅니다. 이 말을 요즘은 성애에 국한하지 않고 실제 삶에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삶의 만족을 느끼는 이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반면 새디즘은 프랑스의 소설가 사드 후작이 <소돔 120일>에서 상대를 채찍질이나 폭력을 가함으로써 성적쾌감을 얻는 인물을 등장시킨 데서 유래합니다. 이렇게 상대에게 고통을 주거나 폭력을 가함으로써 성적쾌감을 얻는 이들을 새디스트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말도 매저키스트처럼 상대를 괴롭힘으로서 삶의 만족을 얻는 이들을 새디스트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성적인 것과는 상관 없이 새디스트거나 매저키스트 둘 중 하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나요?

 

 

 

어제 지리산 당일 종주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리산 당일 종주를 할 때면 늘 두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혼자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왜냐하면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불상사, 이를테면 사람도 거의 안 가는 겨울 길을 택시로 성삼재까지 이동해야 하는 것이 그렇고, 혼자 어둠 속을 두 시간 이상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설렘입니다. 당일에 37키로미터를 걸을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대견합니다. 당일종주에 성공하려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쉼 없이 걸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얼마든 빨리 걸을 수 있지만 체력이 다하면 발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 페이스조절도 잘해야 합니다.

 

 

 

걷다 보면 지칩니다. 그러면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참아내야 합니다. 여기엔 의지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거기에 더하여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한들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고, 관절이 안 좋아 걷기 어려울 수도 있고, 체력이 바닥이 나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보통사람들보다 빨리 걷기, 한 시간에 최소한 3키로미터 이상 걷기를 유지하면서, 체력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보통은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정상인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로 하산하거나 백무동으로 하산하기, 또는 중산리나 백무동에서 출발해서 천왕봉에 올랐다가 성삼재로 하산하기입니다.

 

 

 

작년에는 1월 3일에 지리산종주를 했습니다. 그때는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백무동까지 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37키로미터를 열한 시간에 걸었습니다. 당연히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작은 성삼재에서 하고, 하산은 중산리로 택했습니다. 장쾌한 능선을 따라 해발 1100미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600-1800미터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습니다. 오르막에선 숨이 차오릅니다.  내리막에선 살만합니다. 그런 반복을 하면서 37키로를 열한 시간 동안 걷고 무사히 하산완료했습니다. 아직 할만 했습니다. 힘겨운 일이긴 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나면 그 이상의 마음의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매저키스트일까요.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 때로는 그게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매저키스트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새해 첫산행을 지리산 당일 종주로 잡은 것도 매제키스트이기 때문이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때리고 질책하고 반성하는 것, 어떤 잘못을 저지른들 남의 책임보다는 나의 책임, 나 지신의 탓으로 돌리는 나로 살면 그게 더 나은 것 아닌가요? 남의 잘못을 캐내는 걸 즐기고, 모든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새디스트가 훨씬 많은 세상에서 매저키스트로 살아간다는 건 오히려 괜찮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자학하면서도 즐거워야 한다는 전제는 있어야겠지요.

 

 

 

새해에는 세상의 문제를 외부보다는 나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보럽니다. 모든 문제의 발생도 나 자신 때문이고, 모든 문제의 해답도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일 테니까요. 나는 내가 좋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혼자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정리할 줄 아는 내가 나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때로는 고독하고 힘겹게 오래 걸을 수 있는 지리산 종주, 나에겐 아주 뜻깊습니다. 집 나선 지 24시간만의 무사귀환, 새해 뿌듯한 출발을 합니다. 새디스트가 아닌 매저키스트, 즐거운 매저키스트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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