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무등산 장불재에서 무아지경에 빠지다

영광도서 0 1,793

"행운은 눈 먼 장님이 아니다. 대개는 부지런한 사람을 찾아간다.  앉아서 기다리는 자에게 행운은 영원히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걸 수 있다." 라는 독일의 재상 클레망소의 말처럼,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행운을 만날 만한 사람이 행운을 만납니다. 행운이 있을 만한 곳으로 찾아가야 행운을 만납니다. 예를 들면 곶감이 먹고 싶다면 곶감 장수에게 가거나 곶감을 만들어야 하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다면 어떤 방법을 쓰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행운도 그와 같아서 내가 원하는 행운을 찾아 움직여야 합니다.

 

 

 

나는 나를 행운아라 부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니까요. 원하는 일을 위해 행동하니까요. 그런 나가 나는 좋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도 움직이는 내가 좋습니다. 마음이 부르는 데로 가면, 그러면 거기 여지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라고 해서 아침에 일찍 나섰는데,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남는 산행, 바랑산, 매봉, 탑봉, 마집봉, 서인봉을 지난 무등산 산행, 이제는 중머리재를 지납니다. 지나는 사람들과 흐믓한 미소로 인사를 나눕니다. 혼자의 산행도 좋지만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의 산행, 사람이 너무 많지만 않다면 안전하다는 점에서, 산짐승을 만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길이 잘 나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니 나름 좋습니다.

 

 

 

이렇게 행운을 만날 줄 몰랐습니다. 공표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내가 계획한 무등산 산행은 중머리재에서 중봉으로 올라, 중봉에서 정상, 정상에서 장불재로 내려와서 좌측 능선을 타고 돌아서 원효사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셀 7키로에 체력이 많이 소진 된 것 같아서 조금 욕심을 비우고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리 해서 정상으로, 정상에서 중봉, 동화사터, 토끼등으로 하산 해서 증심사 통제소로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중머리재에서 우선 장불재로 길을 잡았습니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는 1.6키로미터, 장불재까지 1키로미터 남았을 무렵, 마음이 환해집니다.

 

 

 

눈꽃 구경은 실컷 하리라 계산했으나 상고대는 계산에 넣지 않았는데, 워낙 눈이 많이 오면 상고대는 피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고대가 무척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워낙 눈이 많이 내린데다 상고대가 핀 덕분에 아주 만개한 꽃처럼 무척 고왔습니다. 울창한 하얀 숲으로 변했습니다. 어디를 봐도 검은색은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흰색입니다. 나뭇가지는 물론 나무기둥이라고 할까, 모두가 흰색, 완전히 하얀 세상입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마다 운통 흰 상고대, 숲이 온통 흽니다. 검은색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온통 흰색, 게다가 하늘빛이 얼마나 고운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냥 산소가 그리운 붕어입처럼 입만 벌어집니다.

 

 

 

깨질 듯한 파란 하늘, 청록색의 하늘, 파롬한 하늘, 은은한 하늘까지, 시선을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에 따라 햇살의 방향과 조화를 우루어 색다른 색깔을 하늘이 자아냅니다. 상상해 보세요. 아주 깨끗한 청정바다를 닮은 하늘, 그 하늘을 배경으로 핀 하얀 상고대, 각양의 모습을 지닌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보면 위로 열린 풍경, 옆으로 보면 대단한 그림 같은 풍경, 사방을 둘러보면 볼수록 다문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풍경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눈꽃이 피려면 그에 맞는 조건이 잇어야 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상고대가 피었다면, 거기에 걸맞게 하늘이 도와주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제공해주어야 하니까요.

 

 

 

풍경에, 아름다운 풍경에, 고운 풍경에, 황홀한 풍경에, 환상적인 풍경에 푹 젖습니다. 감탄 어린, 감상적인, 감동적인 마음에서 갈 곳을 잃으면 온갖 아름다운 미사여구는 하나로 합쳐집니다. 아, 그렇습니다. 몽환적인 풍경에 푹 빠져듭니다. 상고대와 하늘, 그리고 나무들, 이 셋이 조화를 이룬 지극한 아름다움 때문에 우선 몰아지경에 듭니다. 몰아지경에서 무념무상으로 접어드니 무아지경으로 듭니다. 알겠습니다. 이 말들의 뜻을. 이럴 때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들, 공즉시색이니 색즉시공이니 그 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서 나는 없습니다. 아니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걸 보니 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없습니다. 나는 풍경자체로 접어듭니다. 자연이 나요 내가 자연으로 따로 놀지 않습니다. 물아일체로, 만일 지금 여기서 이대로 죽는다면 아주 깨끗한 무념무상으로, 온통 아름다운 생각만으로 그대로 천국으로, 낙원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 이해하겠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면 이런 생각을 하리라고 짐작이 가겠지요. 이 풍경은 환상적이라기보다 지고의 아름다움이라 하는 게 낫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중봉으로 올라 정상으로 간다면, 정상에서 장불재로 내려와 원효사로 간다면, 지금 있는 이 곳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니까요. 참 잘했다, 무등산에 오길 참 잘했다, 방향을 이리 잡아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그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 주어진 상황들, 두루 생각해도 나는 행운아입니다. 아침에 부지런을 떠는 게 번거롭긴 하다만, 그 번거로움을 마다 않은 나,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날, 여기에 올 수 있도록 부추긴 내 마음, 그대로 움직인 나, 그만큼의 체력을 기른 나, 이리 생가해도 저리 생각해도 난 행운아입니다. 그래요. 행운이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나는 나에게 주문을 겁니다. 나는 행운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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