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세상살이 재미있나요?

영광도서 0 1,715

세상살이 재미 있나요? 다른 짐승과 달리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나 가치를 먹고 삽니다. 이를 다른 말로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인간적인 생각을 한다면, 존재이유 없이는 세상 살기 어렵습니다. 이 존재이유는 바로 삶에의 의미부여 또는 가치부여와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무엇이 중요하냐는 어떤 존재 또는 어떤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 얻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결정합니다. 이런 의미와 가치 부여는 각자에 따라 다릅니다. 이를테면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길들이지 않은 것은 비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장미꽃 5000송이가 다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길들인 장미 한 송이만 어린왕자에게 중요한 이유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를 여는 새해가 365일 여느 날과 다른 의미는 거기에 부여한 가치 때문이요, 의미 때문입니다. 새해 첫 날이 의미를 갖는다면, 그 날이 다른 날과 어떤 특별한 물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특별히 부여한 의미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매주 최소한 한 번은 산에 오른다 할 때 오름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떤 산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첫 산행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나설 때는 처음이란 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르지는 않지만 다르다고 의미 부여를 하고 새해 첫 산행을 지라산으로 잡은 이유도, 새해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처음이란 의미를 부여한 때문입니다. 새해 첫 산행은 지리산으로 떠납니다.

 

 

 

첫 산행은 지리산 무박종주입니다. 높이로는 남한에서 한라산 다름으로 두번째, 크기와 넓이로는 제일 큰 산입니다. 서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길이가 50km, 남에서 북으로 32km, 둘레가 320km로, 3개도 5개군에 자락을 펼친 남한에서 제일 큰 산입니다. 동에서 서 또는 서에서 동으로 가로 질러 걷는 산행을 종주라고 하고,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능선만 28.2km에 이르고, 하산 거리까지 따지면 37km에 이릅니다. 이것을 하룻길로 삼아 하루만에 걷기란 큰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작년에도 첫 산행을 지리산으로 잡았듯이 새해에도 지리산으로 첫 산행을 잡은 이유는, 보다 큰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입니다.

 

 

 

작년엔 1월 3일에 성삼재에서 백무동까지 종주를 했다. 열한 시간 반 걸렸습니다. 딱 1년 만에 지리산 종주라 용기와 염려가 함께 일었습니다. 체력적인 부담감으로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수 있다는 염려, 지난해 했으니 지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밤 열시 사십오분 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렸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내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딱 한 사람뿐, 그분에게 다가가서 어디 가는지 물었습니다. 역시 성삼재까지였습니다. 이미 택시 예약을 했다기에 함께 성삼재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굳이 합승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전에는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차 한 대에 4명씩 채워 태우고 각자에게 1만원씩 받았으나 작년부터는 서로 경쟁하느라 일행끼리만 태우기 때문에 자칫 짝을 못 찾으면 4만원을 내야 합니다. 올해는 2만원에 성삼재까지 가는 겁니다.

 

 

 

그분과 합승하고 성삼재로 오르면서 금방 산 친구가 됩니다. 이 분은 2박 3일 일정이라 나와는 맞지 않습니다. 끝까지 동행할 수는 없고, 노고단대피소까지 함께 걷기로 택시 안에서 마음을 맞춥니다. 서로 깊이 알지는 못해도 산행스타일이나 산과의 인연 정도를 아는 정도로 관계를 맺습니다. 산이 준 선물이라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라는 공통문보를 이루고 택시에서 내립니다. 이쯤이면 성삼재입니다. 나는 언제나 차에서 내리면 등산가방만 메면 올라갈 준비완료입니다. 함께 합승을한 분은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불이 있고 따뜻한 화장실에 들어가 산행준비를 하고 나니 새벽 네 시 10분입니다. 노고단으로 향합니다. 낯익은 이 길, 종주는 아니라도 무려 100여 번은 족히 걸었을 길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산행친구와 걷습니다. 랜턴이 필요 없을 만큼 달이 아주 밝습니다. 하얀 눈길에 아롱대며 새겨진 나뭇그림자들이 이채롭습니다. 조금만 바람이 일어도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림이 묘한 운치를 자아냅니다. 서로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별이며, 교교한 달빛의 은은한 마음이며, 길에 펼쳐지는 살아 있는 듯한 하얀 배경에 검은 그림을 혼자만 마음으로 감상하면서 오릅니다.  그림 같은 길을 마음으로 감상하며 산동무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지리산 대피소에 도착합니다. 노고단대피소 도착 네시 오십분, 잠깐 들려서 요기를 합니다. 그 분은 라면을 끓여 아침을 해결합니다. 나는 내가 준비한 떡 한 개에 그분의 라면 국물을 더하여 조반을 해결합니다.  오늘의 산행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산행 이야기를 잇습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이르는 길은 맑은 날에는 열린 하늘을 볼 수 있고, 그 열린 하늘에 수없이 매달려서 귀엽게 해맑은 빛을 내는 별을 바라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이렇게 운치 있는 길, 주로 혼자 걸은 길, 어쩌다 걸어도 같은 사람과 걸은 적은 거의 없는 길입니다. 길은 같은 길이지만 혼자 걸을 때와 여럿이 걸을 때 또는 둘이 걸을 때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뿐만 아니라 날씨, 기후나 계절과 같은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늘 다릅니다. 모든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진다 해도 내 마음이 변하니 늘 새롭습니다. 이렇게 같은 길이 새로운 것은, 아니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그때 그때 부여한 의미가 다른 때문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바뀌어 새로운 게 아니라 내가 부여한 의미 때문입니다. 덕분에 세상이 늘 새롭습니다. 이 새로움이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새로운 의미 부여로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상, 새상 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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